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각각(時時刻刻)] 특별사면은 통합이 아니라 분열의 씨앗

  • 권세훈 (주)비즈데이터 이사·파리1대학 법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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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08-19 06:00  |  발행일 2025-08-18
권세훈 (주)비즈데이터 이사·파리1대학 법학박사

권세훈 (주)비즈데이터 이사·파리1대학 법학박사

광복절 사면은 일제의 압제에서 벗어난 날을 기념하며, 국민의 화해와 통합을 이루고자 하는 취지에서 시행되었다. 그래서 대통령의 사면권이 헌법 79조에 규정되어 광복절 사면을 '국민 전체를 위한 통합과 관용의 표시'로 받아들여 왔다. 그러나 최근 들어 사면은 국민적 공감대를 얻지 못한 채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남용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재명 정부의 첫 특별사면 역시 우리 편 풀어주기에 불과했다.


이번 사면 명단에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포함되었다. 그는 자녀 입시 비리와 관련해 대법원에서 실형이 확정된 지 불과 7개월 만에 복권되었다. 이는 사면제도의 취지를 심각하게 훼손한 사례로 평가된다. 조 전 장관 사건의 본질은 단순한 개인적 범죄가 아니라 사회적 신뢰의 근간을 흔든 입시 공정성 문제였다. 학부모와 청년 세대가 땀 흘려 준비하는 입시 제도가 권력층의 특권으로 무너졌다는 상징적 사건이었다. 1심 재판부조차 그의 행위가 사회적 신뢰를 송두리째 무너뜨렸다고 판시했지만, 그는 끝내 책임을 인정하거나 사과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사면으로 복권된 것은 국민 눈높이와 정의감에 정면으로 배치된다.


권력자와 가까운 이들에게는 '초고속 사면'이 주어지고, 평범한 국민에게는 법이 끝까지 무겁게 집행된다. 이번 조국 전 장관 사면은 이러한 불평등을 더욱 선명히 드러낸 사건이다.


이번 사면 명단에는 조 전 장관 외에도 조희연 전 서울시 교육감, 최신원 전 SK네트웍스 회장 등 사회적 영향력이 큰 인사들이 포함되었다. 반면 사회적 약자나 생계형 범죄자들은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이는 사면이 국민 화합이 아니라 권력층의 특혜 수단으로 전락했음을 방증한다. 사면제도가 "강자에게는 관대하고, 약자에게는 냉혹하다"는 비판이 반복되는 이유다.


법철학자 베카리아는 "확실한 처벌이 없는 사법은 정의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몽테스키외 또한 "법은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적용될 때만 정의롭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금의 사면제도는 대통령의 정치적 판단에 따라 선택적으로 작동한다. 법률적 기준이나 국민적 합의보다는 권력의 필요가 앞서는 구조다. 사면심사위원회가 존재하지만, 회의 내용은 5년이 지나야 공개된다. 이는 절차적 투명성을 가로막고 국민의 비판적 여론을 가로막으려는 것이다. 회의록을 공개하고 사면심사위원회을 정치와 독립된 균형 잡힌 인물로 구성하여야 할 것이다.


역사를 돌아보면, 사면제도는 법의 경직성에 의해서 불합리한 처벌을 받은 자를 합리적으로 풀어주는 제도로서 사법권의 보충성 역할을 하여야 한다. 하지만 작금의 실태는 도리어 법치주의를 파괴하고 국민을 분열시키는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 조선 시대에도 왕의 사면은 정치적 목적에 따라 자주 활용되었다. 반정이나 정권 교체 직후, 혹은 왕권 강화를 위해 사면이 내려졌지만, 그 과정에서 법의 권위는 종종 훼손되었다. 민생을 위한다는 명분 속에 권력자의 입맛에 맞는 인물들이 풀려났고, 이는 백성들의 불신을 키우는 결과로 이어졌다. 지금 우리가 목도하는 사면의 남용 역시 이와 다르지 않다. 우리는 중세의 군주제로 돌아간 것인가?


조국 전 장관의 사례는 단순한 개인 문제가 아니다. 국민은 법치주의를 신뢰하기보다 "권력에 줄을 대면 얼마든지 사면받을 수 있다"는 냉소를 품게 되었다. 국민의 법 감정과 괴리된 사면은 사회 통합이 아니라 갈등과 분열을 증폭시킬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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