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K팝 걸그룹 헌트릭스. <넷플릭스 제공>
'케이팝 데몬 헌터스'(이하 케데헌) 열풍이 심상치 않다. 최근 전세계에서 흥행몰이 중인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영화다. 지난 6월20일 공개 직후부터 뜨거운 관심을 받았는데, 현재도 연일 신기록을 쓰고 있다. 넷플릭스에 따르면 케데헌은 지난 14일 기준 누적 시청수 3억회를 돌파했다. 넷플릭스 콘텐츠 중 역대 최초다.
영화는 K팝 걸그룹 헌트릭스가 악령을 사냥하는 데몬 헌터스로 활약하며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악령들의 왕인 귀마가 헌트릭스에 맞서 보이그룹 사자보이즈를 인간 세계에 내보내며 스토리가 전개된다. 한국계 캐나다인 매기 강, 크리스 아펠한스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배우 이병헌과 안효섭이 영어 더빙에, 아이돌 그룹 트와이스의 정연, 지효, 채영이 OST(오리지널 사운드 트랙)에 참여해 반가움을 자아냈다.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주인공 루미. <넷플릭스 제공>
영화가 대흥행하며 극중 OST도 대중음악계에서 신기록을 세우고 있다. 대표곡 '골든'(Golden)은 지난 19일 영국 오피셜 싱글 차트 '톱 100'에서 7주째 1위를 차지했다. 미국 빌보드 메인 싱글 차트 '핫 100'에서도 통산 5주 1위를 기록 중이다. '골든'은 영화 속 가상 걸그룹 헌트릭스가 부른 노래다. 자신의 정체로 인해 혼란을 겪던 주인공 루미가 더 이상 숨지 않고 세상 밖으로 나오겠다고 외치는 내용이다.
케데헌이 이만큼 '대박'을 친 이유는 뭘까. 작품의 완성도뿐만 아니라 다양한 복합적인 요소들이 거론된다. 특히 장르의 참신함과 디테일한 요소, 누구나 공감할 만한 보편적인 감성이 맞물리며 전 세계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았다는 평가가 많다. 14면에 계속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걸그룹 헌트릭스가 라면을 먹는 장면. <넷플릭스 제공>
◆독창적 세계관·한국적 디테일…"신선한 접근"
영화에는 서울의 거리 풍경이 배경으로 등장하고, 캐릭터들이 식당에서 수저 아래에 냅킨을 놓고 식사하는 등 한국만의 문화가 세밀하게 묘사된다. 대중목욕탕에서의 세신 장면, 한복, 김밥과 컵라면도 등장한다. 여기에 K팝의 화려한 시각적 요소와 음악이 스토리 및 캐릭터와 완벽하게 결합돼 하나의 퍼포먼스가 펼쳐진다. 제작사인 소니픽처스가 구현한 뛰어난 영상미와 스타 배우들의 목소리 연기도 완성도를 더했다.

매기 강 감독이 지난 21일 부산 해운대구 우동 영화의전당에서 열린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 '케이팝 데몬 헌터스' 오픈토크에서 관객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독창적 세계관도 눈에 띈다. K팝이라는 현대적 현상에 '저승사자'와 같은 한국의 전통 신화가 결합됐다. K팝 걸그룹인 헌트릭스는 무당, 보이그룹인 사자보이즈는 저승사자가 모티브가 됐다. 지난 21일 부산에서 열린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 케데헌 오픈토크에 참석한 매기 강 감독은 "무당은 한국 문화에 뿌리내린 전통이기 때문에, 캐릭터와의 연결성과 별도로 문화적인 부분도 담고 싶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헌트릭스 멤버들의 정체성과 무당의 정체성에 공통점이 많다"며 "무당들은 노래 부르고 춤추면서 악귀를 퇴치하는데, 헌트릭스도 같은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이라고 제작 의도를 설명했다.
케데헌 흥행에 대해 평론가들은 작품의 완성도와 함께 디테일한 한국 문화를 녹여낸 참신함으로 글로벌 관객들에게 신선함을 줬다고 평가했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는 "서구의 전형적인 퇴마물처럼 선과 악의 단순한 대립 구도가 아니라, 저마다의 결핍을 지닌 캐릭터들이 악령과 맞서는 서사를 통해 상대적 관점을 제시했다"며 "보편적으로 대중이 좋아하는 음악적 요소와 오컬트 요소가 결합되면서 더욱 인기를 끈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하재근 문화평론가는 "서울의 거리 풍경, 한복, 한국 음식 등 한국적 디테일이 외국 관객들에게는 새로운 것이라 신선하게 다가갔을 것"이라며 "여기에 잘 만든 캐릭터와 OST까지 종합적으로 잘 어우러진 것이 인기 요인"이라고 말했다.

'케데헌' K팝 보이그룹 사자보이즈의 마스코트 '데피'. 사자보이즈는 저승사자가 모티브가 됐다. <넷플릭스 제공>
영화가 글로벌 흥행에 성공하자 해외 주요 매체들도 분석에 나섰다. 지난달 미국 타임지는 'K팝 데몬 헌터스는 어떻게 세계를 정복했나'(How KPop Demon Hunters Conquered the World) 보도에서 케데헌의 성공 요인을 심층 분석했다. 타임지는 "최고의 아이돌 그룹처럼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한 가지에만 뛰어난 것이 아니다"라며 "케이팝 걸그룹이 악마 사냥꾼 팀으로 변신하는 이 어린이용 애니메이션 영화는 코미디, 액션, 음악, 초자연적 호러 요소를 결합해 감정적인 보상을 주며 재관람할 만한 가치를 크게 만들었다"고 했다.
타임지는 특히 케데헌이 "문화적 특이성 속에서도 보편성에 대한 신뢰를 높였다"고 강조했다. 매체는 "지금까지 주류 미디어에서 볼 수 없었던 시각적으로 독특한 경험을 선사했다"며 "우정, 자기 수용과 같은 보편적인 주제를 다루면서도 한국 고유의 문화적 정체성을 잃지 않은 것이 전 세계적인 공감대를 형성했다"고 덧붙였다.

