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포유 커버 스토리] 프랑스 속 또 다른 독일, 알자스 지방을 걷다

  • 조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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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10-30 16:27  |  발행일 2025-10-30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콜마르
16~17세기에 지어진 주택들이 운하를 따라 늘어선 스트라스부르 내 거리 쁘티 프랑스. 독일식 반목조주택들이 거리를 장식한다.

16~17세기에 지어진 주택들이 운하를 따라 늘어선 스트라스부르 내 거리 '쁘티 프랑스'. 독일식 반목조주택들이 거리를 장식한다.

"독일 오케스트라의 명료함과 절제, 풍요로움이 프랑스 오케스트라의 유연함과 기교, 정교함과 결합된 오케스트라입니다."


어떤 지역은 타국이지만 자국 같고, 어떤 지역은 자국이지만 타국 같다. 프랑스 명문 악단 스트라스부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OPS)의 감독이었던 마르코 레토냐는 2017년 첫 내한 공연 당시 OPS에 대해 이같이 소개했다. 스트라스부르의 지역적 색채가 음악에도 담겨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스트라스부르는 라인강을 맞대고 독일과 프랑스 국경에 위치해 있는 프랑스 알자스(Alsace) 지방의 도시다.


이 알자스 지방의 도시들은 스트라스부르와 비슷한 역사와 문화를 간직한다. 프랑스지만 독일 같고, 독일 같지만 프랑스 같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와 프랑스 파리에서 2시간. 스위스와도 인접해 바젤에선 1시간30분이면 도착한다. 관광객들은 30분 거리인 스트라스부르와 콜마르를 묶어 당일치기로 많이 방문한다.


두 도시를 하루 일정으로 넣고, 프랑스 속의 또 다른 독일을 상상하며 열차에 올랐다. 창밖으로 독일의 목조주택이 이어졌다. 라인강을 지나서는 울창한 숲과 들판이 펼쳐졌다. 드넓은 자연을 넉놓고 보다 잠깐 눈을 붙였다. 얼마 안 지나 스트라스부르에 정착한다는 방송이 나온다. 프랑크푸르트 중앙역에서 ICE/TGV 열차로 2시간 만에 도착했다. ICE, TGV 열차는 각각 독일철도 도이치반(DB)과 프랑스 국영철도공사(SNCF)이 운영하지만, 독일~프랑스를 잇는 노선은 두 회사가 공동으로 운행했다. 14면에서 계속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역. 독일 프랑크푸르트 중앙역에서 열차로 2시간이면 도착한다.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역. 독일 프랑크푸르트 중앙역에서 열차로 2시간이면 도착한다.

◆두 문화 혼재된 통합의 도시 '스트라스부르'


"이윽고 성당의 큰 시계가 울리며 12시를 알렸다. 40년 동안 한결같이 프랑스어를 가르쳐 온 아멜 선생님은 창백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여러분, 나는… 나는… 감정이 복받쳐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한 선생님은 칠판에 크게 '프랑스 만세'라고 쓰고 아무 말 없이 수업이 끝났음을 손짓으로 알렸다." (알퐁스 도데, '마지막 수업' 중에서)


스트라스부르는 프랑스 작가 알퐁스 도데의 소설 '마지막 수업'의 배경으로 잘 알려져 있다. 두 국가의 쟁탈전 속에서 양국의 지배를 번갈아 받던 곳이다. 소설이 발표된 1873년은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에서 프랑스가 패배한 지 얼마 안 됐을 때였다. 프랑스 땅이었던 알자스 지방을 전쟁에서 승리한 독일이 획득하며 독일의 땅이 됐다. '마지막 수업'은 이 시기 독일에게 나라를 빼앗기고, 모국어를 금지당하는 설움을 겪어야 했던 프랑스인들의 참담함을 묘사한 소설이다. 도시는 1차 세계대전 후 프랑스로 돌아왔다가, 2차 대전 중 독일에 점령당하고 종전 후 다시 프랑스의 땅이 됐다.


스트라스부르역으로 들어오는 열차. 스트라스부르의 철도는 독일식 우측통행으로 운영된다.

스트라스부르역으로 들어오는 열차. 스트라스부르의 철도는 독일식 우측통행으로 운영된다.

이런 복잡하고 다사다난한 역사로 스트라스부르는 유럽의회, 유럽인권재판소가 자리해 '유럽 통합'을 상징한다. 문화도 혼재돼 있다. 스트라스부르에 도착하자마자 볼 수 있다. 철도가 그렇다. 스트라스부르의 철도는 프랑스 영토 시절인 19세기 중반 처음 건설됐다. 하지만 얼마 안가 독일이 지역을 차지하면서 독일식 체계가 도입됐다. 그 영향이 지금까지 이어져 프랑스식 좌측통행이 아닌 독일식 우측통행으로 운영되고 있다.


