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덕률 전 대구대 총장
12·3 내란 후 꼭 14개월이 흘렀다. 참 답답한 시간이었다. 법의 심판과 내란 청산이 더뎌서다. 그나마 열흘쯤 전, 그것은 친위쿠데타고 내란이었다는 법의 판단이 내려진 것은 다행이었다. 상식을 확인받은 것에 불과하지만 소모적인 논란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어서다.
# 일그러진 엘리트의 민낯
하지만 중요한 것은 심판과 청산이 다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12·3 내란은 풀어야 할 수많은 고민거리와 숙제를 던져주었다. 피흘려 다져온 민주주의지만 실은 언제든 무너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 당혹했고, 내란 우두머리가 서울법대를 졸업하고 사법고시에 합격한 뒤 평생을 법률가로 살아온 대통령 자신이었다는 사실에 참담했다. 또한 그의 시대착오적 위헌 명령을 따랐거나 내란을 옹호한 행정부와 군∙경의 고위 공직자들, 국회의원들과 각계 엘리트들의 '역사의식 부재'와 '철학 빈곤'을 마주하면서 분노해야 했다.
우리 사회는 그동안 일류대학 입학과 고시 합격을 '능력'으로, 심지어 지도자 자격을 갖춘 것으로 인정해 왔다. '시험능력주의 이데올로기'가 지배하는 학교에서 학생들은 어려서부터 명문대 입시와 고시 준비에 올인했다. 윤석열을 비롯해 한덕수, 이상민, 박성재가 그랬으며, 김용현과 노상원과 박안수가 그랬다. 국가기구의 최상층까지 올라선 그들은 '성공과 승리의 아이콘'이었다.
하지만 그날 밤, 그들이 보여준 모습은 충격 그 자체였다. '내가 곧 국가다' 식의 낡은 세계관, 헌법과 민주주의에 대한 무개념, 상명하복의 관성에 함몰된 '영혼없는 복종'이었다. '내란이 성공할지도 모른다는 생각'(1월21일, 한덕수 1심 판결문)에 이끌린 기회주의적 처신이었다.
문제는 그들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내란 옹호자들이 공직사회를 비롯해 각계 요직에 널리 포진해 있는 것이다. 교묘한 논리로 내란을 옹호하고 거짓 뉴스를 버무려 국민을 선동해 온 유명 학자, 종교인, 언론인이 적지 않은 것이다. 작은 윤석열, 작은 한덕수, 작은 김용현이 지금도 국회와 사법부와 행정부 곳곳에 숨어서 반전을 노리고 있는 것이다. 그들 역시 학생 때 시험 잘 보고 누구나 부러워하는 직업을 갖고 그 안에서 승승장구하며 '성공한' 이들이다. 그들에게는 기득권을 지키는 것이 국민의 생명과 기본권보다 더 중요했다. 삼권분립, 군의 정치적 중립, 정교분리 등 헌법의 핵심 조항들은 대입 혹은 고시를 준비할 때 암기했던 자구에 불과했던 셈이다.
그것이 다가 아니었다. 개인 윤리에서도 수준 미달이긴 마찬가지였다. 예사로 거짓말하고 부하에게 책임 떠넘기는 것이 몸에 밴 모습이었다. 국민에게 사과하고 당당하게 책임지는 자세는 찾아볼 수 없었다. 지도자이기 전에 건강한 시민으로서도 낙제점이었다.
학교와 사회가 얼마나 '철학 빈곤의 기회주의적 인간'을 양산해 왔는지 깨닫게 해준 것이다. 실제로 인권 감수성과 민주주의 가치에 대한 신념, 선공후사의 자세는 학교교육과 엘리트 양성 과정 어디서도 평가받지 못했다. 지금의 민주공화국 헌법을 갖기까지 선배들, 아니 인류가 흘려온 피와 희생에 대해서도 관심 갖지 않았다. 필요한 것은 오직 '시험 기술'과 권력 앞에 엎드리는 '비겁한 굴종'이었고 중요한 것은 오직 자격증과 스펙과 '경쟁에서 이기는 것'이었다.
