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목의 시와 함께] 최호빈 ‘피서’

  • 신용목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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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08-18 06:28  |  발행일 2025-08-17
신용목 시인

신용목 시인

당구장 문을 열고 경찰이 들어와서


옆집에서 사람이 죽었다며


우리의 머리카락을 뽑아갔다


(중략)


우리는 그를 만난 적이 없지만


죽었다는 말을 듣고 나서는


왠지 만난 적이 있는 것 같기도 했는데,


따지고 보면


그는 그냥 그런 사람이었다


옆의 당구대를 정리하던 주인이


우리에게 뭐하는 사람들이냐고 물었다


잦은 삑사리에


게임을 쉽게 끝내지 못하는,


따지고 보면


우리는 그냥 그런 사람이라고 했다


-최호빈 "피서"


긴 역사의 시간으로 보자면 '그냥 그런 사람'의 생이란 다만 찰나에 불과하겠지만, 이 세계가 계속되는 이유는 어느 대목 골다공증처럼 비워져 하마터면 끊어져 버릴 수도 있었을 역사의 빈틈을 그들이 메워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신경림이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겁다"(파장)고 쓴 것도 세계의 피로를 이기는 기쁨이 '그냥 그런 사람들'에게 있다는 통찰일 것이다. 대단한 삶도 비극적 죽음도 아니다. 말하자면 나라를 통째 삼키려 했던 내란 집단과 그 배경을 십분 부려 사욕을 채웠던 탐욕자들이 갉아먹은 자리를 메우는 것은 그냥 그런 사람들의 묵묵한 하루가 주고받는 저 안부인 것이다. '뭐하는 사람들'인지도 모를 우리는 이제 '묵내기 화투'(신경림, 겨울 밤) 대신 당구를 친다. 어떤 불볕의 시절도 당구장에 모여서 '잦은 삑사리'를 내는 우리를 이기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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