지난 14일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서 열린 2025 서울헌터스 페스티벌에서 외국인 관광객들이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 수록곡 '골든'을 부르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 성지순례·라면 전쟁…불붙은 K컬처
케데헌이 대박나고, 이를 통해 K컬처의 매력이 널리 알려지면서 낙수효과도 발생하고 있다. 관광업계 등 내수경제 활성화, 고용 창출 등 긍정적 파급효과가 두드러진다. 넷플릭스도 지난 20일 부산에서 '크리에이티브 아시아' 미디어 간담회를 열고 "콘텐츠 속 한국의 일상적인 모습들에 열광하는 시청자가 늘었다"며 "이는 국내 다양한 산업에 낙수효과를 창출하고 있다"고 밝혔다.
케데헌 공개 이후 지난 7월 한 달간 서울을 찾은 외국인은 약 136만명이다. 역대 최다로 지난해와 비교하면 23.1% 증가한 수준이다. 구글 트렌드에 따르면 영화 공개 직후인 6월 '한국' 검색량은 2배 늘었다. 이와 함께 영화에 등장한 K문화 관련 상품에 대한 수요도 급증했다. 영화 공개일인 6월20일부터 지난달 10일까지 글로벌 예약 플랫폼 클룩의 예약 데이터를 직전 2개월과 비교한 결과, 세신 상품은 11%, 케이팝 댄스 클래식 40%, 케이팝 아이돌 스타일링 체험은 200% 증가했다. 국내 관광 플랫폼 크리에이트립에 따르면, 6월20일부터 7월19일까지 한 달간 외국인 관광객의 한복 체험 거래액은 30% 이상 늘었다. 특히 사자보이즈가 착용한 저승사자 스타일의 검은 한복과 갓끈이 인기다. 북촌한옥마을, 남산타워, 낙산공원 등 영화에 나온 서울 명소는 외국인들의 '성지순례' 코스로 자리잡았다.

한국 문화 열풍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지난달 31일 서울 종로구 경복궁이 수문장 교대의식을 구경하는 내외국인 관광객으로 붐비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이 늘면서 국가유산청도 경복궁에 국가유산을 알리는 상품관을 조성한다. 케데헌의 인기로 전통문화 상품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고 있지만, 이에 대한 한국의 대표 상품관이 부재한 점을 해소한다는 취지다. 국가유산청 측은 국가유산 상품관 조성 추진을 위해 총사업비 168억원을 배정했다고 밝혔다. 2027년 착공할 예정이며, 위치는 경복궁 동편 주차장 일대 등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라면에 대한 관심도 뜨겁다. 영화에서 헌트릭스 멤버들이 컵라면을 먹어 화제가 된 것이 계기다. 농심 제품이 연상되는 이 컵라면으로 농심도 케데헌과 협업한 제품을 출시했다. 헌트릭스 캐릭터를 용기에 입힌 한정판 신라면을 두 차례 출시했다. 지난달 29일 1차 출시 당시 1분40초 만에 동이 났다. 이 제품은 윌마트 등 미국 유통업계에서도 판매가 시작됐고, 농심은 앞으로 입점을 확대할 계획이다. 김헌식 평론가는 "일본 문화와 달리 한국의 생활문화나 음식은 아직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기업 입장에서는 상품성이 소진되지 않은 상태"라며 "이탈리아 피자가 영화에 나오면 화제가 되지 않겠지만, 컵라면 같은 낯선 문화 요소는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케데헌이 그런 역할을 한 것"이라고 했다.

지난 3일 한 대형마트에 진열된 케데헌과 협업한 농심의 컵라면 제품. 연합뉴스
◆흥행 뒤 남은 질문…한국은 왜 못 만드나
다만 케데헌을 두고 한편에서는 "이 작품을 과연 K콘텐츠로 볼 수 있느냐"는 의견도 제기된다. 영화 제작 과정에 한국 자본과 제작진들이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넷플릭스가 제작비를 투자해 미국의 소니픽처스가 만들었다. 하지만 해외 주요 매체들과 전문가들은 K콘텐츠라는 데 무게를 둔다. 하재근 평론가는 "(산업적 관점에서) 자본을 보면 K콘텐츠가 아니지만, 문화적으로는 K콘텐츠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국내에서 이런 '대작'을 제작할 수 있느냐는 회의론도 제기된다. 한국 창작자들이 애니메이션 영화를 만들지 못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김헌식 평론가는 "콘텐츠라는 건 아무도 예측 못한다. 과거 황동혁 감독이 '오징어 게임'을 준비할 때도 국내에서 투자를 받지 못해 결국 넷플릭스로 갔다"며 "창작 역량의 문제가 아니라 투자와 시스템의 문제다. 한국에서도 충분히 경쟁력 있는 작품을 만들 수 있다"고 힘줘 말했다.

조현희
문화부 조현희 기자입니다.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