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 여러 개의 얼굴을 가지고 사는

  • 박순진 대구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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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12-08 06:00  |  발행일 2025-12-07
박순진 대구대 총장

박순진 대구대 총장

오래 전 캄보디아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다. 캄보디아는 위대한 역사와 찬란한 문화유산, 그리고 선한 미소를 가진 친절한 사람들이 사는 곳이다. 낡은 사원 입구를 지키는 거대한 다면상은 보는 순간 압도된다. 엄청난 규모의 사원 전체를 장엄한 다면상으로 채워 놓은 장면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거무스름한 돌로 만든 다면상은 처음 마주하면 놀랍고 신기할 뿐이지만 여러 다른 얼굴을 가진 것이 보면 볼수록 우리 인간의 모습을 잘 표현하였다. 이렇게 좋았던 이미지가 연이은 국제범죄 소식을 접하면서 퇴색되어 아쉽다.


세상 사람들에 대한 인상과 평가도 이와 다르지 않다. 사람들은 장면마다 제각각 다른 여러 개의 얼굴을 드러내며 세상을 살아간다. 어떤 곳에서는 선한 얼굴로 사람을 대하던 사람도 다른 곳에서는 모진 얼굴을 보이기 일쑤다. 어제는 웃는 모습으로 사람을 맞이하다가도 오늘은 찡그린 모습으로 사람을 대하는 것이 인간이다. 윗사람에게는 한없이 공손하게 행동하다가도 아랫사람에게는 야멸찬 말을 할 수 있는 것이 사람이다. 인간의 성격과 품성은 단순하지 않고 하는 행동도 하나의 모습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다면적이다.


복잡한 사회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인간은 가정과 직장, 사회에서 여러 개의 지위를 가지게 된다. 맡은 역할마다 저마다 기대되는 모습이 있다. 우리는 사람들이 생각이나 행동에서 일관되고 통일된 모습을 보여줄 것을 기대한다. 착한 사람은 착한 행동을 할 것으로 예상한다. 마찬가지로 착한 행동을 하는 사람은 착한 사람이라고 판단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순간순간 장면마다 타인에게 보여지는 모습이 전부는 아니다. 여러 얼굴을 가진 한 사람의 전모를 온전히 볼 수는 없다.


사회적으로 널리 알려진 사람들은 세심하게 관리된 모습으로 평가받기도 하고 때로는 인위적으로 연출된 모습으로 기억되기도 한다. 대중 앞에 공개된 모습으로 호평받아온 유명 인사가 드러내지 않던 이면의 모습이 공개되면서 평판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올해 유난히 그런 일이 많았다. 국가와 사회를 위해 헌신해 온 고위 관료와 장성, 그리고 정치인이 수사받고 재판받는 모습을 보면서 그 어이없음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당사자로서는 억울한 사정도 있고 가까이 알고 지낸 지인들은 안타까운 마음도 없지 않을 것이다.


선한 이미지와 좋은 행동으로 대중의 관심과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사회적으로도 존경받아온 인물들이 갑작스럽게 몰락하는 사건들은 무척 씁쓸하다. 배우와 가수, 연예인의 겉으로 드러난 모습은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대중에게 노출되지 않던 사생활이 드러나 지탄받거나 과거의 행적이 뒤늦게 밝혀져 곤란을 겪는 일은 워낙 다반사다. 환호하고 지지하던 세상 사람들이 돌아서서 손가락질하고 비난하는 것은 받아들이기 힘들다. 호평과 박수를 많이 받은 셀럽일수록 한순간 돌아선 대중의 싸늘한 시선을 마주하는 일이 더 괴롭다.


한 해가 또 저물어 간다. 이맘때면 누구나 한해를 돌아본다. 올해는 우리가 살아온 여러 모습 중에서 어떤 모습으로 기억에 남을까? 올해 유난히 여러 일들이 많았다. 예상치 못한 사건들로 세상 인심이 크게 요동치고 돌아설 때마다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혹시 누군가에게 혹은 어디에선가 혹은 어떤 장면에서 야박하고 못난 모습을 보이지는 않았는지 잠시 성찰해본다. 사람들이 가진 여러 개의 얼굴 중에 부족한 얼굴이 한두 개 드러나도 관용할 수 있는 그런 사회로 나아가기를, 문득 저무는 세밑에 서서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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