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형식 거리활동가
문자의 탄생은 기록을 낳았고, 이 축적된 지식을 보존하려는 노력은 시대에 따라 점토판, 양피지, 죽간, 종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매체로 진화해 왔다. 그만큼 책은 인류의 역사와 궤를 같이하며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다. 그리고 이 책들을 모으고, 간직하며, 나누고, 함께 읽을 수 있는 공간이 바로 '지식의 창고'이자 '지혜의 집'이라 불리는 도서관이다.
고대 세계에서 도서관은 문명의 심장부이기도 했다.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후원 아래 세계 최대 지식의 보고였던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은 전쟁과 종교적 갈등 속에서 사라졌지만, 지식을 향한 도서관의 정신은 꺼지지 않고 시대와 장소를 달리하며 면면히 계승됐다.
대구의 도서관 역사는 조선시대인 1721년, 경상감영에 설치됐던 교육기관이자 도서관인 낙육재(樂育齋)가 그 시초다. 지역 지식문화의 중심이었던 낙육재는 일제 침탈 후 폐지됐다. 이후 근대적 의미의 도서관 효시는 1904년, 대구 부호 이동진이 세우고 그의 아들인 이일우가 운영한 우현서루(友賢書樓)다. 동서양 장서 1만여 권을 갖추어 '만권당(萬卷堂)'이라 불렸던 이곳은 일제의 탄압으로 폐쇄되었으나 그 정신은 교남학교와 대륜중·고로 이어졌다.
대구 최초의 공공도서관은 1919년 건립된 대구부립도서관이다. 이는 대구 시민들에게 익숙한 대구시립중앙도서관의 전신으로 대한민국 공공도서관 중 부산에 이어 두 번째로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당시 대구부윤 마쓰이 신스케가 설립을 주도하여 식민지 문화통치의 성격이 짙었으나, 시민들에게 지식의 문을 열어준 공간이었다는 점 또한 부인할 수 없다. 광복 후 대구시립도서관으로 명칭을 이어가며 몇 차례 이전 끝에, 1985년 동인동에 신축되면서 '중도' 시대를 열며 전성기를 누렸다. 2021년 리모델링 후 국채보상운동기념도서관으로 거듭나 도서관과 전시관의 기능을 겸비한 복합문화공간으로 자리매김했다.
최근 옛 캠프 워커 헬기장 부지에 건립된 대구도서관이 시민들의 지대한 관심 속에 개관했다. 대구시 최초의 직영 광역 대표도서관인 이곳은 최신 디지털 인프라와 스마트 시스템을 갖췄으며 단순한 장서 보관소를 넘어 지식·문화·커뮤니티의 허브로 어린이와 청소년을 포함한 모든 시민이 참여하는 열린 공간으로서 미래형 도서관의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도서관은 시대적 역할은 달랐을지언정 시민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도시의 정신적 지표를 지켜왔다는 공통점을 가진다. 대구도서관이 과거의 지혜를 포용하고 미래를 여는 문화적 관문이자 대구의 새로운 랜드마크가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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