스트라스부르역에서 구텐베르크 광장 가는 길. 독일식 건축물과 프랑스식 건축물이 혼재돼 있었다.

스트라스부르역에서 구텐베르크 광장 가는 길. 독일식 건축물과 프랑스식 건축물이 혼재돼 있었다.

스트라스부르 구텐베르크 광장에 세워진 구텐베르크 동상.

스트라스부르 구텐베르크 광장에 세워진 구텐베르크 동상.

이 도시에서 가장 붐비는 곳은 구텐베르크 동상이 서 있는 구텐베르크 광장. 스트라스부르 구시가지 중심에 위치해 있다. 광장으로 향하는 골목을 걷는데 의아하다. '마지막 수업' 속 교사는 아이들에게 프랑스어가 곧 조국이며 정체성이라 가르친다. 하지만 실제 이 지역의 모습은 소설의 내용과는 괴리가 있었다. 프랑스어보다 독일어가 더 많이 들렸고, 거리 간판에도 독일어가 대부분이었다. 사실은 이렇다. 소설이 쓰인 당시에도 이 지역 주민 대부분은 독일어 방언을 사용했다. 프랑스어는 행정과 학교에서만 쓰이던 상류층의 언어였다. 프랑스어 교육이 본격적으로 보급된 건 2차 세계대전 이후다. 하지만 아직도 주민 대다수는 독일어에 능통하고, 성도 독일식이라고 한다.


구텐베르크 광장 내 회전목마. 유원지에 놀러온 듯한 느낌이 들었다.

구텐베르크 광장 내 회전목마. 유원지에 놀러온 듯한 느낌이 들었다.

광장에 도착하면 이름답게 구텐베르크 동상이 반겨준다. 스트라스부르는 서양 최초의 금속활자를 발명한 요하네스 구텐베르크가 활동하던 곳이다. 광장은 지배층만 독점하던 책과 문자를 일반 시민도 쉽게 접근할 수 있게 한 그의 업적을 기린다. 그의 동상은 그가 '그리고 빛이 있었다(Et la lumiere fut)'라는 활자가 찍힌 종이를 들고 있는 형상이다. 동상 옆에는 회전목마가 있다. 마치 유원지에 놀러온 듯한 느낌이 드는데 크리스마스 마켓이 매년 이곳에서 열려 따뜻한 겨울 풍경을 만들어낸다고.


고딕 양식의 스트라스부르 대성당. 수직으로 치솟은 첨탑과 정교한 조각미가 눈에 띈다.

고딕 양식의 스트라스부르 대성당. 수직으로 치솟은 첨탑과 정교한 조각미가 눈에 띈다.

스트라스부르 대성당 내부. 스테인드글라스 사이로 빛이 스며든다.

스트라스부르 대성당 내부. 스테인드글라스 사이로 빛이 스며든다.

골목을 따라 조금 더 올라가면 스트라스부르 대성당이 나온다. 노트르담 대성당으로도 불린다. 노트르담은 프랑스어로 귀부인이란 뜻이다. 성모 마리아를 의미한다. 그런데 흔히 알려진, 영화의 배경이 된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을 생각하면 안 된다.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은 프랑스 후기 고딕 양식을 띠지만 스트라스부르의 대성당은 원래 로마네스크 양식이었다가 여러 차례 화재를 겪은 뒤 1176년 고딕 양식으로 개축됐다. 19세기까지 유럽에서 가장 높은 성당이었다고 하는데 그런 만큼 입구에서부터 압도된다. 수직으로 치솟은 첨탑과 정교한 조각미에 빨려든다. 이 성당을 보고 빅토르 위고는 경이롭다고, 괴테는 숭고하다고 극찬했다.


스트라스부르 대성당 내 거대한 천문시계. 시계 바늘로 태양과 달의 위치도 알려준다.

스트라스부르 대성당 내 거대한 천문시계. 시계 바늘로 태양과 달의 위치도 알려준다.

성당 내부는 신비하면서도 웅장한 분위기를 띤다. 색유리가 어우러진 스테인드글라스 사이로 빛이 스며들면 성당 전체가 신성한 빛으로 물든다. 한쪽에는 16세기에 완성된 거대한 천문시계가 자리한다. 시계 바늘로 태양과 달의 위치도 알려주며 일식과 월식에 대한 표시도 있다. 정오뿐만 아니라 부활절의 날짜도 알려준다고 한다. 성당에서 머지않은 곳엔 16~17세기에 지어진 주택들이 운하를 따라 늘어선 거리 '쁘티 프랑스'가 위치한다. 콜롱바주(Colombage) 양식이라 불리는 독일식 반목조주택들이 거리를 장식한다.


