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프타임] 대구의 화양연화(花樣年華)

  • 노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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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11-04 18:18  |  수정 2025-11-04 20:30  |  발행일 2025-11-04
지방도시도 ‘좋은 시절’ 있었을까
비수도권, 지금은 불균형에 잠식
여러 정부·정치권 균형발전 강조
국가 균형발전, 정책적 지원 통해
대구도 다시 ‘화양연화’ 맞이하길
노진실 사회1팀장

노진실 사회1팀장

'화양연화'(花樣年華).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시절을 일컫는 말이다.


슈테판 츠바이크의 표현을 잠시 빌리자면, 그것은 아마도 '부질없이 지나간 세월 속에서 밤하늘의 별처럼 영원히 빛날' 어떤 순간을 말할 것이다. 흐르는 시간 속에 많은 것이 흐려지지만, 그래도 오래 각인될 '완벽하게 행복했던' 순간 말이다.


'화양연화'라는 표현은 한 유명 영화감독의 영화 제목으로도 널리 알려졌다. 많은 이들이 그 영화를 감독 최고의 수작으로 꼽는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기자가 생각하는 감독의 최고 수작은 '화양연화' 그 다음을 그린 영화 '2046'이다. 전자의 시간이 농축적이고 짧게 느껴진다면, 후자의 시간은 산만하고 다소 지루하게 느껴진다.


일련의 영화들은 홍콩의 상황에 대한 은유를 넘어 우리 인생에 대한 은유다.


인생에서 좋았던 시절은 찰나처럼 지나간다. 그때의 몇 조각 기억을 붙잡고, 그와 대비되는 무기력하고 불확실한 시간을 오래 살아내야 하는 것이다. '화양연화'가 또 올 수 있을까. 희망과 절망을 오가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던지면서.


최근 다시 '화양연화'에 대해 떠올리게 하는 순간이 있었다. 내가 살고 있는 이 도시 '대구'와 관련해서다.


"대구도 한때 정말 잘 나가지 않았나. 대구하면 '자긍심' 그 자체였던 때가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대구도 지역 내 1인당 총생산이 전국에서 꼴찌를 하느니 마느니 하는 상황이 됐다…대구뿐만이 아니다. 광주도, 부산도 그렇고 안 그런 데가 없다."


지난 달, 타운홀 미팅을 위해 대구를 찾았던 대통령이 이 같이 말했다. 과거 대구의 '화양연화'에 대해 거론한 것이다. 극심한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불균형 상황 속에 대구뿐만 아니라, 다른 비수도권 도시들의 처지도 비슷하다고 했다. 이와 함께 대통령은 지역 균형발전의 이유와 중요성을 여러차례 강조했다.


대통령이 대구에서 지역 균형발전의 의지를 다시 보여준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하지만, 균형발전은 그만큼 실현이 쉽지 않은 주제이기도 하다. 여러 정부에서 균형발전의 의지를 내보였다.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권에선 습관처럼 '대구의 재도약'을 이야기했다. 그런데 지금도 대구를 비롯한 비수도권 지역에선 취업이나 '중병'(重病) 치료를 위해 서울·수도권으로 향하는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대구가 한때 정말 잘 나가던 시절은 언제였을까. 지금 대구는 어떤 시간을 보내고 있을까. '화양연화'일까, '2046'일까.


수치가 담지 못하는 분위기가 있다. 적어도 기자의 동료들, 취재를 위해 만난 대구 청년들 상당수는 무기력하고 불확실한 시간을 꽤 오래 살아내고 있는 듯 하다. 고향에 살고 싶어 대구에 정착했지만, 능력을 발휘할 기회는 부족하다고 토로한다. 한정된 기회로 인해 도시 내의 기득권이 더 공고해지는 것에 대해 답답함을 느끼는 이들도 있었다.


국가 균형발전은 여러 정부, 정치권의 오랜 화두였다. 대구를 비롯한 비수도권 지역이 다시금 활기를 찾고, 이 나라 어느 지역에서도 풍요롭고 쾌적한 삶이 가능한 세상은 언제 올까. 지방에서 신산업 육성 등 자체적인 노력을 하더라도, 균형발전에 대한 정부의 확고한 의지와 정책적인 뒷받침이 없으면 힘들 것이다.


대구가 다시 반짝일 시간이 극적으로 찾아왔으면 좋겠다. 그 '화양연화'의 시간이 오래도록 계속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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