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예신 변호사(법무법인 JPK)가 대구 수성구 사무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년간 치과의사로 일하다 법조인의 길을 선택한 그는 의료분쟁 전문 변호사로 활동 중이다.이현덕기자 lhd@yeongnam.com
박예신 변호사(법무법인 JPK)가 의료분쟁 사건과 법조 경험을 이야기하며 인터뷰에 답하고 있다. 그는 치과의사 출신으로, 의료 현장에서 느낀 제도적 한계를 계기로 법조인의 길을 선택했다.이현덕기자 lhd@yeongnam.com
20년간 치과의사로 일했다. 하지만 지금은 법조인의 길을 걷고 있다. 박예신(45) 변호사의 이야기다. 건강보험 제도와 의료 현장의 간극 속에서 느낀 구조적 부당함, 환자와 의사 간 보이지 않는 감정의 골, 그리고 자신에게 던진 "내 적성과 삶의 방향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그의 인생 2막을 이끌었다. 치과의사와 변호사, 두개의 직업을 모두 경험한 그의 시선은 의료제도 개선과 의료분쟁 해결, 그리고 자신의 길을 다시 고민하는 이들에게 이정표(里程標)가 될 수 있어 보였다. 다음은 박 변호사와의 일문일답.
▶언제 '법을 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나.
"어릴 때부터 말 잘 듣는 '모범생'으로 살아왔고, 밖에서 '이게 옳다' 하면 그대로 따랐다. 30대 중반쯤부턴 '이건 부당한데, 이건 아닌 것 같은데' 라는 생각이 분명하게 드는 일이 생겼다. 2006년 치과의사 면허를 따고 2011년 개원한 뒤 건강보험공단·심사평가원·보건소와 부딪히면서 의료 현장-행정기관 사이의 괴리를 뼈저리게 느꼈다. 환자를 위해 정당하다고 믿고 한 치료가 사후 심사에서 '급여 기준 위반'이라는 이유로 불법처럼 취급될 때가 있었다. 의사는 환자를 보고 판단한다. 근데 공단·심평원은 서류와 규정만 본다. 그 간극이 너무 컸다. 의료 외 사회 전반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더 부당하게 느꼈던 것 같기도 하다. '내가 다른 분야를 몰라서 이해를 못 하는 건 아닐까'하고 스스로를 돌아보면서, 의료 밖 세계에선 오히려 일반인보다 부족할 수 있겠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됐다. 사회 시스템 전반을 이해하려면 무엇을 공부해야 할지 고민했고, 그 답이 '법'이라고 봤다. 개원 7년차였던 2017년 로스쿨에 입학했고, 2020년 변호사시험에 합격했다. 이후 법무법인 소속 변호사로 일하다 2023년초 개인 법률사무소를 열었다. 현재는 법무법인 JPK에서 일한다."
▶ 두 직업을 모두 겪어본 뒤 느낀 가장 큰 차이는.
"근무 시간과 공간의 유연성이다. 의사, 특히 개원의는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늘 같은 자리에 있어야 한다. 환자가 '다음달 올게요'라고 하면 그날 반드시 있어야 한다. 변호사는 다르다. 오전엔 서울 재판, 오후엔 부산 일정이 잡히기도 하고, 온종일 사무실에 앉아 있지 않아도 된다. 일이 밀리면 저녁이나 새벽에 집에서 일하기도 한다. 같은 시간을 일해도 시간·공간을 훨씬 유연하게 쓸 수 있다. 어린 쌍둥이(5살)를 키우는 엄마 입장에선 갑자기 아이가 아프거나 어린이집에서 '지금 바로 오라'는 연락이 오기도 한다. 병원처럼 자리를 쉽게 비우기 어려운 직업보다는 일정을 조정하며 일할 수 있는 변호사가 육아와 병행하기엔 훨씬 낫다."
▶법무법인 형태를 선택한 이유는.
"의사 출신이지만, 법무법인 JPK가 의료소송만 하는 로펌은 아니다. 대구지법 판사로 정년 퇴임한 김진석 변호사, 국세청 출신 곽미경 변호사, 부동산 전문 조이황 변호사 등 각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하고 있다. 평소에는 각자 전문 분야 사건을 맡지만, 수 십·수백 명이 연관된 단체소송이나 국가조달, 대형 입찰 사건은 혼자 감당하기 어렵다. 이런 사건들을 염두에 두고 처음엔 개인 법률사무소로 출발했다가 구성원들이 합류하면서 법무법인으로 전환했다."
