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불의 그을음 대신 정리된 터…청송 내관리의 ‘재시작’

  • 정운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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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6-02-23 16:58  |  발행일 2026-02-23
전소 13가구의 겨울 마을… 그을음 대신 정리된 집터에 틔운 ‘재생’의 희망
“여기서 다시 살겠다” 주민들의 의지, 새집 두 채로 증명되다
청송군 파천면 내관리 마을, 검게 탄 산불의 흔적을 걷어내고 마을 복구가 시작되고 있다. <정운홍 기자>

청송군 파천면 내관리 마을, 검게 탄 산불의 흔적을 걷어내고 마을 복구가 시작되고 있다. <정운홍 기자>

청송군 파천면 내관리 마을, 산불이 휩쓸고 지나간 마을에는 장독대만 덩그러니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정운홍 기자>

청송군 파천면 내관리 마을, 산불이 휩쓸고 지나간 마을에는 장독대만 덩그러니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정운홍 기자>

청송군 파천면 내관리 마을 입구에 조성된 이재민 임시주택단지. 인기척이 없는 주택단지는 지난해 산불의 기억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정운홍 기자>

청송군 파천면 내관리 마을 입구에 조성된 이재민 임시주택단지. 인기척이 없는 주택단지는 지난해 산불의 기억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정운홍 기자>

산불이 휩쓸고 간 청송군 파천면 내관리 마을에 김수덕 어르신은 새롭게 집을 지어 일상으로 돌아갔다. <정운홍 기자>

산불이 휩쓸고 간 청송군 파천면 내관리 마을에 김수덕 어르신은 새롭게 집을 지어 일상으로 돌아갔다. <정운홍 기자>

청송군 파천면 내관리 마을에 사는 김수덕 어르신. 인터뷰를 마치고 나는 이제 파크골프 치러 가야겠다며 인사를 하고 있다. <정운홍 기자>

청송군 파천면 내관리 마을에 사는 김수덕 어르신. 인터뷰를 마치고 "나는 이제 파크골프 치러 가야겠다"며 인사를 하고 있다. <정운홍 기자>

사과농사를 짓는 이부영 어르신은 1년 전 아픈 기억을 잊은 듯 올해 농사를 준비하기에 바쁜 모습이다. <정운홍 기자>

사과농사를 짓는 이부영 어르신은 1년 전 아픈 기억을 잊은 듯 올해 농사를 준비하기에 바쁜 모습이다. <정운홍 기자>

경북 청송군 파천면 관1리 마을회관 쪽에서 '관리길'로 접어들자 길이 갑자기 가팔라졌다. 차 한 대가 겨우 오갈 만큼 좁은 산골길은 고속도로 아래를 한 번 통과한 뒤 골짜기 안쪽으로 깊숙이 이어졌다. 지도에는 '파천면 관리'로 찍히지만, 주민들은 이곳을 '내관리'라 부른다.


겨울의 내관리는 정적에 잠겨 있었다. 마을로 올라가는 길 오른쪽에 임시주택들이 모여 있었지만, 사람의 기척도 불빛도 쉽게 드러나지 않았다. 바람만 차가웠다. 임시주택이 '생활'이라기보다, 재난 이후 시간이 아직 완전히 매듭지어지지 않았다는 표식처럼 보였다.


그런데 임시주택을 지나 조금 더 위로 오르자, 마을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말을 걸어왔다. 시커먼 잔해가 눈을 찌르는 풍경이 아니라, 말끔히 정리된 집터들이 먼저 들어왔다. 바닥은 정돈돼 있었고, 집이 있었던 자리들은 대략적인 복구가 꽤 진행된 상태였다. 그 사이사이로 부서진 담장, 부러진 전봇대가 남아 '여기서 한 번 삶이 꺾였다'는 사실을 조용히 증명하고 있었다.


그 한복판에서 시선을 붙드는 건 '폐허'가 아니라 새로 올라온 집이었다. 이미 새로 지어진 집 두 채, 그리고 공사가 한창인 집 한 채. 골짜기 끝마을이 텅 빈 듯 고요한데도, 풍경의 방향은 분명했다. 사라지는 쪽이 아니라 다시 세우는 쪽. 기자는 그 집들을 바라보며, 이 마을이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가장 먼저 실감했다.


내관리는 지난해 3월 25일 의성에서 번진 대형 산불이 청송까지 넘어오면서 큰 피해를 입었다. 마을 16가구 중 13가구가 전소됐고, 마을회관도 불에 탔다. 사람들의 삶이 한꺼번에 무너진 날이었다.


