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기업’ 새 패러다임 기업승계] 일본 중소기업의 생존 방식 ‘M&A’<3>

  • 홍석천
  • |
  • 입력 2025-11-09 17:51  |  발행일 2025-11-09
일본 동양멘테공업<주> 임직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동양멘테공업 제공>

일본 동양멘테공업<주> 임직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동양멘테공업 제공>

동양멘테공업<주> 본사 전경.<동양멘테공업 제공>

동양멘테공업<주> 본사 전경.<동양멘테공업 제공>

1998년 외환위기 당시, 유례없는 경제 위기 속에서 우리 국민들은 '빅딜' '구조조정'이라는 새로운 경제 용어를 들어야 했다. 당시 빅딜은 대기업 간 사업 교환을 통해 산업 구조를 재편하고, 과잉중복 투자와 부채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생존 전략이었다. 삼성과 LG의 반도체 사업 교환, 현대-기아의 자동차 통합 등이 대표적이다. 당시의 충격으로 기업은 물론 일반 국민들도 빅딜이나 구조조정, 인수합병(M&A)라고 하면 직원 해고와 구조조정, 기업해체 등 부정적 이미지가 큰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제 M&A의 본질은 달라졌다. 기업이 스스로 생존과 성장을 설계하고 있다. 단순한 구조조정이 아닌 미래 성장 동력 확보를 위한 전략적 선택이 된 것이다.


쿠사바 카츠유키 동양멘테공업<주> 대표가 M&A 추진 당시의 상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홍석천기자

쿠사바 카츠유키 동양멘테공업<주> 대표가 M&A 추진 당시의 상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홍석천기자

◆잘 나가던 건물설비 기업이 매각을 결정한 이유


10년전인 2015월 어느 날. 동양멘터공업<주>(이하 TM)의 대표인 쿠사바 카츠유키는 고민의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회사를 경영하면서 향후 생존과 성장에 대해 좀처럼 확신이 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1981년 설립된 TM은 건물 급배수 종합 유지보수 회사로 일본 치바현(縣)을 주무대로 1년에 약 3억엔 이상의 매출을 내고 있었다. 관계사로는 특수관계인이 주식 100%를 보유하고 있는 건물·주택 청소업체인 동양차레<주>(이하 TC)가 있다. TC 역시 3억엔이 넘는 실적으로 외견상 견실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40대 초반의 창업 2세대 쿠사바 대표는 위기가 다가오고 있는 것을 인지했다. 쿠사바 대표는 "당시 TC는 미쓰이부동산이라는 대기업이 주요 고객으로 매출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면서 "TM과 TC가 미쓰이부동산의 자회사라는 농담을 할 정도로 의존도가 높았다"고 설명했다.


대기업이 주요 거래처라는 사실은 역설적으로 가격결정력이 약해지는 결과를 초래했다. 게다가 이 시기에 업계 전체가 제살깎아먹기 식의 가격 경쟁이 불붙으면서 향후 실적악화가 불보듯 뻔한 상황을 맞이 했다. 그는 "이런 상태에서 5년후 10년후의 회사 경영을 구상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고 했다.


이런 와중에 다시 고객사(社)가 관리비 인하 요구하며서 쿠사바 대표는 결국 결단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굳히게 된다. 쿠사바 대표는 "당시 경영자로서 회사를 정리할 지, 아니면 회사를 구할 방법을 찾을 두 가지 선택밖에 없었다. 하지만 회사를 정리하는 것은 직원들을 해고해야 한다는 것과 같은 의미였기에 선택 대상이 될 수 없었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회사를 유지한다는 것은 회사와 직원이 모두 쓰러질 수 있다는 것과 같은 맥락이었다. 그는 동종업계에 있는 회사들에게 시너지를 위한 협업을 제안을 하기도 했지만 비슷한 상황에서 긍정적으로 반응하는 곳이 없었다.


마침내 업계 경계를 넘어 시너지를 낼수 있는 회사가 있을 지 모른다는 생각에 M&A를 선택하게 된다. TM과 TC를 가족경영회사가 아닌 기업으로 탈바꿈 시키는 결심을 한 것이다.


쿠사바 카츠유키(오른쪽 둘째) 동양멘테공업<주> 대표가 중소기업의 생존전략형 M&A 과정에 대해 업계 관계자들에게 설명하고 있다. 홍석천기자

쿠사바 카츠유키(오른쪽 둘째) 동양멘테공업<주> 대표가 중소기업의 생존전략형 M&A 과정에 대해 업계 관계자들에게 설명하고 있다. 홍석천기자

◆기업 매도 후에도 10년간 대표이사로 근무


업계에서는 이 같은 쿠사바 대표의 선택을 성장전략형 M&A라고 정의한다. 후계자가 없어 회사를 매각하는 생존전략형 M&A와 구별하기 위해서다.


