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도현의 그단새] 글쓰기란 무엇인가

  • 안도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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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6-02-03 06:00  |  발행일 2026-02-03
안도현 시인

안도현 시인

가끔 만나는 사람 중에 예천농민회 최한열 회장이 있다. 2024년 12월 트랙터를 끌고 상경해 남태령에서 경찰의 봉쇄를 뚫은 농민 중 한 사람이다. 그는 그 트랙터로 2만평이 넘는 벼농사를 짓는다. 무엇보다 혼자서 글씨 쓰는 걸 좋아하고 나무를 잘 만져 뭐든 뚝딱 만들어 내는 재주가 탁월하다. 2000년에 귀향해서 예천군 지보면 상월리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그.


그의 어머니는 1942년생, 올해 여든네 살의 김영분 여사다. 어머니는 밭모퉁이 한 뼘 노는 땅이라도 있으면 콩, 팥, 들깨 씨앗을 꿰차고 꾹꾹 심어 살림에 보태려고 애쓰는 분이다. 어머니가 알뜰살뜰 가꾼 작물들을 아들이 밭둑 풀을 베다가 예초기로 몽땅 잘라버린 날이 있었다.


"나는 꽃 심을 자리 있으면 콩 심을란다."


들판에 모내기가 며칠이라도 늦으면 이내 아들에게 잔소리가 쏟아진다.


"다른 집은 다 물 잡아 로터리 치는데 너는 뭐하고 빈둥거리는 거냐!"


그의 어머니는 심장판막이 닳아서 숨이 차 지금은 보행기에 몸을 맡기신다. 남편하고는 5년 전에 사별했고, 집에 기숙하는 아들 친구한테서 어머니 김영분 여사는 한글을 배웠다. 아들이 아버지 산소에 갔더니 어머니가 화병을 하나 갖다 놓으셨다. 화병에는 조화 몇 송이와 비닐 팩에 꼭꼭 싼 노잣돈과 편지가 들어 있었다.


"나에게은 시간이 안간다 해도 당신가 이별한재도 일연이 각가와 온내 봄이 가고 여럼이 지나 가울리 닥가와 벼가 항금빗치 나여 당신이 소중한 논에 벼을 비연내 지난 있대은 당신과 나 벼 비은대 가보고 기분 마음으로 밭은대 올해는 나 혼자 술픠 눈물로 도라완내 그리고 나의 재인은 당신을 마뒤마뒤 불태 완능기 두고 두고 제인 있세 말 한마뒤 잘못해서 당신을 불테완내 제송하고 또 제송하내 나은 부래 가기 시른대 당신을 불태우고 내가 앙갈수도 었고 었지 하오리까 나 말 한마뒤 잘못해서 내 힜뒤을 꾼코 심내 자식이 무어신지 당신을 불로 보내고 내 마음이 압파 항상 눈물로 세월을 보내고 살고 인내 잘못 했습니다 재송 합니다 당신한태 가기도 맴목기 었내 재송 하지만 었지 하오리까 보고 싶소"


남편을 화장해서 보낸 게 못내 마음에 걸렸던가 보다. 이름과 주소 정도만 겨우 쓸 줄 알던 김영분 여사가 한글을 깨치고 나서 처음 쓴 이 편지, 기막히게 아름답다. 편지를 한 자 한 자 옮겨 적으면서 글쓰기가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게 된다. 맞춤법도 띄어쓰기도 맞지 않고 마침표도 찍지 않은, 돌아가신 이에게 보내는 연애편지 같은. 이런 글을 나는 한 번도 써보지 못했다. 좋은 글은 글쓰기의 정해진 규칙과 훈련에 의해 나오는 게 아니라는 걸 다시 한번 깨닫는다.


재작년에 상월리 최 회장네 집에 처음 들렀는데 마침 김영분 여사가 마당에서 고구마를 고르고 계셨다. 최 회장은 나를 시를 쓰는 형님이라고 소개했다. 어머니는 애써 가꾼 고구마를 한 상자나 담아주셨다. 작년 가을에도 아들 편에 스티로폴 박스 한가득 고구마를 담아 보내주셨다. 그 박스 덮개에 매직으로 받을 사람을 정확하게 써 놓으셨다. 받을 사람 이름은 모르고 그가 시인이라는 것을 기억하고, 아들보다 시인이 몇 살 더 많다는 걸 잊어먹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시인을 하대하지는 못하고, 고심 끝에 '씨'를 붙였을 것이다. 단 세 글자로.


"시인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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