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만의 易地思之] ‘재래식 언론’이라는 욕설

  • 강준만 전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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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6-01-20 06:00  |  발행일 2026-01-20
강준만 전북대 명예교수

강준만 전북대 명예교수

"요즘은 재래식 언론이라고 그러던데, 특정 언론들이 스크린 해가지고 보여주는 것만 보이던 시대가 있었다. 그럴 때는 게이트키핑(문지기) 역할을 하면서 자기들이 필요한 정보만 전달해 주고 아닌 것은 가리고, 필요하면 살짝 왜곡하고, 이러면 국민들은 그것밖에 못 보니까 많이 휘둘렸다. 그런데 지금은 안 그러고 지금 실시간으로 다 보고 있지 않냐. 아마 제가 말하는 이 장면도 최하 수십만 명이 직접 보게 될 거고 시간이 지나면 수백만 명이 볼 것이다."


지난해 12월17일 오전 정부 세종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산업통상부 등 업무보고 모두발언에서 대통령 이재명이 한 말이다. 이는 첫 업무보고 생중계를 두고 일각에서 나오는 비판에 대한 반박이자 공직자들을 상대로 투명한 업무보고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한 발언이었다.


동의하기 어려운 말씀이다. 그 이유에 대해 말하기 전에 '재래식 언론'이란 표현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고 싶다. '재래식 언론'은 이전에 쓰이던 '레거시 미디어(Legacy Media)'라는 말을 대체하기 위해 나온 것인데, 이는 사람들의 인식과 느낌에서 가치중립적인 단어가 아니다. 지난해 12월8일 유튜브 채널 '최경영TV'에서 뉴스타파 기자 심인보가 한 말이 그 이유를 잘 말해준다.


최경영이 "(재래식 언론에 대해) 뭐가 연상된다"고 하자 심인보는 "재래식 화장실을 연상하게 하는데 냄새나고 구린 것이라 빨리 없애야 하는 것처럼 느껴지는데 레거시 미디어는 우리가 지키고 고수해나갈 가치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실제로 '재래식 언론'이란 말을 쓰는 사람들은 그런 폄하의 의도를 갖고 있다. 아니 사실상 욕설을 점잖게 내뱉은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립국어원은 2024년 10월 '레거시 미디어'를 "정보화 시대 이전에 등장한 주요 대중 매체. 일반적으로 티브이(지상파, 케이블), 라디오, 신문 등이 이에 해당한다"며 '다듬은 말'로 '기성 매체'를 제시한 바 있다. 썩 흡족하진 않더라도 '기성 매체'나 '기성 미디어'로 부르는 게 좋겠다. '기성 세대'를 '재래식 세대'로 부르는 데에 동의할 수 없다면, '기성 언론'을 '재래식 언론'으로 부르려는 시도는 중단해야 마땅하다.


이제 대통령의 말씀에 대한 반론으로 들어가보자. 기성 언론의 '게이트키핑'엔 문제가 있는 반면, 업무보고의 생중계는 투명하게 모든 걸 다 보여주니 바람직하거나 괜찮다는 주장은 타당한가? 지금이야 미디어 기술의 발전 덕분에 '1인 저널리즘'이 얼마든지 가능한 세상이 되었지만, 그런 기술 발전의 혜택을 누릴 수 없었던 시절엔 "언론의 자유는 언론을 소유한 사람들의 자유에 불과하다"는 말이 있었다. 이 말을 원용해서 말하자면, "업무보고의 생중계는 그 어떤 장점에도 불구하고 그걸 하게끔 할 수 있는 권력을 가진 사람만 누릴 수 있는 특혜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다.


전국 차원에서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밖에 없다. 대통령이다. 누구를 불러내고, 누구에게 발언권을 주고, 누구를 칭찬하거나 비판하는 권한은 오직 대통령에게만 있다. 한마디로 말해서, 업무보고의 생중계는 '대통령의 원맨쇼'다. 대통령은 "(업무보고가) 넷플릭스보다 더 재밌다는 설이 있다"며 흐뭇하게 웃었지만, 누가 재미있어 했는지에 대해선 말하지 않았다. 열성 지지자들만 재미있어 하는 정파성은 없었을까? 이 정파성은 기성 언론의 게이트키핑과 얼마나 다른가?


'업무보고의 생중계'를 비판하려는 게 아니다. '대통령의 원맨쇼'라고 한들 그게 공익에 기여할 수 있는 게 많다면 박수를 아낄 이유가 없다. 문제는 '업무보고의 생중계'가 기성 언론의 게이트키핑을 비판하거나 폄하할 수 있는 근거는 될 수 없다는 걸 말하려는 것이다. 게이트키핑에 대통령이 지적한 문제들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동시에 그런 문제들보다 훨씬 더 중요하고 유익한 기능이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세상 모든 일엔 명암(明暗)이 있는 것이지 일방적으로 좋거나 나쁜 것은 없는 법이다.


기성 언론의 게이트키핑엔 최소한의 공동체 가치와 윤리를 수호하는 기능이 있다. 민영 언론의 소유주가 원한다 해도 수백, 수천 명에 이르는 전체 조직 구성원의 상식에 반하는 내용은 내보낼 수 없다. 대통령이었으면서도 시대착오적인 계엄을 저지른 윤석열은 '유튜브 중독자'였다. 그는 '부정선거 음모론'을 비롯한 극우 유튜브의 주장을 복음처럼 받아 들였다. 평소 보수언론마저 '카르텔'이라고 비난하던 그는 상식을 자주 초월하는 유튜브를 보면서 해방감을 느꼈을까?


그래서 계엄을 저질렀다면 이거야말로 유튜브의 재앙이 아니고 무엇이랴. 그렇다고 해서 곧장 유튜브 자체를 비난하는 건 옳지 않다. 동시에 유튜브의 어두운 면을 지적한다고 해서 그게 곧 유튜브 자체를 비난하는 거라고 반발하는 것도 옳지 않다. 기성 언론과 유튜브, 우리는 이 둘 중에서 양자택일 해야 하는가? 아니다. 대부분의 기성 언론이 자체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것도 둘의 평화공존이 불가피하다는 인식에서 비롯된 게 아니고 무엇이랴. 그런데 이 문제를 자꾸 양자택일 식으로 몰아가는 사람들이 있어 안타깝다.


언젠가 한번 지적했던 것이지만, 2020년 2월16일에 방영된 'KBS 저널리즘 토크쇼 J' 는 유튜브 문제를 다뤘는데, KBS 스스로 내건 제목이 "유튜브 악마화하는 언론의 장삿속"이었다. 내용은 유튜브의 명암을 균형되게 잘 짚었는데 제목은 왜 그렇게 삐딱했을까?


당시 이 프로그램은 진보 색깔을 보였는데, 이상하게도 진보는 '기성 체제'나 '기득권'에 대한 반감을 드러내는 게 진보라는 식의 고정관념에 빠져 있다. '재래식 언론'이라는 표현을 쓰면서 비판하는 사람들도 대부분 진보적 유튜버들이다. 시사평론가 김준일이 최근 한겨레 칼럼에서 잘 지적했듯이, "보수 진영은 자기들이 아직도 주류인 줄 알고, 민주·진보 진영은 자기들이 여전히 운동권인 줄 안다."


그러지 말자. 언론의 형식으로 차별하지 말고 내용으로 판단하자. 구린 구석은 '기성 언론'과 유튜브 양쪽 모두에게 있지만, 그래도 서로 배울 게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이념 과잉'과 '확신 과잉'에서 벗어나 '재래식 언론'이라는 욕설 대신 상호소통과 평화공존을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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