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안동 호민저수지 인근에는 새로운 주거 단지를 짓는 공사가 한창이다. 2만8천㎡ 부지에 주택 38동(45세대)과 공유 오피스, 다목적홀, 라운지 등 주민 공동시설이 들어선다. 소요되는 사업비만 480억원으로 내년 6월이면 얼추 작업이 마무리된다. 시골의 호젓한 전원주택 단지를 떠올리면 큰 오산이다. 설계부터 남다르다. 세월이 흘러도 가치가 변하지 않는 경북도의 '천년 건축' 지향점을 실체적으로 구현하는 '1호 모델'이다. 승효상 이로재 대표를 비롯한 국내외 유명 건축가가 설계 과정에 참여했다. 이 뿐만 아니다. 입주할 주민의 면면을 들어다 보면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아침편지'로 유명한 고도원 아침편지문화재단 이사장부터 포스텍 총장과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장을 지낸 김무환 포스텍 특임교수, 영남대 병원장과 대한뇌종양학회장을 역임한 김오룡 박사가 예비 주민이다. 2010년 과기부 '국가 과학자'에 선정된 남홍길 대구가톨릭대 역노화연구원 원장, 화학 분야 권위자인 안교한 포스텍 명예교수, 정용환 전 한국원자력연구원 본부장, 차인혁 광주과학기술원 석학교수, 한국에너지공대(KENTECH) 설립위원과 국가 연구·개발 프로그램 디렉터를 지낸 한상철 교수,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황일순 명예교수 등도 합류한다.
은퇴한 국내 유수의 석학들이 모여사는 이른바 'K-과학자 마을'이다. 경북도가 도청신도시 인근에 이들을 불러모은 건 지역의 미래를 위한 포석이다. 이들은 지역에서 정주하면서 전문 지식과 연구 경험을 활용해 국책사업 유치, 기업 기술 자문, 후학 양성 등 역할을 맡는다. 경북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은퇴자 어벤져스'인 셈이다. 영남일보는 9차례에 걸쳐 지역의 미래를 한층 더 밝힐 K-과학자를 차례로 소개한다.

경북의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해 다양한 역할을 맡게 된 고도원 아침편지 문화재단 이사장. 경북도 제공
"매일 아침마다 짧은 한 편의 글로 사람들의 마음을 일으켜 세운 사람."
고도원 아침편지 문화재단 이사장을 설명할 때 빠지지 않는 표현이다. 고 이사장은 늘 말과 글로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고 우리사회를 치유해 왔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다양한 역할을 맡아 대한민국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데 큰 역할을 해 온 것. 올해부터는 경북도 'K-과학자'로 위촉돼 지역의 지속가능한 미래를 이어나가는 일을 수행한다.
◆ '아침편지' 치유의 물결이 되다
고 이사장의 사회생활 첫 무대는 언론이었다. 중앙일보 정치부 기자로 15년간 한국 정치의 격랑을 속속들이 기록했다. 수많은 현장을 누비며 역사의 생생한 순간을 펜 끝에 담았다. 언론인으로 국민과 끝없이 소통한 그는 김대중 대통령 시절 청와대 연설담당 비서관으로 변신한다. 신문 지면을 넘어 대통령의 입을 통해 국민에게 '시대정신'을 전달하는 막중한 임무를 맡은 것이다. 당대의 중요한 연설문에는 그의 손길이 스며 있었고, 이는 황조근정훈장이라는 영예로 이어졌다.
그는 "연설은 단순한 말이 아니라, 국가와 국민 사이의 신뢰를 쌓는 언어"라고 회고한 바있다. 이같은 그의 철학은 훗날 '아침편지'란 이름으로 대중과 새롭게 소통하는 계기로 발전했다.
마흔이 넘은 나이에 시작한 작은 시도는 어느덧 사회적 현상이 됐다. 매일 아침 발송된 짧은 글귀는 어느새 수백만명이 읽는 편지가 돼 개개인을 위로하고 우리사회를 치유하는 에너지로 확산했다. 언어가 가진 힘을 순방향으로 극대화한 사례로 볼 수 있다.
