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미 변호사
유아 정도의 지능을 가진 20대 남자 피고인이 어머니와 함께 사무실에 왔다. 피고인은 상담실 의자에 몸이 담기지 않을 정도로 살이 많이 쪘다. 피고인의 어머니는 체구가 작고 몹시 말랐는데, 어머니와 대화하다 보니 어머니도 지능이 낮거나 장애가 있어 보였다. 함께 온 아들과 어머니 모두 행색이 초라했다.
사건은 이렇다. 둘은 기초생활수급자이고 아들은 지적장애인이다. 아들은 집에 누워만 있다가 오랜만에 좋아하는 콜라를 사러 편의점에 갔다. 콜라 몇 캔을 꺼내서 계산하는데 편의점 직원이 비닐봉지에 콜라를 담았다. 지능이 낮은 아들은 편의점 직원이 콜라를 빼앗는 줄 알고 비닐봉지를 거칠게 빼앗고 사람들이 알 수 없는 그만의 언어로 소리친다. 내 콜라라고. 그렇게 피고인은 편의점 업무를 방해한 죄로 재판을 받게 되었다.
그런데 상담 중 피고인이 자꾸 나에게 침을 뱉었다. 그는 가만히 앉아 있지도 못해서 자꾸 상담실 밖으로 나가려고 했고, 몇 번을 피고인 어머니가 복도에서 잡아 오고 겨우 초콜릿으로 유혹해서 앉힌 상태라 침을 뱉더라도 일단 밖으로 나가지 않는 게 더 다행인 상황이었다.
피고인에게는 우울증, 당뇨, 고지혈증, 고혈압과 같은 지병도 있었는데 피고인은 늘 라면에 콜라를 즐기고 집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고 했다. 피고인의 어머니 말에 의하면, 피고인의 아버지는 지인으로부터 살해당했고 그 충격으로 피고인의 어머니도 정신적으로 심히 불안하고 중증 우울증이 생겼다고 한다. 나는 피고인의 어머니에게 피고인이 더 살찌면 건강이 많이 안 좋아질 것 같아서 집 밖에 나가서 동네라도 돌고 운동시켜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자 피고인의 어머니는 자신도 우울증이라 뭘 할 의욕도 없고, 아들도 반지하 좁은 방에 몸이 가득 차도록 누워만 지낸다며 둘 다 우울하니까 서로에게 나가자 소리를 안 한다고 했다. 수급비로는 질병에 맞는 식단을 구성해서 밥을 먹는 것도 어렵다고 했다.
상담 다음 날 나의 책상에는 피고인의 어머니가 쓴 쪽지가 올려져 있었다. 피고인의 어머니는 집에 가서도 피고인이 나에게 침을 뱉은 것이 미안했던지 다음 날 다시 우리 사무실로 와서 '아들이 불안할 때면 침을 뱉는다, 미안하다, 이해해 달라'는 내용의 쪽지를 남긴 것이다.
얼마 전 아들이 "엄마 사건 얘기 좀 해줘"라고 했다. 아들은 가끔 내가 맡은 사건 이야기를 듣고 싶어했다. 나는 문득 이 사건이 생각나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안타까웠던 어떤 형아 이야기야"로 시작한 이야기가 끝을 맺을 무렵, 아들이 물었다. "엄마, 그 형도 자꾸 밖에 나가고 열심히 돌아다니면 살도 빠지고 건강해질 수 있잖아."
나도 그렇게 생각했었다. 사지 멀쩡한데 일하지 않는 사람이 많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내가 노숙자가 되었다고 생각해보자. 나는 당일 얼마를 구걸로 모아야 씻고 냄새나는 옷 갈아입고 머리카락 정리하고 일자리를 구하러 나설 수 있을까. 일자리 정보도 있어야 하고, 연락받을 휴대폰도 있어야 하고, 일하는 동안 머물 곳도 있어야 하고, 결정적으로 몸을 일으킬 신체적 기력과 더불어 '마음의 기력'도 있어야 한다.
나는 아들에게 말했다. "가난하면 집 밖에 잘 못 나가." 아들에게 왜 그런지 설명해 주면서 나도 이해하지 못했던 나의 피고인들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가난해도, 어떤 처지에 있어도 사람은 누구나 행복해지고 싶어 한다는 것을 잊지 않고 사람을 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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