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현호 (주)콰타드림랩 대표
2011년, 미국에서의 교환학생을 마치고 돌아왔다. 부푼 꿈을 안고 귀국했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그 시기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읽으며 마음을 추스르고, 졸업을 앞두고는 '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를 읽으며 또 한 번 방향을 잡았다. 2013년 경북대 인근 산격동 골목가에 조그마한 카페의 문을 열었다. 단순히 커피를 파는 공간이 아니라 '청년응원카페'라는 슬로건을 품었다. 청년은 무료나 할인된 비용으로 부담 없이 이용하고, 지방정부와 기업이 이용료를 부담하는 모델이었다. 또 청년 일자리 문제로 고민할 때는 김난도 교수가 KBS파노라마 이재혁 프로듀서와 함께 한 프로젝트 '내:일'을 읽었다.
에듀테크 소셜벤처를 운영하는 필자의 가장 큰 고민은 '청(소)년들과 학부모의 미래 불안을 어떻게 해소할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미래를 정확히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지만, 방향을 제시하는 예측은 진로, 진학, 취·창업 준비에 결정적 도움이 된다. 방향을 고민할 때 해마다 새해가 다가오면 같은 제목의 책을 설레는 마음으로 펼친다. 김난도 서울대 명예 교수가 18년째 저술해오고 있는 '트렌드 코리아' 시리즈다. 돌이켜보면 학창시절에도 사회인이 된 지금도 김난도 교수(청년 멘토 난도쌤)의 책을 벗 삼았다.
'트렌드 코리아 2026'을 관통하는 주제는 AI다. 인공지능이 일과 삶을 재편하는 전환기 속에서 책은 AI가 가져올 사회의 작용과 반작용이라는 두 개의 축 위에 10개의 트렌드를 제시한다. 2026년 말(馬)의 해를 맞아 그 10개의 키워드를 두운으로 정리해 HORESE POWER로 표현했다. 책은 반신반마(半身半馬)인 켄타우로스(Centaur)를 상징으로 보여준다. 말의 강한 하체는 속도를, 인간의 머리와 마음은 방향을 상징한다. 오늘의 우리는 AI라는 빠른 다리를 얻었지만, 그 다리가 어디를 향해 달릴지는 인간이 던지는 질문이 결정한다. 속도를 높이는 일은 기술이 대신할 수 있지만, 속도에 의미와 방향을 부여하는 일은 오직 인간만이 할 수 있다. AI가 답을 찾아주는 시대일수록 '무엇을 묻는가'가 개인의 경쟁력과 삶의 궤도를 가른다. AI 프롬프트가 아무리 정교해도 그 결과의 품질은 질문의 깊이를 넘지 못한다. 읽고, 생각하고, 쓰고, 행동하며 경험과 반추를 통해 길러진 문해력과 아날로그 관계력은 AI 시대의 속도를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끌어 가는 상체의 힘이다. 말의 다리가 아무리 빨라져도 머리와 가슴이 흔들리면 제자리에서 맴도는 것과 같다. 방향이 없는 속도는 결국 소진으로 끝난다. 그래서 올해 유독 강하게 다가오는 키워드가 AI 시대에 인간의 본질, 기초, 바탕으로 돌아가려는 흐름인 근본이즘이다.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모두 몸으로 겪어낸 X세대인 필자에게 근본이즘은 과거로 돌아가자는 보수적 구호가 아니다. 오히려 더 큰 도약을 위해 시야를 다시 정렬하는 과정이다. 오늘의 알파세대와 Z세대는 스마트폰과 AI와 함께 성장하며, 이전 세대가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디지털 세계를 살아간다. 그러나 두 세계는 결코 대립하지 않는다. 아날로그의 깊이는 디지털의 속도를 보완하고, 디지털의 확장은 아날로그의 사유를 확장한다. 두 세계가 맞붙을 때가 아니라 결합될 때 인간의 잠재력은 가장 멀리 뻗어나간다. 'Better Me Tomorrow(내일 더 나은 나)'를 꿈꾸는 청년들에게 조심스레 제안하고 싶다. 빠르게 변하는 시대일수록, 오히려 역사가 축적해온 가치와 전통 속에서 변하지 않는 본질을 배우고 익히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 그 안에 흔들리지 않는 자기만의 중심과 미래를 여는 질문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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