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목의 시와 함께] 나하늘 ‘순무가 자라는 마을’

  • 신용목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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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6-02-09 06:00  |  발행일 2026-02-09
신용목 시인

신용목 시인

서른 살이 되어도 치과에 가는 건 여전히 싫다


어제 쓴 엽서의 첫 문장이다


그는 이 지역에서 사귄 첫 번째 친구이고 음식을 주문할 때면 반드시 오이는 빼주세요 라고 말한다 호밀빵을 살 때에도 내기에 지고 혼자 설거지를 몰아서 할 때에도 오이를 빼달라고 말한다


​이 지역 사람들은 평생 순무를 먹으며 사는 거야 너는 순무에 관해 잘 아니 순무와 그냥 무의 차이에 대해 연필과 코끼리의 유사성에 대해 입안을 남에게 이토록 자세히 보여 줘야 한다는 게 이상하지 비옥하지 않은 토양에서도 잘 자라고 비료 없이도 서른 살이 되어도 잘 자라며 좀 추운 기후에서도 잘 자라고 관개로 물을 대지 않아도 재배가 가능한 그런 좋은 순무를


너는 아니



자신의 연한 입 속을 보여주는 일. 서른 살이 되는 동안 각자가 거쳐온 계절과 일기와 바람을 모두 물린 채, 생명이 드나드는 가장 여리고 순한 살이면서 동시에 그를 위해 강인해야 하는 이를 가진 입속을 보여주는 일. 치과는 마치 비옥의 정도와 무관하게 잘 자란 순무여야 하는 자신을 증명해야 하는 곳이다. 말하자면 무엇을 먹고 무엇이 되었는지, 이 일반화된 세계에서 누군가의 취향은 강박이 되고 그것은 다시 세간의 평가를 만든다. '그래야 하는' 자신과 '그렇게 하는' 자신을 실감하는 순간에 찾아오는 이상한 외로움은 그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너는 아니'라는 물음이 가닿는 곳은 우리 모두가 순무여야 하는 재배지에서 한 순무가 다른 순무에게 건네는 안부이자 그로써 내면의 연대처럼 보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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