"불보다 먼저 하늘이었다. 까마귀가 빙글빙글 돌며 울부짖었다"


이부영(78) 어르신이 그날을 떠올릴 때 가장 먼저 꺼낸 건 불이 아니라 하늘이었다. 마을 앞산 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불이 오기 전에 하늘이 이상했다. 수많은 까마귀가 앞산 상공에서 빙글빙글 돌면서 울부짖고 있는 모습이 신기하기만 했다"


당시 의성에서 의용소방대장을 하던 사촌동생에게 "형님, 형수님 빨리 대피하라"는 문자가 왔지만, 설마 그 불이 이 골짜기까지 넘어올 줄은 몰랐다고 했다. 그러나 곧 전화가 다시 왔다. 안동을 넘어 청송으로 번지고 있으니 당장 빠져야 한다는 말이었다.


"밭에 있던 리프트만 겨우 옮겨놓고, 5분 만에 차를 몰고 내려다. 도망가는데 불이 중턱까지 와 있더라"


아내와 함께 면사무소 쪽으로 내려가던 길목에서 마을 아래 정자에 불이 붙어 내려앉는 모습도 봤다고 했다. "나중에 CCTV를 보니 불길이 넘어오는 게 그대로 찍혔더라"는 말이 뒤따랐다. 그 순간 이후, 마을은 '돌아갈 곳'이 아니라 '걱정이 붙어 있는 곳'이 됐다.


산불이 난 뒤, 어르신은 마을이 자꾸 떠올라 새벽 2시쯤 혼자 들어가 본 적이 있다고 했다. "불은 꺼졌는데도 열기가 남아 있었다. 땅이 뜨거울 정도라 걸어오기도 힘들었다."


화물차와 농기계, 예초기, 창고까지 평생 모은 살림의 뼈대가 한꺼번에 사라진 걸 확인한 순간 참담함이 컸다고 했다. 그런데 어르신은 곧 말을 고쳐 잡았다. "참담했다. 그런데 1년쯤 지나고 나니까 이제는 새롭게 시작해야겠다는 마음이 든다."


불이 남긴 상처 위에 '다시 시작'이라는 결심이 덧칠되는 데, 1년이 걸렸다.


김수덕(83) 어르신의 기억은 더 투박하고 묵직했다. "불났을 때는 그저 피하느라 바빴지. 정신 차리고 올라와 보니 3집 빼고 다 탔더라고."


불길은 집만 태운 게 아니라 사람들을 흩어놓았다. "대구, 안동 등 집이 없어 친척집으로 간 사람들이 많았다"는 말이 먼저 나왔다.


"자려고 해도 불안한 사람도 있고, 갈 곳이 없어 좁게 자는 집도 있고...나가서 지내고 오기도 했지. 빈집도 한 곳 있었고."


김 어르신도 그날 앞산 상공을 돌던 까마귀 떼를 떠올렸다. "까마귀 수백 마리가 앞산에서 빙빙 돌았다. 그게 신기하더라." 짐승들이 먼저 알아챈 듯한 하늘이, 사람들 기억에 공통으로 남아 있었다.


지원이 이어진 데 대한 고마움도 덧붙였다. "지원 많이 받았다. 많은 사람들이 도와줬다는 소식에 고마운 마음만 들었다."


내관리의 겨울은 차갑고 조용했다. 하지만 조용하다고 해서 멈춘 건 아니었다. 마을 안쪽에 정리된 집터들이 있었다. 이미 올라선 새집 두 채가 있었다. 공사 중인 집 한 채가 있었다. 눈에 띄는 생활감이 적어도, 마을이 "다시 살겠다"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표시는 곳곳에 남아 있었다.


최영주 파천면장은 "현재 새로 지어진 집이 2채가 있고, 1채는 짓는 중"이라며 "복구사업이 마무리되는 대로 마을회관도 최대한 빠르게 다시 지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불에 타버린 마을회관은 단지 건물이 아니라 어르신들이 모이고 소식을 나누던 공동체의 중심이었다. 그 공간이 다시 생겨야 마을이 '집'뿐 아니라 '마을'로 돌아온다.


어딘가에는 대형 산불 뒤 사람들이 흩어져, 결국 마을이 이름만 남는 경우도 있다. 내관리는 그 갈림길 앞에서 다른 선택을 보여준다. 그을음 대신 정리된 터를 남겼고, 잔해 대신 새집을 먼저 세웠다. 불이 지나간 골짜기 끝에서, 내관리는 조용히 그러나 분명히 다시 시작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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