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경의 영화 심장소리] 런던 노팅힐에서 날아온 달콤한 인생 레시피

  • 김은경 영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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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09-18 16:41  |  발행일 2025-09-18
‘세상의 모든 디저트:러브 사라’ (엘리자 슈뢰더 감독·2020·영국)
엘리자 슈뢰더 감독의 영화 세상의 모든 디저트: 러브 사라 스틸컷. <티캐스트 제공>

엘리자 슈뢰더 감독의 영화 '세상의 모든 디저트: 러브 사라' 스틸컷. <티캐스트 제공>

프랑스의 미식가 브리야 사바랭은 그의 책 '미식예찬'(1825)에서 "동물은 삼키고, 인간은 먹고, 영리한 자만이 즐기며 먹는 법을 안다"라고 썼다. 즐기며 먹는 것에 디저트만한 것이 있을까. 원제가 '러브 사라(Love Sarah)'인 '세상의 모든 디저트'는 영국 노팅힐에서 날아온 디저트 아니, 인생 레시피다.


파티셰인 사라는 꿈꾸던 베이커리 오픈을 앞두고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난다. 사라의 엄마 미미와 그녀의 딸 클라리사, 그리고 절친 이사벨라는 사라의 꿈을 위해 함께 뭉친다. 사라의 연인이었던 미슐랭 레스토랑 출신 매튜도 나타나 돕는다. 힘을 모아 '러브 사라'라는 이름의 디저트 가게를 열지만, 손님은 오지 않는다. "이 동네에만 빵집이 네 개나 있는데, 여긴 다른 것이 뭐요?" 건너편에 사는 발명가 노인이 묻는다. 이 말을 들은 미미는 라트비아 출신 택배 기사를 보고 아이디어를 떠올린다. "런던에는 전세계에서 온 사람들이 살잖아. '러브 사라'를 그들의 고향처럼 만들면 어때?"


우여곡절 끝에 '러브 사라'는 '세상의 모든 디저트'를 파는 곳이 된다. 라트비아 출신 택배 기사를 위한 '크링글', 리스본에서 온 엄마와 아들을 위한 '파스텔 드 나타', 호주식 케이크 '레밍턴', 덴마크의 시나몬롤 '카넬 스네일', 프랑스의 '로즈 마카롱', 일본의 '말차 밀 크레이프'까지, 사라가 좋아하던 책 '80일간의 세계일주'처럼 '80가지 빵으로 세계일주'다. 다인종이 모여 살기로 유명한 노팅힐의 가게는 고향의 맛이 그리워 찾는 이들로 북적인다.


문득 떠오르는 엉뚱한 장면 하나를 고백한다. 오래 전 밥을 먹다가 눈물이 난 적이 있다. 깊은 산속이었고, 소박한 밥과 반찬이었다. 마음이 한없이 맑았고, 한 그릇 밥이, 인생이 말할 수 없이 성스럽게 느껴졌다. 하늘과 땅이 모든 기운이 한 그릇 밥에 담겨 있구나를 깨달았다. 수도원이나 산사에서 음식으로 영성 수련을 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일 때문에 음식 관련 영화들을 찾아보다 느낀 건, 음식은 그저 음식이 아니라는 거다. 음식은 위로이고, 쉼이었다. 일본 영화 '남극의 쉐프'(2009)가 그랬고, 우리 영화 '리틀 포레스트'(2018)가 그랬다. 음식은 또한 성장이고, 사랑이었으며, 때로는 한 시대를 나타냈다. 미국 영화 '아메리칸 쉐프'(2014)가 그랬고, 대만 영화 '음식남녀'(1997)가 그랬으며, 프랑스 영화 '딜리셔스:프렌치 레스토랑의 시작'(2021)이 그랬다. 그러니 런던의 '러브 사라'를 찾는 이들이 고향의 음식을 맛보며 향수를 달랠 수 있었음은 당연하다. 위로를 얻고,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 것이다. 앞서 말한 책 '미식예찬'에서 "당신이 무엇을 먹는지 말해달라. 그러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주겠다"라고 한 브리야 사바랭의 말은 과장이 아니다.


사랑하는 이의 죽음으로 시작하지만, 서로의 상처를 위로하며 치유해나가는 따뜻한 영화다. 엘리자 슈뢰더 감독의 어머니도 촬영 중 돌아가셨다고 한다. 기교가 아니라 진심이 묻어 있는 영화다. 각박한 세상사에 지쳤을 때, 마음 한 자락을 어루만져줄 영화다. 노팅힐에는 줄리아 로버츠와 휴 그랜트만 있는 게 아니다.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고향을 느끼기 위해 찾는 '러브 사라'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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