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만 전북대 명예교수
대통령 이재명은 전 대통령 윤석열과 여러 모로 많이 다르지만, 한가지 같은 점이 있다. 그건 바로 자신을 달변가로 여기면서 '자기도취'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자신의 달변을 즐긴다는 점이다. 물론 달변의 내용으로 들어가면 차이가 많이 난다. 이재명이 한 수, 아니 한 차원 위라고 보는 게 공정하리라. 다만 두 사람 모두 다변이라고 하는 점, 그리고 그 다변을 사랑한다는 점에선 같다는 말이다.
우선 '윤석열 화법'에 대해 말해보자. 나는 지난 2023년 1월31일 이 지면에 "'윤석열 화법'의 비극"이란 제목의 칼럼을 썼는데, '이재명 화법'과의 비교를 위해 그 글의 일부를 재활용하는 걸 너그럽게 이해해주시기 바란다.
윤석열 화법은 '즉흥적 순발력'에 기대는 유형인데, 사실 이런 유형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좌중을 압도할 정도로 말을 유창하고 재미있게 잘하긴 하는데, 그는 참석자들의 보스거나 리더급에 속하는 인물이다. 권위와 카리스마를 갖고 있다는 의미일 수도 있지만, 말의 내용이나 품질에 대한 이의 제기나 도전으로부터 자유롭다는 뜻이다. 웬만하면 웃어줄 준비가 돼 있는 청중을 대상으로 '썰'을 풀기는 쉽다.
때와 장소와 사람에 따라 차별화된 다른 유형의 화법을 잘 구사할 수만 있다면 이런 유형은 문제될 게 없으며 말하기에 탁월한 재능이 있다고 칭찬해줘도 무방하리라. 그런데 간혹 이런 화법에 중독된 나머지 공식석상의 발언마저 같은 방식의 화법으로 밀어 붙여 큰 손해를 보는 사람들이 있다. 윤석열도 바로 그런 사람 중의 하나다.
'윤석열 화법'의 비극은 '메타인지(metacognition)', 즉 자기인식 능력이 박약하다는 데에 있다. 쉽게 말하자면, 윤석열은 자신을 전천후형 달변가로 오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 말 많고 탈 많았던 '도어스테핑'을 6개월간이나 지속시킨 이유를 이해하기 어렵다. 도어스테핑 중단 이후 지지율이 조금씩 오르기 시작했건만, 윤석열은 여전히 자신의 다변 또는 '달변'을 중단할 뜻이 없었다.
2022년 9월22일 뉴욕에서 벌어진 이른바 '대통령 비속어 논란' 사건만 해도 그렇다. 이 사건의 가장 놀라운 점은 단 몇십초를 참지 못해 부적절한 상황에서 문제의 발언을 한 그의 다변 체질이었다. 아니 단 10초만 참았어도 참모들만 듣는 자리에서 아무 논란 없이 그 어떤 발언이라도 속 시원하게 할 수 있었을 게다. 그럼에도 그 10초를 못 견뎌 온 나라를 오랫동안 혼란의 수렁으로 몰고 갔으니 세상에 그런 정치적 자해가 어디에 있겠는가.
윤석열의 그런 미련한 화법에 비해 이재명의 화법은 매끄럽고 날렵하다. 윤석열이 술로 탕진하는 그 많은 시간을 각종 이슈에 대한 예습을 철저히 하는 준비도 압도적으로 뛰어나다. 그럼에도 성격은 좀 다르지만 이재명 화법에도 적잖은 문제가 있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업무보고 생중계'에서 그런 문제가 잘 드러나고 있다. 그의 화법에 이름을 붙인다면 '양극화 화법'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재명은 자기 진영의 사람들이 좋아하거나 열광할 만한 말을 잘 한다. 상대 진영의 사람들은 싫어하거나 혐오하겠지만, 정치적으로 손해보는 일은 아니다. 어차피 그들은 '내편'은 아니니까 말이다. 윤석열처럼 대부분의 사람들로 하여금 혀를 끌끌 차게 만드는 어설픈 말은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건 오히려 정치적 이득일 수도 있다. 12월12일 이재명이 국토교통부 업무 보고 자리에서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 이학재를 비난한 사건이 대표적 예다.
이재명은 이학재를 향해 "참 말이 길다, 아는 게 없네" "옆으로 새지 말라" "딴 데 가서 노세요?" 등 맹공을 퍼부었다. 이학재가 나중에 소셜미디어로 반론을 펴자 "뒤에서 딴 얘기" "도둑놈 심보" 운운해대면서 공격했다. 너무 거칠다. 게다가 온 여권이 나서서 몰매를 주었다. 가장 많은 건 "뒤에서 딴 얘기"라는 식의 비난이었다. 하지만 그 자리에서 대놓고 반론을 폈으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윤석열 못지 않게 사나운 '격노'가 터져나오지 않았을까? 일부 여권 인사들이 그런 권력격차를 무시하면서 이학재를 일방적으로 비난한 게 공정한가?
지지자들은 열광했다. 그들이 쏟아낸 댓글 속에서 이재명은 개혁의 영웅이었다. 윤석열과 국민의힘에 대한 증오와 혐오가 빠질 수 없었다. "대체 이 대통령은 모르는 게 뭘까? 속속들이 다 파악하고 계시니" "국고나 축내는 무능한 낙하산들은 모두 퇴출" "쓰레기들의 알박기 너무 심각한데" "역시 국짐당 라인이구나" "윤씨가 임명했으니 그나물에 그밥" 12월19일 다음과 같은 기사 제목이 눈에 들어온다. "이재명 대통령 지지율 55%, 긍정평가 요인 1위는 '생중계 업무보고'"
이재명의 다변은 그의 '만기친람(萬機親覽)' 스타일과 관련이 있다. 대통령이 모든 국정 현안을 일일이 직접 챙기는 국정운영 스타일은 고된 노동을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감동적인 면이 있지만, 그 부작용이 너무 크다. 대통령이 할 일이 따로 있지 모든 걸 다 챙기겠다고 들면 속된 말로 '죽도 밥도 아닌'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유능하다는 인상'은 줄 수 있을망정 '믿을 수 없다는 불신'을 키울 수도 있다.
이재명은 "성남시장 시절이 가장 행복했다"고 종종 말한다는데, 그의 만기친람은 기초단체장 시절부터 몸에 밴 습성일 게다. 그는 구체적이고 미시적인 행정에 밝다. 그가 만기친람의 본능을 자제하지 못하고 발언하는 사안들은 대부분 그런 것이다. 전 국회입법조사처장 김만흠은 지난 7월 "이재명 대통령은 지금 '성남 시장 리더십'으로 국정을 운영하고 있다. 시정과 국정은 다르다"며 '시장 리더십'으로 국정 운영을 지속할 경우 성공할 가능성이 적다고 했다.
보수 논객 출신으로 이재명 지지자가 된 정규재도 지난 10월 "대통령께서 국정의 거의 모든 분야에 대해서 자신 있는 의견 표명들을 많이 한다"며 "만기친람적인 언어 습관을 고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대통령의 권위·진의에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주변에 이런 고언을 해줄 참모들이 필요한데, 너무 대통령의 눈치를 보면서 아부만 하는 건 아닌가? 윤석열에게 침을 뱉더라도 그의 실패 이유는 답습하지 않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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