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천군 보문면 수계리에 있는 의병장 장윤덕 선생 묘소. <장석원 기자>
예천군 보문면 수계리의 나지막한 구릉 위에 자리한 의병장 장윤덕 선생의 묘소는 웅장한 기념공원도, 대규모 추모시설도 아니다. 그러나 이곳은 한말 의병전쟁의 중심에서 항일투쟁을 전개한 인물이 잠든 곳으로 지역과 국가의 역사를 일상적인 공간 속에 담아낸 상징적 문화유산이다.
보문면 소재지에서 자가용으로 약 10여 분이면 닿을 수 있는 거리로 접근성이 비교적 수월하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탓에 의병장의 후손과 광복회, 독립운동연합회 관계자 등만이 찾고 있다. 묘소로 향하는 길은 완만한 산기슭을 따라 이어지며, 아래쪽에는 곡선형 진입로와 석축 그리고 곧게 뻗은 계단이 소나무 숲 사이로 봉분까지 이어져 의병장의 마지막 길을 따라 오르도록 돼 있다.
예천군 보문면 수계리에 있는 의병장 장윤덕 선생 묘소로 향하는 계단. <장석원 기자>
소나무 숲으로 둘러싸인 묘소는 완만한 구릉 위에 조성돼 있으며 둥근 봉분과 상석, 의병장의 행적을 기록한 비석이 감싸고 있다. 봉분 앞에는 '의병대장 장윤덕 선생'이라 새겨진 비석이 세워져 있고, 비문에는 그의 출생과 성장, 활동 등이 기록돼 있다. 비석 상단에는 용과 동물 문양이 새겨져 있으며, 전통 묘제 형식과 독립운동가 추모 형식이 함께 반영된 구조다.
묘소가 자리한 위치도 특징적이다. 언덕 위에서 내려다보면 수계리 마을과 계곡, 산줄기가 한눈에 들어온다. 이는 의병들이 이동하고 전투를 벌였던 지리적 환경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요소로, 단순한 묘소를 넘어 역사적 공간성을 지닌다.
예천군 보문면 수계리에 있는 의병장 장윤덕 선생 묘소에 관람객이 비석 옆면에는 비문을 살펴보고 있다. <장석원 기자>
애국지사 의병장 장윤덕은 1872년 예천읍 노상리에서 태어나 한학을 익히고 예천군 수서기로 근무하다 1905년 을사늑약 체결 이후 관직을 버리고 항일운동에 나섰다. 1907년에는 이강년 의진과 연합해 예천·풍기·봉화·문경 일대를 중심으로 일본군·경찰과 교전하며 통신시설 파괴, 분파소 습격 등 의병전투를 전개했다. 같은 해 9월 상주에서 체포된 뒤 끝까지 항거하다 순국했다. 이후 60년이 지난 1968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았다.
의병장 장윤덕을 기리는 상징물은 1965년 10월 30일 대구 북구 산격동 경북대학교 교정에 세워져 있다. 교육 현장에서 그의 정신을 기리는 의미는 크지만, 그의 삶이 시작되고 의병활동이 전개된 고향 예천의 묘소는 실제 역사 현장을 보여주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또 다른 의미를 지닌다. 대구의 기념비가 '정신의 표상'이라면, 예천의 묘소는 '역사의 현장'으로 평가된다.
예천군 보문면 수계리에 있는 의병장 장윤덕 선생을 기리는 비석. <장석원 기자>
현재 묘소는 비교적 단출한 형태로 유지돼 있다. 별도의 안내 체계나 활용 프로그램은 제한적인 상황이다. 지역에서는 이 묘소를 출생지와 의병 활동지를 연결하는 탐방 코스, 학생 대상 역사 체험 교육 공간 등으로 활용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조윤 예천문화원 원장은 "예천은 장윤덕 의사가 태어나고 싸우고 돌아온 고향으로, 이곳은 지역이 지켜야 할 역사적 정체성의 핵심 공간"이라며 "향후 안내시설 정비와 교육·탐방 프로그램을 통해 지역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를 높여 나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화려하지 않지만 깊은 의미를 지닌 공간. 의병장 장윤덕 선생의 묘소는 국가와 지역, 과거와 현재를 잇는 조용한 역사 현장으로 남아 있다.
장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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