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과 창] 648개 서원은 어떻게 관리되고 있을까

  • 박정곤 대구행복한미래재단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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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09-17 06:00  |  발행일 2025-09-16
박정곤 대구행복한미래재단 상임이사

박정곤 대구행복한미래재단 상임이사

지난 8월, 경북 의성군 춘산면에 있는 얼음골을 다녀왔다. 여름에도 얼음이 언다고 빙혈(氷穴), 암석 틈에서 찬 바람이 분다고 풍혈(風穴)이라 부른다. 의성국가지질공원으로 지정된 이 일대를 빙계계곡(氷溪溪谷)이라 부르는데, 협곡과 절벽이 장관을 이루는 지질 명소다. 하회마을, 청량산, 주왕산, 석굴암, 부석사, 도산서원, 회룡포 등과 함께 경북 8경 중 하나로 꼽힌다.


이곳에는, 금방이라도 시를 읊는 선비들의 소리가 들릴 것 같은 빙계서원(氷溪書院)도 있다. 빙계서원은 1566년 김안국과 이언적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장천서원(長川書院)이 그 전신이며, 1600년 현재의 춘산면 빙계리로 옮겨 '빙계서원'이라 불리게 되었다.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1868년 허물어졌다가 2006년에 복원되었다.


멀리서 본 서원은 전형적인 교육 기관의 모습이었다. 서원 앞에 물길이 있고, 언덕을 배경으로 한 조화로운 건물 배치, 자연에 둘러싸인 듯한 아늑한 환경, 고요한 숲과 시원한 바람이 학문과 수양의 최적지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가자 기대는 실망으로 바뀌었다. 잡풀이 무성한 마당, 부서진 나무 계단, 쥐똥이 널브러진 대청은 오랫동안 관리의 손길이 미치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관리자에게 전화를 걸어 사정을 물어보니, 군(郡) 당국의 지원은 미미하고 전통문화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무분별한 방문객들로 어려움이 많다고 했다. 군청 관광문화과에 확인해 보니, 놀랍게도 서원은 군 소유이며 관리 책임도 군(郡) 당국에 있었다. 담당 공무원은 관리가 소홀했음을 인정하고 개선을 약속했다. 며칠 후 깨끗이 정리된 서원 사진을 보내주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빙계서원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라는 걱정이 생겼다.


한국서원연합회에 따르면 전국에는 648개의 서원이 있고, 경북에만 217개, 대구에도 22개나 있다. 이 중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9개 서원은 비교적 잘 관리하고 있지만, 나머지 상당수는 문을 걸어 잠그거나, 겨우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서원은 조선 선비들이 학문과 정신을 수양하던 사립 교육기관으로 건축적·문화적 가치가 크지만, 활용 방안을 찾지 못하고 방치하면, 유지비만 드는 '낡은 건물'이 되고 만다. 그러니 서원을 새로운 시대의 교육·문화·관광 자원으로 되살리면 좋겠다. 서원은 청소년들에게는 인문학적 소양을 키우는 토론과 고전 읽기, 전통 예절 체험의 장이 될 수 있다. 연구자들에게는 학문적 세미나와 학술 행사의 장이 될 수 있고, 관광객에게는 스토리텔링을 입힌 역사 체험과 디지털 콘텐츠를 접목한 새로운 관광 자원이 될 수 있다. 서원 음악회, 서원 백일장도 열 만하다. 서원 패션쇼는 어떤가.


또 지역 주민의 생활 문화와 결합해 소통의 거점으로 삼을 수도 있다. 지역 축제나 농산물·임산물과 연계하면 서원은 지역 경제와도 손잡는 '다시 살아나는 공간'이 될 수 있다. 특히 시니어 인력을 활용해 정기 점검, 잡초 제거, 청결 유지, 소규모 보수 등 기본 관리 업무를 맡기면 안정적인 돌봄이 가능할 것이다. 학교와 연계한 체험학습, 봉사단체가 주도하는 학생 체험 활동 지도, 멘토링 프로그램도 실행할 수 있다.


서원은 자연경관과 인문학적 의미가 어우러진 특별한 문화 플랫폼이 될 잠재력이 있다. 서원이 새로운 역할을 찾을 때, 선비 정신은 오늘의 삶 속에서 새롭게 이어질 것이다. 또 그것이 현재형 문화유산 지키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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