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중소기업들에게 최고경영자(CEO) 고령화 우려가 점차 현실이 되고 있다. 국내 제조업 중소기업 CEO 가운데 60세 이상 비중은 2012년 14.1%에서 2022년 33.5%로 급증했다. 이들 대부분은 자녀들이 기업을 이어받기를 희망하지만, 정작 자식들은 가업승계를 원치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 고령화된 경영진과 후계자 부재가 맞물리며 중소기업 현실에서도 M&A(인수합병)는 절박한 과제로 급부상하고 있다. 우리보다 일찍 고령화 사회에 진입한 일본은 이미 CEO 고령화 현상을 체감하고 있다. 1970년대 고도 성장기에 대거 창업에 뛰어든 일본판 베이비부머 세대인 단카이 세대(1947~1949년생)가 은퇴 연령에 도달했지만 회사를 물려줄 후계자를 찾지 못하면서 CEO 고령화가 일본 기업들의 최대 문제로 부각됐던 것이다. 일본 중소기업청에 따르면 올해까지 평균 은퇴 연령 70세를 넘는 중소기업 경영진은 245만명에 달한다. 하지만 이 중 127만명이 사업을 승계할 후계자를 찾지 못한 상태다. 영남일보는 일본의 '중소기업 CEO 고령화' 상황과 이를 극복하기 위한 현지 기업들의 사례, 관련 기관들의 지원 정책 등에 대해 알아보고 이를 6회에 걸쳐 지면에 게재한다.
일본은 장수기업의 대명사다. 2024년 창업 100주년을 맞은 기업만 2천519곳이다. 이로써 창업 100년을 넘긴 노포기업 숫자는 4만5천곳을 돌파했다. 사이타마현의 건설회사 야마토야 등 6곳은 200년 이상 됐고, 나가사키현의 유명 카스텔라 업체 후쿠사야 등 8곳은 400년 이상을 운영해 왔다. 1천년 기업도 8곳에 달한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기업 1~5위가 모두 일본에 있는 이유다.
하지만 올해는 중소기업의 나라, 장수기업의 나라 일본에 있어 중요한 전환점이 되는 시기다. 2025년은 일본의 베이비붐 세대의 평균 연령이 75세를 넘어서는 해이기 때문이다.

사장평균연령 및 사장 교체율 추이. <제국데이터뱅크 제공>
◆늙어가는 일본 중소기업 CEO
"단카이 세대가 75세 이상이 되는 상황에서 사업승계 활성화를 기다릴 수 없는 상황이다.…(중략) 경영자, 후계자 후보, 그리고 지원기관 등이 사업승계 대응에 착실히 추진할 수 있도록 최신 실무 관행 등을 반영하는 등 개정을 했다."
일본 중소기업청이 2022년 3월에 개정한 '사업승계 가이드라인'의 서문 중 일부다. 중소기업 CEO의 고령화와 후계자 부재, 이에 따른 중소기업 지속성 하락이라는 고리를 끊기 위해 정부가 인식하고 있는 기업승계 현실과 극복 방향을 제시한 것이다.
실제로 일본의 중소기업 고령화는 경제에 치명적 요인으로 분류되고 있다.
일본정책금융공고(JFC) 종합연구소의 '경영자 고령화 진행과 사업 승계 문제'에 따르면 일본 경영자 평균 연령은 2004년 12월 57.97세에서 2014년 8월 59.82세, 2019년 10월에는 60.99세로 지속 상승하다가 2023년 1월 62.33세로 크게 올랐다. 또 2004년 12월 경영자 전체에서 60세 이상이 차지하는 비율은 44.5%, 70세 이상 비율은 13.5%였으나 2014년 8월에는 각각 54.9%, 20.4%, 2019년 10월에는 각각 55.8%, 26.9%로 높아졌으며, 2023년에는 58%, 30.9%에 달했다.
도쿄상공리서치 조사에서도 상황은 비슷했다. 2023년 기준 기업 사장의 평균 연령은 63.76세로 2022년 63.02세보다 높아졌다. 이는 조사 시작 이래 최고치다. '70대 이상' 사장의 구성비가 35.49%로 가장 높아 사업승계 지연 문제가 두드러졌다. JFX종합연구소는 "경영자의 고령화는 은퇴가 가까운 경영자가 늘어나면서 오고 있음을 의미한다"며 "경영자가 사업에서 물러났을 때 어느 정도의 기업이 지속되고, 어떤 기업이 폐업 가능성이 높은 지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후계자 없는 中企 127만곳 달해
우리나라와 비슷하거나 조금 이른 시기에 산업화를 진행했던 일본의 많은 중소기업들은 이제 후계자 부재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30~40년간 기업을 운영한 60대 후반에서 70대가 된 경영자들이 은퇴할 시기를 맞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이 후계자를 찾는 것은 난항의 연속이다. 고학력 자녀들은 이미 대도시에서 전문직이나 안정적인 직장을 영위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하루 종일 기름때 묻은 작업복을 입고 현장에서 일하고 싶지 않다"며 "차라리 회사를 팔이 돈으로 달라"는 입장이다. 그렇다고 회사 직원 중에서 경영을 이어갈 사람을 찾으려는 시도도 만만치가 않다. 대도시가 아닌 이상 당장에 회사에서 일할 직원을 구하는 것도 어려운 마당에 후계자 육성은 엄두를 내기 어려운 상황이다.

