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메일] 순수함을 잃어가는 아마추어 스포츠

  • 박영기 대구시체육회장
  • |
  • 입력 2025-11-16 22:21  |  발행일 2025-11-16
박영기 대구시체육회장

박영기 대구시체육회장

전국체전이 끝나면 어김없이 '비공식 이적 시장'이 열린다. 뛰어난 성적을 거둔 선수들은 재정이 넉넉한 다른 시·도의 스카우트를 받는다. 반면 예산이 부족한 지역은 그들을 붙잡기 위해 고심한다. 이름은 '아마추어'이지만, 이미 돈의 논리가 깊숙이 스며든 현실이다.


스포츠는 본래 인간의 순수한 경쟁 본능과 감동을 담는 무대였다. 승자와 패자가 함께 존중받는 공정한 경기, 그것이 우리가 지켜온 스포츠의 본모습이었다. 그러나 오늘날의 스포츠는 단순한 경기를 넘어 거대한 산업이자 하나의 '상품'이 되었다.


문제는 이러한 자본의 논리가 프로를 넘어 아마추어 영역까지 깊숙이 침투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학, 실업팀, 심지어 학교 운동부까지 스카우트 경쟁의 장으로 변하고 있다.


과거에는 인격 수양과 교육의 연장선에 있던 아마추어 스포츠가 이제 '성적 지상주의'와 '시장 가치'의 틀 속에 갇혀버렸다. '즐기는 운동'은 사라지고 '성공을 위한 투자'만 남았다.


물론 이러한 변화가 전적으로 나쁘지만은 않다. 자본이 유입되면서 선수들의 처우와 훈련 환경이 개선되고, 안정적인 지원 속에서 기량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게 되었다. 아마추어 선수들도 자신의 브랜드 가치를 만들어갈 수 있는 시대가 열렸다. 스포츠가 지역경제를 살리고 일자리를 창출하는 산업으로 자리 잡은 것도 분명 긍정적이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깊은 불균형이 존재한다. 인기 종목에는 후원과 돈이 몰리고, 비인기 종목은 여전히 생존을 걱정해야 한다. 같은 아마추어라도 종목에 따라 지원 수준은 천차만별이다. 성적 중심의 구조는 인간적 성장을 위한 '교육의 장'이라는 아마추어 스포츠의 본질을 서서히 갉아먹고 있다.


더 심각한 문제는 돈이 스포츠의 순수성을 위협하고 있다는 점이다. 승부조작, 도핑, 불법 베팅 등 스포츠를 병들게 하는 사건들은 대부분 '돈'의 유혹과 연결되어 있다. 팬들의 관심도 '팀의 철학'보다는 '스타 마케팅'에 쏠리면서, 장기적인 선수 육성보다 단기적인 흥행에 집중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심지어 경기 일정조차 방송 수익에 맞춰 조정되는 현실이다.이제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돈의 시대' 속에서 우리가 지켜야 할 스포츠의 가치는 무엇인가.


첫째, 아마추어 스포츠의 지속 가능성이 우선이다. 돈이 흘러드는 구조 속에서도 선수의 교육, 인권, 진로 보장이 제도적으로 뒷받침되어야 한다. 정기적인 인성 교육, 공정한 계약 시스템, 부상 후 복귀를 지원하는 사회적 안전망이 필수적이다.


둘째, 종목 간 균형 발전이 필요하다. 국가나 지방정부는 인기 종목에 치우친 지원 구조를 바로잡고, 비인기 종목의 기반을 꾸준히 강화해야 한다. 종목의 다양성이 유지되어야 진정한 의미의 스포츠 문화가 형성될 수 있다.


셋째, 지역 기반의 스포츠 생태계 복원이 이루어져야 한다. 학교, 생활체육, 지역 스포츠클럽이 유기적으로 연결될 때만이 '체육 저변 확대'가 가능하다. 지역이 곧 스포츠의 뿌리가 되어야 한다.


결국, 우리가 응원해야 할 것은 한 명의 스타가 아니라 한 팀의 철학이다. 결과보다 과정의 의미를, 승리보다 노력의 가치를 존중하는 문화가 자리 잡아야 한다. 돈이 아닌 '사람'을 중심에 두는 스포츠만이 진정한 감동을 줄 수 있다.


스포츠는 단순히 승패를 가르는 경쟁이 아니다. 그것은 사회를 하나로 묶는 문화이자,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꾸는 기회의 장이다. 그 속에서도 우리가 잃지 말아야 할 가치는 바로 '순수함'이다. 이제 선택은 우리에게 달려 있다. 돈이 스포츠를 잠식하도록 방치할 것인가, 아니면 돈을 통해 스포츠의 정신을 더욱 빛나게 할 것인가. 아마추어 스포츠의 미래는 우리 사회의 성찰에 달려 있다.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오피니언인기뉴스

영남일보TV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

영남일보TV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