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심 법무법인 율빛 대표변호사
어김없이 12월이 왔다. 을사년을 시작하며 주변 지인들에게 건강하고 행복하길 바란다는 인사를 전한 지가 벌써 열 한달이 지났다는 뜻이다. 그리고 남은 20여 일도 빠르게 흘러갈 것이다. 연말은 유독 시간이 더 빨리 흐르는 듯하다. 마지막 한 장 남은 달력을 마주하니 남은 기간 동안 해야 할 일과 그간 못다 한 일들이 한꺼번에 머릿속을 휘젓는다. 이렇게 숨 가쁘게 또 한 해를 떠나보내며 문득 '나는 지금 어떤 시간을 살고 있는가'를 되묻게 된다.
'흐르는 시간 앞에서 마음의 여유를 가지자'고 다짐해 보지만, 시간에 쫒겨 빠르게 결정하고, 빠르게 처리하고, 빠르게 적응해야 하는 시대 속에서 살고 있다 보니 '느긋함'을 찾을 여유가 언제나 부족하다. 시간을 잘 관리하려고 계획하지만, 실은 시간은 흐르게 두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붙잡을 수도 조절할 수도 없는 흐름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그 흐름에 조화롭게 몸을 싣는 것뿐인 것 같다. 그럼에도 종종 불안한 내일을 천천히 맞기 위해 흐르는 시간을 붙잡으려 애쓰고, 불만족한 현재에서 벗어나기 위해 시간이 빨리 흐르기를 바라기도 한다. 하지만 통제할 수 없는 것을 통제하려고 하니 언제나 시간 앞에서는 무력하다. 그래서 이젠 그저 흘러가도록 둔다. 흘러가야 아픈 기억에서 벗어날 수 있고, 새로운 것을 맞이할 수 있다는 것을 이제는 조금 알 것 같기 때문이다.
'송구영신(送舊迎新)'은 묵은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것을 뜻하지만, 이 표현 속에 담긴 정신은 그보다 훨씬 깊다고 생각한다. 해를 넘긴다는 것은, 단지 숫자 하나를 바꾸는 일이 아니라 감정의 밀도를 통과하는 일이다. 아쉬움과 미련, 고단함과 안도, 회한과 감사가 얽힌 복잡한 감정들을 천천히 꺼내어 다독인 뒤에야 비로소 다음 시간을 온전히 맞을 수 있으니, 잘 보내고 잘 맞으라는 것을 가르치는 것 같다.
연말은 '보내는 연습'을 하는 시기다. 어떤 일은 마무리되지 않았고, 어떤 관계는 여전히 애매하다. 후회는 많고 미련은 남는다. 하지만 모든 것을 완벽하게 정리하고 떠나보낼 수는 없다. 미완의 상태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끝맺음이 불완전하더라도 스스로를 책망하지 않고, 그 시간을 살아낸 나에게 조용히 수고했다고 다독이는 것. 그것이 진정한 '보냄'의 자세가 아닐까. 그리고 새해를 맞이한다. 새해를 '새로운 시작'이라 말하지만, 반드시 거창한 도약일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이전과는 조금 다른 시선으로 하루를 살아보려는 마음가짐, 익숙한 일상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태도, 그리고 나 자신과 좋은 관계를 맺어보려는 조심스러운 시도. 그런 내면의 작은 움직임이 새로운 시간을 진정으로 맞이하는 첫걸음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을사년 대한민국은 참으로 다사다난했다. 예상치 못한 계엄선포 결과로 인한 대통령 탄핵, 새로운 대통령 선출 과정에서 지휘자 없는 오케스트라가 내는 불협화음에 우리는 많이 지쳤었지만 어려운 과정을 잘 헤치고 빠르게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 케데헌이 전 세계를 강타하며 세계인들이 '골든'을 외치는 놀라운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참으로 많은 사건들이 벌어졌던 을사년이 이제 흘러가고 있다. 아쉬움이든 열광이든 지난 기억을 품은 을사년을 잘 보내주고, 새로운 병오년을 반갑게 맞아 또 한 해를 건강하고 즐거운 시간으로 채워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이번 호를 끝으로 영남일보 글을 마무리하게 되었다. 수고했다고 스스로 다독이며, 지난 1년여간 부족한 글을 읽어주신 독자들에게 감사드린다.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TK큐] 보이지 않는 사람까지 생각한 설계…웁살라의 이동권](https://www.yeongnam.com/mnt/file_m/202512/news-m.v1.20251215.bfdbbf3c03f847d0822c6dcb53c54e24_P1.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