▶의사 출신 변호사로서 의료분쟁사건 수임시 강점은.
"진료기록을 읽고 해석할 수 있다는 점이다. 처음 상담할 때부터 진료기록을 꼭 가져오라고 요청한다. 기록도 보지 않고 '의사가 잘못했다니까 소송합시다'라고 하는 방식은 선호하지 않는다. 의료소송은 비용이 크고, 패소하면 상대방 소송비용까지 물어줘야 한다. 환자가 패소하면 수 백만~수 천만 원을 부담해야 하는 일도 생긴다. 진료기록을 보면 과실 가능성이 있는 애매한 사건도 있지만, '이건 명백히 과실이 아니다'라고 판단되는 사건도 있다. 실제 과실이 아니라 의사소통 문제나 기대 차이에서 비롯된 갈등인 경우도 많다. 이런 사건을 굳이 소송으로 끌고 가면 환자 입장에선 경제·정서적 손해만 커질 수 있다. 그래서 '이건 소송하실 일이 아니다, 과실로 보기 어렵다'고 분명히 말씀드린다. 법인 입장만 보면 소송을 수임하는 게 매출에 도움되지만, 확신이 들지 않는 사건은 '하지 않는 게 맞다'고 말해야 한다. 그게 의사 출신 변호사의 역할이다. 의뢰인은 환자만이 아니다. 의사 의뢰인도 많아서 체감상 의사와 환자가 거의 반반이다. 의사들은 다른 로펌에 가면 자신의 상황을 1부터 100까지 다 설명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진료 현장에서 20년 가까이 일해 본 입장에선 몇 가지만 들어도 '아, 그 상황이구나' 하고 바로 맥락을 이해할 수 있다. 말을 다 하지 않아도 '이미 내 상황을 알고 있다'는 신뢰, 그게 의사 출신 변호사의 강점이다."
▶환자와 의료인 사이 갈등 지점은.
"민사사건에 한정해 보면, '의사가 진심으로 미안하다고만 했어도 여기까지 오지 않았을 것'이라는 말을 정말 많이 듣는다. 환자는 분명 피해를 입었다고 느끼는데, 의사가 사과조차 하지 않으면 '나를 인간으로 존중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그때 갈등이 급격히 심화된다. 여기에 가족들이 '의사가 일부러 그랬겠냐, 그냥 넘어가라' '의료소송은 이겨도 손해다, 계란으로 바위 치기다'라고 말하면 환자는 '나를 이해해 주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고 느끼게 된다. 외로움, 고립감이 심해져 우울증이나 불안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는 경우도 적잖다. 소송이 항상 답은 아니지만, 의사가 스스로 과실이 있다고 판단한다면 너무 방어적으로만 나가지 말고, 과실을 인정하고 진심으로 사과하는 게 분쟁 확대를 막는 데 분명히 도움이 된다. 사과 한 마디로 모든 게 해결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나를 인간으로 대했다'는 경험은 환자에게 매우 중요하다. 결국 의사에게도 이익이 되는 경우가 많다."
▶ '인생 2막'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조언을 해준다면.
"치과의사 생활 자체는 좋았다. 경제적으로나 사회적 지위면에서도 의사·변호사는 모두 나쁘지 않은 직업이다. 그래도 꼭 말하고 싶은 건, 사람마다 타고난 천성과 적성이 분명히 다르다는 점이다. 좋아하는 것도, 잘하는 것도 다른 데 우리 사회는 너무 획일적으로 교육을 시켜왔다. 책상 앞 공부를 잘하는 방식만이 기준처럼 굳어져 있다. 이미 직업을 가진 20·30대, 그 이후 세대라도 지금 하는 일이 너무 힘겹고, 나와는 잘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계속 든다면, 그걸 '내가 부족해서 그렇다'고만 여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혹시 내 성향이나 적성과 이 일이 근본적으로 맞지 않는 건 아닐까'라고 한 번쯤 스스로에게 물어봤으면 한다. 충분히 고민한 끝에 '나는 이런 사람이구나'라는 결론이 선다면, 그때는 한 번쯤 용기를 내도 좋다고 생각한다. 물론 의사 같은 전문직이 있어 '돌아갈 곳이 있다'는 안전망이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조건이 다르다. 그래서 이 말을 가볍게 할 수 없다는 것도 잘 안다. 그럼에도 '내가 나답게 살기 위해, 한 번쯤 다른 길을 고민해봐도 된다'는 말만큼은 인생 2막을 고민하는 많은 이들에게 꼭 해주고 싶다."
강승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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