고 이사장은 "짧은 문장이지만, 그것을 통해 사람들이 하루를 다르게 시작하게 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고 했다. 실제 많은 이들이 아침편지를 통해 삶의 용기를 얻고, 관계를 회복했으며 새로운 도전을 이어나갔다. 이같은 경험은 고 이사장에게 '치유는 곧 사회적 자산'이란 신념을 갖게했다.
2004년 설립된 아침편지 문화재단, 2010년 충북에 문을 연 '깊은산속 옹달샘 명상치유센터'는 신념의 결실이다. 청소년을 위한 꿈 캠프, 기업인을 위한 리더십 프로그램, 가족을 위한 치유 여정 역식 모두 '사람을 다시 세우는 일'이란 목적 아래 기획됐다.
고 이사장이 추구하는 치유의 삶은 또 한차례 성장한다. 2018년 국립산림치유원장으로 임명되면서다.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전례 없는 위기 속에서 숲을 활용한 치유 프로그램을 보급하며 국민 정서 안정에 기여했다.

고도원 아침편지 문화재단 이사장은 사람과 우리사회의 치유를 넘어 인문학적 통찰을 통해 AI등 신기술의 윤리를 설계하는 데도 목소리를 보태고 있다. 경북도 제공
◆ 과학과 인문학을 잇는 새로운 도전
고 이사장 삶의 여정은 말과 언어를 통한 치유에만 머물지 않는다. 지난 5월 그는 국제인공지능윤리협회 명예회장에 선임됐다. 인공지능(AI)이 인간의 삶 깊숙이 들어온 시대, 인문학적 통찰을 통해 기술의 윤리를 설계하는 데 목소리를 보태고 있다.
항상 "언어와 메시지가 사람과 사회를 바꾼다"는 확신을 갖고 이를 실천해 온 그가 과학기술의 영역에서 기술과 인간이 공존하는 길을 찾고자 한다. 과학과 인문학의 융합을 이끄는 그의 새로운 도전은 'K-과학자'란 이름과도 맞닿아 있다.
이제 그는 경북도 K-과학자로서 지역과 호흡한다. 한글의 전당 건립 프로젝트를 통해 언어와 문화를 담는 구상을 함께하고, 산림치유 산업을 세계적 힐링 브랜드로 발전시키려 한다. 산업과 기술의 혁신만으로는 완성되지 않는 지역 발전의 밑바탕을 '사람과 문화'란 키워드로 채워 나갈 심산이다.
그가 그리는 미래 청사진은 구체적이다. 한글의 세계화·과학화·산업화를 꿈꾸고 있다. 글쓰기 교육과 체험학습에서 한발 더 나아가 정보통신 기술과 AI 기반의 가상 한글 메가시티, 애플리케이션 개발로 한글을 '비즈니스·문화 플랫폼'으로 확장할 계획이다.
이는 한글의 독창성을 세계에 널리 알리고 외국인에게 다양한 경험을 제공하는 것을 넘어, 재외동포에게는 정체성 강화로 이어질 수 있다. 단순한 문화사업이 아니라 경북을 세계 속의 언어·치유·과학기술 메가시티로 도약시키는 장기 전략인 셈이다.
고도원 이사장은 "앞으로 안동에 한글의 전당을 지어 한글을 세계화, 산업화하는 것이 K과학자로서 가장 큰 목표"라며 "자원이 부족한 한국이지만 한글을 산업화할 수 있다면 지역을 넘어 우리 후손들까지 지속가능한 성장을 할수 있고, 치유와 희망의 언어가 세계로 뻗어 나가는 순간, 경북은 세계 속의 문화적 중심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전 세계에 수많은 한글 학교를 세우고 학습 능력에 맞는 교과서를 통해 한글을 세계인에게 가르치는 것 만으로도 많은 일자리가 생기고 부가가치가 만들어진다"면서 "한글의 전당은 한글 교육의 세계적인 거점이자 관광·치유센터로도 활용이 가능하다"고 했다.
AI를 접목한 글쓰기 교육의 고도화 방안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그는 "평생을 글쓰는 사람으로 살아온 만큼 글쓰기 교육에 대한 욕심이 있다. AI 시대를 맞아 한글의 전당과 교육 프로그램에 글쓰기, 말하기를 훈련시키는 챗봇을 도입할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박종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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