
신용목 시인
당구장 문을 열고 경찰이 들어와서
옆집에서 사람이 죽었다며
우리의 머리카락을 뽑아갔다
(중략)
우리는 그를 만난 적이 없지만
죽었다는 말을 듣고 나서는
왠지 만난 적이 있는 것 같기도 했는데,
따지고 보면
그는 그냥 그런 사람이었다
옆의 당구대를 정리하던 주인이
우리에게 뭐하는 사람들이냐고 물었다
잦은 삑사리에
게임을 쉽게 끝내지 못하는,
따지고 보면
우리는 그냥 그런 사람이라고 했다
-최호빈 "피서"
긴 역사의 시간으로 보자면 '그냥 그런 사람'의 생이란 다만 찰나에 불과하겠지만, 이 세계가 계속되는 이유는 어느 대목 골다공증처럼 비워져 하마터면 끊어져 버릴 수도 있었을 역사의 빈틈을 그들이 메워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신경림이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겁다"(파장)고 쓴 것도 세계의 피로를 이기는 기쁨이 '그냥 그런 사람들'에게 있다는 통찰일 것이다. 대단한 삶도 비극적 죽음도 아니다. 말하자면 나라를 통째 삼키려 했던 내란 집단과 그 배경을 십분 부려 사욕을 채웠던 탐욕자들이 갉아먹은 자리를 메우는 것은 그냥 그런 사람들의 묵묵한 하루가 주고받는 저 안부인 것이다. '뭐하는 사람들'인지도 모를 우리는 이제 '묵내기 화투'(신경림, 겨울 밤) 대신 당구를 친다. 어떤 불볕의 시절도 당구장에 모여서 '잦은 삑사리'를 내는 우리를 이기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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