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광훈 소설가
인생의 모든 것으로 '소설'을 선택한 사내가 있었다. 사내는 오로지 소설가가 되기 위해 결혼도 하지 않았고, 사소한 직업도 갖지 않았으며, 여든을 넘긴 병든 부모와도 일체 연락하지 않았다.
사내는 친구가 기거하고 있는 외딴 산사에 틀어박혀 문장이란 것을 만들어 나갔다. 동자승이 가져다주는 공양 이외에는 아무것도 먹지 않았고, 산문 밖으로는 한 발자국도 떼지 않았다. 사내가 원하는 것은 오로지 빛나는 문장 하나뿐이었다. '세상사에 그다지 큰 매력을 느끼지 못한 것이겠지', '저 또한 속세의 몸짓처럼 덧없을 뿐이야' 하고 마당을 지나는 비구들이 투덜대며 속삭였다. 하지만 사내는 묵묵히 그 심연과도 같은 시간들을 인내했다.
그렇게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을까?
사내는 드디어 자신이 만족할만한 소설 한 편을 완성했다. 사내는 환희에 찬 표정으로 방문을 활짝 열어 제쳤다. 그때였다. 한 낯선 노인이 은그릇을 들고 자신에게로 걸어오고 있었다. 노인은 우물 앞에서 걸음을 멈추더니 사내를 향해 말했다. 원하시던 일을 이루셨나 보군요. 예. 드디어 만족할만한 소설 한 편을 얻었습니다. 사내가 답했다. 하지만 노인의 얼굴은 이상하게도 점점 어두워져갔다. 그런데 노인장, 무슨 걱정이라도 있습니까? 다시 사내가 노인에게 물었다. 노인은 잠시 망설이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렇습니다. 이제 제가 해야 할 일이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전 당신이 이곳에 처음 오신 날부터 당신의 공양을 책임지는 동자승이었습니다. 당신의 친구인 사형의 부탁이었죠. 그렇게 전 매일 당신의 방문 앞으로 공양을 날랐습니다. 하지만 한 십 년 정도 지나자 의문이 생기더군요. 왜 사형은 나에게 이 일을 그만두게 하지 않는 거지. 내가 왜 이런 단순한 일에만 매달려야 하나. 그런 고민이 계속 되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저의 꿈 속에 부처님께서 나타나시어 이렇게 말씀하시더군요. '저 고단한 중생 하나를 네가 구원할 수만 있다면 이 또한 얼마나 자비로운 일이냐.' 그렇습니다. 전 그 날 이후로 당신 하나에만 열중했습니다. 운동도, 아니 움직임이라고는 거의 없는 당신의 일과를 고려해 식단을 짜고, 불을 지피고, 물을 긷고, 쌀을 불리고, 나물을 다듬고, 간을 맞추고, 그릇을 씻고…… 그리고 당신이 잠시 외출한 틈을 타 청소까지 도맡아야 했습니다. 정말 당신을 향한 저의 정성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일과를 마친 후, 가끔씩 방문 틈으로 당신의 건강한 모습을 훔쳐볼 때면 전 더 이상 기쁠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당신이란 생명은 저에겐 크나큰 축복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당신은 소원을 이루었고, 조만간 세상 밖으로 나가시겠죠. 아니, 당신 스스로의 힘으로 생명을 이어나가시겠죠. 그래요. 저의 도움 따위는 이젠 아무런 필요가 없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전 슬픈 것입니다. 하지만 전 잊지 못할 거예요. 당신과 함께 한 60년을 말입니다. 아, 저기 누군가가 날 부르는군요. 그럼, 전 이만 가 봐야 가야겠습니다. 그렇게 말을 끝맺은 노인은 사내 앞에 물이 가득 담긴 은그릇을 내려놓고 어디론가로 유유히 사라져 버렸다.
노인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그제야 사내는 은그릇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사내는 경악했다. 모골이 송연해진 사내는 곧장 방으로 들어가 책상 위에 놓인 자신의 완성된 소설을 갈기갈기 찢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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