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구로에서] 문 닫는 기업에서, 이어받는 기업으로
지역 경제의 주춧돌인 중소기업의 공장과 사무실, 그 안의 불빛들이 하나둘씩 꺼지고 있다. 사장은 일흔을 넘겼지만, 회사를 맡을 사람이 없다. 자식은 기름때를 묻히는 일보다 현재 하고 있는 전문직을 지속하길 바라고, 직원 중에 사업을 이어받을 만한 의지나 능력이 있는 이가 보이지 않는다. 수십 년을 쌓은 기술 노하우와 거래 네트워크가 허망하게 결국 문을 닫는다. 이른바 한국 중소기업의 이른바 '무후(無後) 기업'의 모습이다. 실제로 제조업 대표의 평균 연령은 50대 후반을 넘어섰다. 2023년 기준 중소 제조업 CEO 평균 연령은 55.4세까지 높아졌다. 열명 중 네 명이 60세 이상으로 10년 새 2배 이상 늘었다. 문제는 단순한 고령화가 아니다. 고령화에서 파생되는 문제들, 즉 창업자의 퇴진 이후를 준비하지 않는 문화, 세제와 제도의 높은 문턱, M&A시장의 미성숙 등이 동시에 현실에서 작동한다. 창업세대들은 '나 없이는 돌아가지 않는다'라는 개발시대의 책임감을 그대로 가지고 있고, 정부 역시 현실에 맞지 않는 상속공제 요건을 엄격히 묶어 두고 있다. 가업상속공제를 활용하는 기업이 전체의 1%도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M&A시장의 서비스 성숙도도 높진 않다. 매수자는 재무지표만을 들여다보며 '얼마나 벌 수 있나'라는 계산을 먼저 한다. 많은 중소기업에게 회사를 인수할 곳이 있어 매각하라고 하면 대부분 이런 '기업사냥꾼'을 먼저 떠올리며 고개를 저어버리는 이유다. 거래가 성사되더라도 수익 중심의 재무형 M&A가 많아지면 '단기 실적 개선'에 치우친다. 고용, 기술 혁신, 연관 산업 발전이라는 기업의 사회적 공헌엔 무관심해질 수밖에 없으니 지역의 기술기업·뿌리산업은 조용히 사라질 수밖에 없다. 이와 대조적으로 일본은 2010년대 이후 이 문제를 '국가 성장 전략'으로 풀어가고 있다. 전국 47개 도도부현에 사업승계·인수지원센터를 세워 정보를 표준화하고, 가업승계세제 완화로 세금 리스크를 줄였다. 공공과 민간이 함께 '승계는 성장'이라는 합의를 만들어낸 것이다. 실제로 일본의 중소 M&A 건수는 최근 10년 새 15배 가까이 늘었다. 무엇보다 일본은 '누가 사느냐'보다 '어떻게 이어가느냐'를 중점적으로 보고 있다. 인수 후 경영통합(PMI)을 정책금융과 연계해 지원했다. 지방은행은 서치펀드형 금융으로 창업 의지 있는 젊은 경영자에게 기회를 열었다. '경영을 물려받는 것'이 새로운 창업으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이다. 한국도 이제는 '지키는 경영'에서 '이어지는 경영'으로 바꿔야 한다. 이를 위해서 먼저 일정 연령 이상의 기업은 '승계 리스크 진단'을 의무화하고, 이를 금융·R&D 지원과 연동해야 한다. 그리고 가업상속공제를 'PMI 연계형 세제'로 개편해, 승계 후 성장계획이 있는 기업에는 규제를 완화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서치펀드·PMI 금융을 본격 도입해 젊은 경영자와 기존 기업을 연결해야 한다. '승계 가능한 경영'이란 결국 지식과 신용, 사람을 데이터로 남기는 경영이다. ERP, 공정표준, 거래처 데이터, 노하우 매뉴얼 같은 '보이지 않는 자산'을 체계화할 때 기업은 다음 세대에 매력적으로 보인다. 기업의 생명은 제품이 아니라 지속성이다. 창업자가 세운 회사를 누군가가 이어받아 키울 수 있을 때, 지역의 일자리와 세금, 기술이 이어진다. 일본이 증명했듯이, '폐업 리스크'는 '성장의 기회'로 전환될 수 있다. 홍석천기자 hongsc@yeongna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