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형의 스포츠와 인문학] 한 20명쯤 넉넉하게

  • 박지형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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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6-02-03 06:00  |  발행일 2026-02-03
박지형 문화평론가

박지형 문화평론가

내년 상반기 '한국 야구 명예의 전당'이 들어설 예정이다. 당연히 최초 헌액자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는데, 미국 명전 건립 당시 '최초의 5인'을 선정했던 역사가 있어, 한국도 5명을 최초 입성자로 선정하지 않겠냐는 설이 돌고 있다. 그렇다 보니 최근 야구 관련 매체를 중심으로 전문가들이 각기 자신만의 최초 입성자 5명씩을 꼽으면서 선정의 변을 늘어놓는 것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대충 김응용, 최동원, 선동열 등이 빠지지 않고 거론되는 가운데, 최초의 5인에 이종범을 꼽는 전문가도 자주 보인다. 그런데 그걸 볼 때마다 조금 걱정이 되는 건 어쩔 수 없다. 진짜 이종범이 최초 5인에 덜컥 들어가게 된다면, 한 바탕 큰 소란이 일어나는 것은 불가피해 보이기 때문이다. "이종범이 들어가? 그럼 양준혁은?" 이건 단순히 호남 스타가 들어갔으니 영남 스타도 질 수 없다, 식의 기싸움 정도가 아닐 것이다. 구 야구관과 신 야구관의 충돌 내지는 인상과 기록 혹은 임팩트와 누적 사이의 상징적 전쟁이랄까.


일단 야구 선수의 종합 성적표인 sWAR에서 KBO 역대 1위는 91.06의 '양'이다. (수비에서 16.58점을 까먹고도 1위!) 69.22인 '이'는 6위. 흔히 '타격은 양준혁, 야구는 이종범'이라고 하지만 수비, 주루를 포함해서 봐도 양이 완승인 것이다. 공격만 놓고 보면 당연히 격차는 더 크게 벌어진다. OWAR에서 양은 107.63, 이는 59.41이다. 양은 한 번은 "타격은 내가 종범이보다 살짝 낫지 않을까"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실제로는 '살짝'이 아니라 거의 2배 정도 차이가 나고 있는 것이다. (이종범과 김성한의 OWAR을 합쳐도 양준혁보다 아래) wRC+에서도 양은 165.4로 역대 2위, 이는 128.6으로 39위다. wOBA에서도 양은 .426으로 역대 1위, 이는 .377로 44위에 불과. 그래, 그래, 이는 510개의 도루(2위)를 했다. 양이 351개의 홈런(6위)과 1천278개의 볼넷(1위)을 기록할 동안.


이런 반박이 불가한 수치가 다 나와 있음에도, 세상은 (심지어 대구 사람들 일부 및 양준혁 본인조차도) 아직 이가 양보다 뛰어난 선수였다고 믿는다. 그 믿음은 '강렬한 인상'에서 비롯되었고, 실제로 그 인상은 기록으로도 선명하게 남겨져 있다. 이는 1993~97년의 5년 동안 42.57이라는 공전절후의 sWAR를 남겼고, 그것은 같은 기간 양의 35.52를 뛰어넘을 뿐만 아니라, 이승엽, 테임즈 등 KBO 역사상 그 어떤 선수의 전성기와 비교해도 위에 있다. 그러나 야구선수의 커리어는 5년보다 훨씬 길고, 기록은 인간의 인상 밖에서도 조용히 쌓여간다. MLB의 명 유격수 노마 가르시아파라는 이종범처럼 미친 듯한 전성기 몇 년을 보냈지만, 결국 명전 입성에 실패했다.


한국 명전은 첫 입성자를 한 20명쯤 넉넉하게 뽑는 지혜를 발휘하길 바란다. 위대한 선수 이종범이 첫 턴에 헌액 되는 것에야 그 누가 불만을 가지겠나? 하지만 같은 명단에 양준혁이 없다면 명전은 시작부터 큰 논란을 자초하게 될 것이다. 기록의 스포츠라는 야구에서 대놓고 기록으로 1등을 한 선수가 인상이나 회자(膾炙)를 기준으로 후순위로 밀려버린다면, 그 전당은 처음부터 반쪽의 명예로 시작하는 셈이 되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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