후계자 난도산 사장 연령<제국데이터뱅크 제공>
일본에서만 127만개가 되는 중소기업이 후계자 부재로 폐업이나 도산 위기에 직면할 것으로 우려된다. 이런 우려가 현실화 될 경우 약 650만명의 노동자들이 실직자로 전락하고, 200조원 규모의 GDP(국내총생산) 손실이 예상된다. 현재 일본의 중소기업 지속성에 대한 우려는 도쿄상공리서치의 자료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2024년 연말 발표한 조사에서 '후계자 부재율'은 62.15%로 전년도 61.09% 보다 1.06%포인트 상승했다. 대표자가 50대 기업에서는 71.8%, 60대에서도 47.8%로 절반 가까운 기업에서 후계자 문제가 해결해야 할 숙제가 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후계자 부재율 조사를 시작한 2019년(55.61%) 이래 2020년(57.53%), 2021년(58.62%), 2022년(59.90%), 2023년(61.09%)로 지속적으로 우상향 곡선을 그리고 있는 모습이다.
도쿄상공리서치 관계자는 "기업 대표자가 고령인 경우 후계자 부재로 인해 도산이나 돌발적인 폐업, 채무불이행으로 이어질 우려가 커진다"며 "기업의 장기적인 존속에 있어서 피할 수 없는 것이 후계자 문제"라고 지적했다.
◆높아지는 CEO 고령 리스크
경영자의 고령화에도 후계자가 없는 상황이 확산되면서 실제 기업 자체가 문을 닫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제국데이터뱅크에 따르면 지난해 '경영자의 병이나 사망'으로 인한 일본 중소기업의 도산은 모두 316건에 달했다. 또 후계자 부재로 인해 도산한 기업 역시 507건이 발생했다. 전년도에 이어 2년 연속 500건을 웃돈 것이다. 후계자 부재로 문을 닫은 기업의 도산시 평균 사장 연령은 2024년 기준 69.8세였다.

일본은 2010년대 이후 중소기업 경영진의 고령화 심화와 후계자 부재로 흑자 도산하는 기업이 급증하자 M&A 매칭 플랫폼 운영과 국책금융기관의 인수금융 확대, 그리고 세제 혜택까지 병행하며 기업의 지속적 성장에 대한 지원을 늘리고 있다. 사진은 중소기업 M&A 기업들이 밀집해 있는 일본 도쿄역 인근 오피스 빌딩 전경. 홍석천기자
제국데이터뱅크 관계자는 "고령이 되면 병·사망 등 '불측의 사태'에 휩쓸리는 리스크도 증가한다"면서 "사장 평균 연령이 계속 상승할 경우 앞으로도 후계자 부재에 따른 도산 가능성이 커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도쿄상공리서치도 비슷한 우려를 제시했다. 2024년 후계자 부재가 요인이 된 도산(부채 1천만엔 이상)은 462건으로 전년 대비 7.4% 증가했다. 이는 5년 연속 최다 도산 수치를 경신한 것이다. 주요 원인으로는 대표자의 사망이 257건으로, 2022년의 223건을 넘어섰다. 고령 대표자의 경우 사업 승계 준비나 후계자 육성이 늦을수록 사업 지속성에 큰 지장을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후카누마 히카루 JFC종합연구소 연구주간은 "경영자의 고령화에 따른 폐업 문제가 심화되면서 파장이 확산될 우려가 커진다"며 "다양한 사업승계 활성화를 통해 경영자원의 소산을 막는 것이 중요한 과제가 되는 시점이 다가오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홍석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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