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곳곳에서 '호민(豪民)'이 등장하고 있다. 호민에 의해 정권이 무너지거나 위협받고 있다. 네팔, 방글라데시, 인도네시아 등 남아시아에서 'z세대 혁명'이 일어났고, 신권정치의 나라 이란에선 반정부 시위가 격렬하게 벌어지고 있다. 베네수엘라의 마두로 정권은 끝내 무너졌다. 미국의 개입이 결정적이긴 하지만, 민심을 두려워하지 않은 권력의 말로이다.
호민은 '세상을 바꾸기 위해 일어서는 백성(국민)'을 뜻한다. 최초의 한글 소설로 알려진 '홍길동전'의 저자 허균(1569~1618)이 '성소부부고'에서 논했다. 허균은 백성을 항민(恒民), 원민(怨民), 호민으로 구분했다. 항민은 따르는 백성, 원민은 원망하는 백성이다. 허균은 호민론의 서두에 "천하에 두려워해야 할 바는 오직 백성뿐이다"라고 했다. 권력자를 향한 경고이다. 허균 뿐아니라 민심의 무서움을 강조한 학자는 많다. 정치인들이 자주 인용하는 '수능재주 역능복주(水能載舟 亦能覆舟)'는 중국 전국시대 학자 순자가 처음 한 말이다.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뒤집기도 한다는 뜻이다. 물은 국민이고, 배는 권력자를 가리킨다.
선거 때마다 나오는 '민심은 천심이다'라는 말도 비슷한 맥락이다. 역사의 방향성을 결정하는 시대정신의 발현으로 볼 수 있다. 다만, 절대적 정의(正義)는 아니다. 다수의 선택이 반드시 정답은 아니다.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가 대표적 사례다. 합법적 선거를 통해 권력을 잡은 히틀러는 인류 최악의 범죄를 저질렀다. 우리나라 선거제도에선 승자의 기록쯤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현행 소선거구제는 단 1표라도 더 얻으면 모든 것을 행사하는 승자독식의 구조이다. 승자독식의 세상에서 '민심은 천심이다'라는 말은 지지층에게만 적용된다. 겸손을 사치로 여기고 내 마음대로 휘두르겠다는 오만함이 고개를 든다.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는 포퓰리즘이 판을 치고, 당장의 '달콤함'에 대중들도 못 이기는 척 넘어가기 일쑤다.
베네수엘라가 그랬다. 차베스와 마두로로 이어지는 정권은 석유 판 돈을 빈민층에게 뿌리며 민심을 얻었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다. 야당이 장악한 의회를 무력화하기 위해 별도의 '제헌의회'를 만들고, 대법원을 측근들로 채웠다. 민심을 앞세워 절차와 헌법을 무시했다. 경제가 파탄나면서 '생존의 위협'에 직면한 베네수엘라 국민은 호민이 아니라 '유민(流民)'이 됐다. 유엔난민기구(UNHCR)와 국제이주기구(IOM)의 집계에 따르면, 베네수엘라를 탈출한 국민은 전체 인구의 25%에 해당하는 800만 명에 달한다. 국민 4명 중 1명이 나라를 등진 셈이다. 지금 대한민국의 권력은 어떤가. 정부와 여당이 민심을 입버릇처럼 되뇌이며 견제받지 않는 권력을 행사한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지리멸렬한 야당의 수준도 처참하다.
오는 6월 전국지방선거가 예정돼 있다. '먹고사는 문제'가 화두로 떠오를 게 분명하지만, 그 과정에서 자극적인 구호와 상대에 대한 혐오가 난무할 것이다. 이성보다 감정이 지배하는 선거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결국 형편없는 정치 수준을 끌어올리려면 국민이 나서는 수밖에 없다. 현재로선 정치인의 선의를 기대하기는 힘들다. 호민은 단순히 '화가 난 국민'을 의미하지 않는다. 허균에 따르면 시대의 모순을 꿰뚫어보고, 새로운 세상을 설계하는 주체이다. 지혜로운 유권자의 힘을 보고 싶다.
조진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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