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각각(時時刻刻)] 74세의 무대, 11월의 청년에게 건넨 말

  • 전창록 대구가톨릭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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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11-04 06:00  |  발행일 2025-11-03
전창록 대구가톨릭대 특임교수

전창록 대구가톨릭대 특임교수

조명이 꺼지고 기타 전주가 흐르자, 공연장은 한순간 숨을 멈춘 듯 고요해졌다. 많은 관객이 모인 거대한 공간이었지만, 그 안은 마치 한 사람의 마음처럼 집중되어 있었다. 조용필은 마이크 앞에 서서 노래를 시작했다.


"자신을 믿어 믿어봐, 그래도 돼,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돼."


그 가사는 단순한 노랫말이 아니었다. 그것은 한 세대가 다음 세대에게 건네는 허락이자 위로였다. 수많은 조언과 충고가 넘쳐나는 시대에 "그래도 돼"라는 짧은 문장은 오히려 더 단단하고 따뜻하게 다가왔다.


객석에는 세대가 뒤섞여 있었다. 부모 세대는 젊은 시절을 떠올리듯 눈을 감고 따라 불렀고, 그 옆의 청년들은 휴대폰 불빛을 흔들며 낯선 멜로디에 고개를 끄덕였다. 74세의 가수와 20대의 청년이 같은 노래를 부르는 장면은, 세대가 단절되었다는 말이 무색할 만큼 자연스러웠다. 지난 추석 그의 무대는 전국민의 화제였고 그 화제 만큼이나 큰 감동이었다.


11월은 유난히 청년에게 차갑다. 수능을 며칠 앞둔 교실에서는 책장 넘기는 소리마저 조심스러워지고, 자취방과 고시원의 컴퓨터 앞에서는 '지원 완료' 버튼을 누르기 전까지 새벽이 길어진다. 부모 세대는 말한다. "현실을 봐라, 안정적인 길을 택해라." 하지만 현실을 너무 오래 바라본 청년은 꿈을 잃는다. 그때 조용필의 노래가 건네는 메시지는 다르게 다가온다.


"그래도 돼."


잠시 멈춰도, 돌아가도 괜찮다는 말. 책임보다는 회복을, 정답보다는 삶 자체를 먼저 인정해주는 드문 위로다. 그리고 그것은 청년에게만의 위로가 아니다. 11월이 지나고 12월이 되면, 수많은 직장인들이 거리로 나올 것이다. 이직과 평가, 불안과 회의의 계절. "그래도 돼"라는 말은 어쩌면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문장인지도 모른다.


조용필의 삶은 그 말에 신뢰를 더한다. 그는 한 자리에서 버텨온 사람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했고, 그래서 여러 번 새로 시작한 사람이었다. 록에서 발라드로, 트로트에서 팝으로, 그리고 다시 새로운 협업으로. 무대의 조명이 꺼져도, 그는 언제나 다른 방식으로 다시 무대 위로 걸어 나왔다. 오래 버텼기 때문이 아니라, 오래 변했기 때문에 여전히 무대 위에 설 수 있었다.


그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무대에서 노래하다가 죽을 수 있으면 가장 행복할 것이다." 그 말은 나는 계속 변화하는 영원한 현역이고 싶다는 고백이라고 생각한다. 누구에게나 삶이라는 각자의 무대가 있다. 조용필의 노래가 건네는 말은 결국 같다. "지금 잠시 무대에서 내려와도 괜찮다. 그러나 언젠가 다시 올라오라." 멈춤은 실패가 아니고, 포기는 끝이 아니다. 다시 설 수 있다면, 우리는 여전히 현역이다.


이제 거리에 낙엽이 쌓이고, 겨울의 문턱을 알리는 입동이 다가온다. 그러나 겨울은 멈춤이 아니라 준비의 시간이다. 움츠림 속에서 다음 계절을 견디는 힘이 자란다. 청년의 불안도, 중년의 지침도 모두 같은 리듬 안에 있다. 중요한 건 조급함이 아니라, 다시 노래할 마음을 잃지 않는 것이다.


콘서트의 마지막 곡이 끝났을 때, 74세의 젊은 가수가 관객을 향해 말했다. "여러분도 그래도 됩니다." 그 한 문장은 박수보다 큰 울림으로 남았다. 삶이 원하는 만큼 빨리 풀리지 않아도 괜찮고, 잠시 길을 잃어도 괜찮다. 중요한 것은 다시 무대 위로 걸어 나올 용기다. 그래도 된다. 다만 멈추지만 않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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