하지만 진정한 엘리트의 품격은 국민 생명과 민주주의 위기 앞에서 책임을 다할 때 빛나는 법이다. 2차 세계대전 때 히틀러 암살에 실패한 뒤 처형당한 클라우스 폰 슈타우펜베르크 대령(영화 '작전명 발키리'의 주인공)은 국가에 대한 진정한 충성이 독재자에 대한 맹종이 아님을 목숨 걸고 증명했다. 본회퍼 목사 역시 광기와 야만으로부터 무고한 생명을 구하기 위해 히틀러를 제거하는 것이 참신앙이라 믿고 목숨을 바쳤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지도자의 핵심 덕목으로 가르치며 특권보다 책임, 지식보다 인격과 용기를 강조한 영국의 이튼 칼리지는 1차, 2차 세계대전 때의 학생 전사율이 일반 병사들보다 높았던 것으로 유명하다. 프랑스의 국가 엘리트를 양성하는 그랑제콜 역시 단순한 전문 지식을 넘어 사회적 책임을 중요하게 가르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 역사에서도 따라야 할 지도자의 전범은 수도 없이 많다. 일제강점기, 현 시가로 5조원 규모의 재산을 처분해 만주로 가 신흥무관학교를 세우고 독립운동에 헌신한 이회영 선생 일가, 독재에 항거하며 법률가의 양심을 지켰던 조영래 변호사, 제도권 교회의 형식보다 성서 중심의 이웃사랑을 실천한 장기려 박사 등은 모범적인 엘리트의 표상이었다. 그들은 높은 지위와 권력 때문이 아니라 이웃과 공동체를 위해 먼저 희생하고 헌신했기에 진정한 지도자로 추앙받고 있는 것이다.
# 엘리트 양성 시스템, 재구축해야
12·3 내란의 비극을 뼈아프게 겪고 있는 지금, 엘리트 집단의 통렬한 자기 고백과 반성이 필요한 때다. '성공 신화'를 쫓아 살면서 민주주의와 인권에는 무감각한 방관자이진 않았는지, 화려한 경력과 스펙이 실은 '헌법적 문맹'을 가리는 가면이 아니었는지 스스로 돌아봐야 한다. 지식은 있으나 정의감은 없고, 권력은 행사하면서 책임은 지지 않는 '철학 빈곤의 엘리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우리는 같은 비극을 언제 다시 맞게 될지 모른다.
그것은 당연히 '지식의 결여'가 아니라 '민주주의 가치 내면화'에 실패한 우리의 교육과 엘리트 충원 시스템에 대한 비판적 성찰로 이어져야 한다. 먼저 수명을 다한 지 오래인 지식 전수 교육, 시험만능의 암기식 교육을 서둘러 청산해야 한다. 삶과 사회의 궁극적 가치를 물으며 정의와 불의를 분별해 내는 '인문학적 사유의 힘'을 길러주는 교육으로 돌려세우지 않으면 안된다. 역사교육, 헌법교육, 민주시민교육을 영어 수학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교육철학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꾀해야 한다. 한마디로 교육대개혁이다. 그래서 '화려한 스펙의 똑똑한 괴물'이 아니라 국민 기본권과 헌법 수호를 위해서라면 자신을 던질 수 있는 진정한 리더를 길러내야 한다. 점수 따는 기술과 기회주의적 처세술로 무장한 기술관료와 선동꾼들이 국가 지도자로 선발되도록 해서도 안된다.
결국 이 나라를 '시험에 성공한 자'들의 나라가 아니라 '민주주의 철학을 가슴에 품은 지도자'와 '깨어있는 시민'이 함께 책임지는 민주공화국으로 세워가야 한다. 12·3 내란의 비극이 우리에게 준 궁극의 교훈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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