콜마르 구시가지 내 골목. 스트라스부르보다는 고즈넉하고 아기자기했다.

콜마르 구시가지 내 골목. 스트라스부르보다는 고즈넉하고 아기자기했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반한 동화 속 마을 '콜마르'


스트라스부르에서 열차로 30분 남짓 달리면 알자스 지방의 또 다른 보석, 콜마르에 닿는다. 스트라스부르가 27만 인구의 주요 도시라면 콜마르는 8만도 안 되는 소도시다. 스트라스부르보다는 고즈넉하고 아기자기한데 그게 이 도시의 매력이다. 동화 속 마을에 들어온 듯한 착각이 든다. 스트라스부르가 독일과의 경계에 있다면 콜마르는 스위스와 조금 더 가깝다.


콜마르의 쁘티 베니스. 이탈리아 베네치아에 견줄 만큼 아름답다고 한다.

콜마르의 '쁘티 베니스'. 이탈리아 베네치아에 견줄 만큼 아름답다고 한다.

콜마르 역시 기차역 인근에 구시가지가 형성돼 있다. 걸어서 10분 정도면 닿는다. 스트라스부르 구시가지와 마찬가지로 중세 분위기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구시가지 주변에는 생 마르탱 대성당을 비롯해 크고 작은 성당과 교회가 자리하고, 운하가 그 사이를 잇는다. 이 도시에 왔다면 꼭 들러야 할 곳이 이 운하다. '쁘티 베니스'라고 불리는데, 이탈리아 베네치아에 견줄 만큼 아름다워 명명됐다고 한다. 스트라스부르의 쁘티 프랑스처럼 독일식 반목조주택들이 물가를 따라 늘어서 있지만 주택들이 알록달록하고 창가마다 꽃이 피어 있어 훨씬 낭만적이다. 운하 위로 비치는 풍경은 한 폭의 그림 같다. 알자스 지방은 와인이 특산품으로 유명한데, 이 운하가 알자스의 와인들을 실어나르는 작은 운하로 사용됐다고 한다.


콜마르 구시가지 내 한 기념품 상점. 크리스마스 관련 상품 위주로 판매하고 있었다.

콜마르 구시가지 내 한 기념품 상점. 크리스마스 관련 상품 위주로 판매하고 있었다.

콜마르의 구시가지는 애니메이션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모티프가 된 곳이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이곳에서 머물며 감동을 받아 풍경을 그대로 작품에 담았다. 목재 골조가 외관으로 드러나는 독특한 건물들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좁은 골목에 다양한 식당과 와인 가게, 카페 등이 즐비하고 있었다. 이곳 콜마르에서도 크리스마스 마켓이 매년 열리는데, 마켓 시즌 시작까지 한 달 가량 남았음에도 이미 상점에선 크리스마스 관련 상품을 판매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콜마르의 크리스마스 마켓은 프랑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겨울 축제로 꼽힌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크리스마스 상품을 항시 기념품으로 내세운다고.


애니메이션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 등장한 건물 메종 피스테르. 콜마르에 최초로 지어진 르네상스 건물이다.

애니메이션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 등장한 건물 메종 피스테르. 콜마르에 최초로 지어진 르네상스 건물이다.

골목에서 관광객들의 발걸음을 특히 사로잡은 건물은 '메종 피스테르'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서 하울이 지붕 첨탑 꼭대기에서 하늘로 날아가는 장면이 있다. 이 장면의 집이 메종 피스테르다. 영화와 조금도 다를 게 없는 똑같은 모습이다. 영화 속 집이 육안으로 펼쳐지니 이게 현실인지 환상인지 헷갈린다. 사실 이 건물은 영화의 배경지로만 유명한 것이 아닌데, 콜마르에 최초로 지어진 르네상스 건물이기도 하다. 1537년 모자를 파는 상인이 지었는데, 다른 건축물보다 훨씬 정교하다. 현재는 와인을 파는 가게로 이용되고 있다. 기념품을 손에 가득 쥔 탓에 와인까진 사지 못했지만, 쌀쌀한 바람을 맞을 때마다 알자스의 겨울 풍경과 와인 향을 상상하게 된다.


글·사진=프랑스 알자스에서 조현희기자 hyunhee@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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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부 조현희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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