TM사의 매각을 담당했던 일본M&A센터의 사이토 이사는 "당시 일본 M&A시장에서는 대부분 경영진 고령화로 인한 매각이 대부분이었다"면서 "성장전략형 M&A라는 말이 나온 것도 약 5년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이 단어가 나온 이유는 30~40대 젊은 경영진이 회사 성장을 위해 M&A에 나서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후계 문제가 아니라 새로운 성장 전략으로 M&A를 선택한 TM사와 TC사를 놓고 4개 기업이 인수의사를 밝혔다. 대기업이 아닌 중소기업의 인수를 위해 4개 기업이 나선 것은 극히 이례적이었다. 미쓰이부동산이라는 확실한 거래처와 함께 높은 시장 점유율, 직원 조직력과 업무 퀄리티 등이 후한 점수를 받은 것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회사를 매각한 당사자인 쿠사바 카츠유키 대표가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TC대표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표직 10년 유지가) 계약 조건 중 하나였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쿠사바 대표는 "중개업체의 도움으로 매도 조건에 넣을 수도 있었지만 결국 계약서에는 2년으로 명시했다"며 웃어보였다.


이에 사이토 이사는 "성장전략형 M&A의 경우 인수기업과 지향성이 맞을 경우 기존 경영진이 꾸준히 근무하는 사례가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M&A라는 고비를 넘긴 쿠사바 대표의 앞에는 조직융합이라는 더 큰 숙제가 있었다. 그는 "가족회사의 특성상 회사 내에 근무하던 친인척의 퇴사를 책임져야 했다. 기존 주주이기도 해 반발이 심했다. 가장 아픈 기억이기도 하다"면서 "이와 함께 회계시스템과 사내 근무구조를 모기업에 맞춰 새롭게 셋팅해야 했다. 힘들어 하는 직원들을 독려하는 것도 힘든 부분이었다"고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서 "가고 싶지 않은 회식을 가야하는 경험도 적지 않은 고역이었다"며 웃음을 지었다.


쿠사바 카츠유키(왼쪽 셋째) 동양멘테공업<주> 대표가 업계 관계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홍석천 기자

쿠사바 카츠유키(왼쪽 셋째) 동양멘테공업<주> 대표가 업계 관계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홍석천 기자

◆"M&A는 성장의 한 방법...후회는 없어"


그렇다면 쿠사바 대표가 이런 우여곡절을 감수하면서도 M&A를 추진한 TM사의 현재 모습은 어떨까.


M&A의 성과에 대한 물음에 쿠사바 대표는 "100% 만족한다"고 했다. 실적의 경우 6억엔 수준이던 매출이 50% 이상 성장해 10억엔을 돌파했다. 신규시장 진출도 큰 성과 중 하나다. 쿠사바 대표는 "최근 도쿄 고급 주거단지의 사업을 수주했고, 내년까지 50건 이상의 계약을 따낼 수 있을 것 같다"면서 "이 같은 성과가 가능했던 배경에는 M&A를 통해 회사의 대외 신인도 향상과 함께 조직의 체질 자체도 좋아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 중에서도 그가 가장 자부심을 느끼는 성과는 직원들의 근무조건 개선이었다. "가족회사 당시 주 6일 근무에 고정 야근과 고정 잔업이 많았다. M&A를 통해 주5일 근무와 고정 야근, 고정 잔업을 없애겠다고 약속했다. 그 약속을 지킬 수 있는 것이 가장 큰 보람"이라며 자랑스럽게 말했다. 근무일 감소에도 급여를 인상해 줌으로써 직원들의 신뢰를 유지할 수 있었다.


쿠사바 대표는 가족경영을 탈피하거나 성장성 한계로 인해 M&A를 검토중인 한국의 중소기업에 대해 "바뀌어야하는 상황이 왔다면 (M&A에) 뛰어 들어야 한다. (M&A를) 할 수 밖에 없다"면서 "가족과 주위의 반대가 분명히 있을 것이지만 핵심은 회사를 어떻게 존속시킬 지가 가장 중요한 문제라는 것"이라고 조언했다.


마지막으로 10년 전으로 다시 돌아간다면 같은 선택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지난 10년 동안 (M&A 말고) 다른 방법을 선택하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면서 "하지만 회사와 직원의 생존, 그리고 지속 성장이라는 관점에 이 보다 더 좋은 선택지가 있을 것 같지 않다"고 다시 같은 상황이 되더라도 같은 선택을 할 것이라고 했다.



기자 이미지

홍석천

기사 전체보기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경제인기뉴스

영남일보TV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

영남일보TV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