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일보 경북본사 피재윤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은 선택이 아니다. 헌법이 요구하는 의무이자 민주주의 행정의 최저선이다. 이 원칙이 흔들리는 순간 행정은 권력에 예속되고 선거는 공정성을 잃는다.
최근 경북 안동에서 드러난 간부 공무원의 공직선거법 위반 고발 사건은 그 최저선이 얼마나 무력하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안동시선거관리위원회는 특정 정당의 입당원서를 수집·전달한 혐의로 안동시청 소속 5급 사무관 2명을 경찰에 고발했다.
단순한 제보나 정치권의 문제 제기가 아니다. 선관위가 직접 조사한 뒤 가장 강력한 조치인 수사기관 고발을 택했다는 점에서 사안의 성격은 이미 명확하다. 이는 '의혹'이 아니라 '사건'이다. 선관위에 따르면 A씨는 지난해 12월 한 장애인단체 대표가 수집한 국민의힘 입당원서 12매를 안동시장 측근에게 전달한 혐의를 받고 있다. 또 B씨는 같은 해 7월 지역 통장을 통해 입당원서 4매를 수집하도록 한 후 이 역시 시장 측근에게 전달되도록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직접 손에 쥐었느냐가 핵심이 아니다. 타인에게 당원 모집을 지시하거나 부탁한 행위 자체가 명백한 위법이라는 것이 선관위의 판단이다. 적용법 조항은 분명하다. 공직선거법은 공무원이 직무나 지위를 이용해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엄격히 금지하고 있고 지방공무원법 역시 공무원의 정당 가입 권유를 명시적으로 차단하고 있다.
이를 어길 경우 형사처벌과 자격정지까지 가능한 중대 범죄다. 해석의 여지는 없다. 조직의 중간 허리를 차지하는 간부급 공무원이 연루됐다는 점에서 이 사안은 결코 개인 일탈로 축소될 수 없다. 행정조직 내부에서 어떤 분위기와 신호가 있었기에 이런 행위가 가능했는지, 정치와 행정 사이의 경계가 언제부터 흐려졌는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이는 조직 문화와 권력 구조의 문제다. 이 대목에서 권기창 안동시장의 책임은 피할 수 없다. 시장이 직접 지시했는지 여부는 본질이 아니다. 행정조직의 최종 책임자로서 공무원들이 '정치에 발을 담가도 괜찮다'고 인식할 환경이 조성됐는지에 대해 답해야 할 의무가 있다.
침묵은 중립이 아니다. 책임 있는 해명을 회피하는 태도는 의혹을 키울 뿐이다. 더불어민주당 경북도당이 "권기창 시장은 더 이상 침묵해서는 안 된다"고 공개적으로 압박한 배경도 여기에 있다. 이를 단순한 정치 공세로 치부하기엔 선관위 고발이라는 냉정한 사실이 존재한다.
내부 감찰은 있었는지, 조직적 개입 가능성은 없는지, 재발 방지를 위한 조치는 무엇인지에 대해 시장이 직접 시민 앞에 설명하는 것이 상식적인 행정의 태도다.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은 구호로 지켜지지 않는다. 인사와 평가, 조직 문화, 권력과의 거리 두기가 맞물릴 때 비로소 작동한다. 특정 정치 세력에 대한 과도한 충성이 불이익이 아니라 유리한 선택으로 인식되는 순간, 행정은 정치적 영향력에 종속될 위험에 놓인다.
공은 이제 경찰 수사로 넘어갔다. 입당원서 수집·전달 경위, 공무원 지위 이용 여부, 윗선 개입 여부가 차례로 드러날 것이다. 그러나 수사 결과만 기다리며 시간을 벌 수는 없다. 행정은 사법 판단 이전에 정치적·도덕적 책임을 져야 한다. 안동시청은 정당의 당원 모집 창구가 아니다. 이 단순한 원칙조차 분명히 하지 못한다면 행정에 대한 시민의 신뢰는 회복되기 어렵다.
지방자치는 중앙 권력의 축소판이 아니다. 공무원이 정치로부터 독립할 때 비로소 시민은 행정을 믿는다. 이번 사건은 안동시 행정이 그 기본으로 되돌아갈 수 있는지 묻는 시험대다. 침묵은 답이 아니다. 이제는 말해야 한다.
피재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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