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오전에 만난 전봉수(61)씨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 표정이 마치 하회탈을 연상케 했다. 늦게나마 '가슴속 응어리'를 풀어서다. 앞서 지난 5일 대구지방법원 민사12부는 대구시립희망원에 약 24년간 강제 수용됐던 전씨가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국가가 13억원을 배상하라"며 전 씨의 손을 들어 줬다.
이날 판결은 국가가 장애인에 대한 보호 의무를 저버리고 20여년간 자행한 인권 유린에 대해 엄중한 책임을 물은 것이다. 역사적인 판결이다. 이 판결 후 첫 주말인 8일 오전 대구 동구의 자립생활 주택에서 전씨를 만났다. 그가 되찾고 싶은 '진짜 삶'에 대해 들어 보았다.
8일 대구 동구 자택에서 만난 대구시립희망원 강제 수용 피해자 전봉수씨가 인터뷰 중 환하게 웃고 있다. 최시웅기자
8일 대구 동구 자택에서 만난 대구시립희망원 강제 수용 피해자 전봉수씨가 인터뷰 중 '손하트'를 그리며 환하게 웃고 있다. 최시웅기자
◆"고생했다"는 누나의 고마운 한마디
취재진이 만난 전씨의 표정은 평온해 보였다. 1심 승소 결과가 나오고 가장 먼저 떠오른 얼굴을 물었다. 그는 주저 없이 "누나"라고 했다. 1998년 천안역에서 납치되듯 사라졌던 동생을 다시 되찾은 둘째 누나는 판결 직후 전화기 너머로 "넘 고생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고 한다.
국가가 지급해야 할 13억원은 전씨의 잃어버린 청춘에 대한 대가다. 하지만 그에게 이 숫자는 체감되지 않는 먼 이야기처럼 들린다. 배상금을 받으면 가장 하고 싶은 일이 뭐냐고 하자, 그는 뜻밖에도 "고구마 농사"라고 했다.
"하필 왜 고구마예요?"라며 질문을 던지자, 그는 슬며시 눈을 감았다. 어린 시절 시골서 농사짓던 기억을 떠올리는 듯했다. 전씨는 "누님 댁(천안)으로 가서 오순도순 살며 근처에서 농사를 짓고 싶다"고 했다. 국가가 매긴 13억원의 가치보다 자신이 직접 일군 땅에서 수확한 고구마 한 줄기의 행복을 더 갈망하고 있었다.
◆"괴롭힘에 힘들었지만, 지금은 하나도 안 힘들어요"
전씨는 1998년부터 2022년까지 무려 23년6개월간 희망원에 갇혀 지냈다. 긴 시간을 담장 안에서만 보낸 그에게 '세상 밖 생활'은 그다지 힘들지 않은 일이었다. "사회에 나와서 적응하기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에 전씨는 단호하게 "희망원 생활이 더 힘들었다. 나와서는 힘들지 않았다"고 했다.
전씨는 희망원 안에서 가장 힘들었던 기억으로 '사람들의 괴롭힘'을 꼽았다. "안에서도 일하는 것보다 사람들이 괴롭히는 게 힘들었습니다. 밖에선 그런 사람이 없으니 뭘 해도 힘들지 않고, 힘도 납니다. 그냥 편안합니다."
전씨는 동네 사람들과도 그저 "예전 부르던 대로, 그냥 동네 아저씨처럼 평범하게 섞여 지내고 싶다"고 했다. 그의 소박한 답변에선 법정에서 거둔 값진 승리보다 그저 '평범한 소시민'으로 남고 싶어 하는 마음을 넉넉히 읽을 수 있었다.
◆끝나지 않은 싸움, "국가는 사과하고 벌 받아야"
비록 1심에서 승소는 했지만, 여전히 국가가 항소할 가능성은 남아 있다. 지적장애가 있는 전씨에게 '항소'는 다소 어려운 법률용어다. "법원에 또 가야 할 수도 있다"는 설명에 잠시 얼굴이 어두워지기도 했다. 잠시 뒤 "다시는 법정에 가고 싶지 않다"고 나지막히 말했다. 국가가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기를 진정으로 바라고 있었다.
전씨는 자신을 처음 희망원으로 강제로 끌고 갔던 사람들에 대해선 "반드시 벌을 주고 싶다"며 분노를 표출했다. 천안역에서 국밥을 사주겠다며 자신을 봉고차에 태워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앗아간 이들의 얼굴을 국가는 여전히 밝혀내지 못하고 있어서다.
전씨 시계는 이제 고향 천안쪽을 향해 흐르고 있다. 재판이 완전히 끝나면 가족들이 사는 천안으로 거처를 옮기고 싶어 했다. "누나와 함께 잠자고, 맛있는 것도 많이 먹으며 살고 싶다"는 게 지금 그에게 있어 유일한 계획이다. 전씨에게 지금 절실한 것은 그냥 '평범한 일상'이었다.
최시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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