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미 변호사
지난달. 갑자기 아빠 생각이 많이 났다. 보고 싶었다. 나는 수도권에 살고 있고, 아빠는 영천에 있는 호국원이라는 국립묘지에 계신다. 문득 '아빠 보러 가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트에서 사과와 배, 황태포, 소주를 사고 집에 있는 귤을 챙겼다.
평소 아빠에게 갈 때는 가족과 같이 갔지만, 이날따라 아빠를 나만 혼자 보고 싶었다. 새벽에 기차를 탔다. 아빠 영정 앞에 놓을 과일과 황태포를 차마 기차 바닥에 둘 수가 없어서 동대구역까지 품에 꼭 안고 갔다. 비닐에 쌓인 황태포 꼬리가 종이백 밖으로 삐져나와서 때로는 내 얼굴을 쓰다듬었다.
동대구역에서 영천으로 내려오는 무궁화호 기차 승객은 모두 영천 할머니 할아버지 같았고, 서로 진한 사투리로 안부를 주고받았다. 나는 누군가의 손자 성장 과정을 들으며 영천으로 왔었다. 호국원은 정말 넓었다. 엄청난 규모의 묘지들이 눈앞에 끝도 없이 펼쳐졌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죽어 있다니! 추운 평일 낮에 호국원을 찾는 사람은 드물었다. 나는 옹기종기한 묘지들을 보면서 그 앞에 살아 있는 유일한 사람으로서 외롭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호국원에서는 신청하면 20분간 참배실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해준다. 나는 참배실 이용을 신청하고 참배실로 갔다.
참배실 스크린으로 아빠의 사진이 뜨자 눈물이 흘렀다. 아빠한테 고맙고 미안했지만 차마 하지 못했던 말들을 마음속으로 했다. 자꾸만 눈물이 나서 훌쩍거리는데 옆 참배실에서도 훌쩍 거리는 소리가 났다. 옆 참배실에는 나보다 젊은 남자 혼자 와서 울고 있었다.
20분간 참배실에서의 만남을 뒤로하고 아빠의 유골함으로 가서 유골함을 어루만지며 한참을 훌쩍이고 앉아 있다가, 다시 영천역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타러 나섰다.
영천역으로 돌아가는 버스는 마치 스포츠카처럼 달렸다. 기사님은 운전뿐만 아니라 말도 터프하게 하셨다. 어떤 할머니가 버스에 오르는 것에 급급해서 요금도 내지 않고 자리에 앉자, 기사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할매. 정신이 있능교 없능교." 이건 서울이라면 폭언이라고 뜰 텐데, 당사자인 할머니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정신은 있는데, 이자뿌찌 모." 버스 안 여기저기서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한 마디씩 거들었다. "나도 잘 이자뿐다.", " 올라타는데만 신경 쓰다 보면 이자뿐다 그래."
버스는 인정사정없이 달렸고 영천공설시장을 지나 영천역을 눈앞에 두었다. 나는 영천역에서 내릴 참이었다. 그런데 터프한 버스기사님이 소리쳤다. "여, 영천역 내릴 사람 있능교!"
어쩌지. 나 영천역 내릴 사람인데.. 그런데 너무 쑥스러워서 "저요!"라고 말하지 못했다. 기사님은 혼잣말로 "없능갑네" 라고 하신 다음 마음대로 회차해서 다시 오던 길을 갔다. 나는 다시 호국원으로 갈 판이었다. 거긴 너무 멀어서 쑥스러워도 내려야 되겠다 싶어서 용기 내어 내린 곳이 영천공설시장이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이날 영천공설시장 장날이었다. 계획에도 없이 나는 5일장의 인파들 사이를 헤매며 풀빵을 먹고 있었다. 팔목에는 황태포 꼬리가 나온 종이백을 걸친 채.
장 구경을 하다 보니 은근히 신이 났다. 경상도 지역에는 제사상에 돔배기라는 상어고기가 빠지지 않는데, 시장에서 돔배기를 보니 반가웠다. 그렇게 장 구경까지 하고 아빠가 있는 영천을 뒤로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아빠가 살아계실 때에는 진심을 전하지 못했는데, 어째서 진심이라는 것은 마지막이 될 것을 직감할 때나 헤어지고 나서야 전할 용기가 생기는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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