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서 만나는 우리동네 문화유산] 알려지지 않은 문화유산자료…주실마을 ‘영양 조영걸 가옥’을 걷다

  • 정운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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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6-02-21 16:53  |  발행일 2026-02-21
경상북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된 영양 조영걸 가옥의 대문. 1901년 현 위치로 옮겨 지은 고택으로, 세월이 흘러도 옛 위용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정운홍기자

경상북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된 '영양 조영걸 가옥'의 대문. 1901년 현 위치로 옮겨 지은 고택으로, 세월이 흘러도 옛 위용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정운홍기자

경북 영양군 일월면 주실마을은 청록파 시인 조지훈의 생가 '호은종택'으로 널리 알려진 문향(文鄕)이다. 종택과 고택이 마을 곳곳에 이어지지만, 길을 조금 더 올려 마을 서북쪽 끝자락에 닿으면 유독 눈에 밟히는 집이 있다. 2023년 경상북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된 '영양 조영걸 가옥'이다. 마을을 굽어보는 듯한 자리와 한눈에 느껴지는 규모가 '주실마을의 큰집'이라는 별칭을 자연스럽게 만든다.


이 가옥의 뿌리는 조선 후기 학자 마암(馬巖) 조진도(1724~1788)에게서 시작된다. 조진도가 1767년 무렵 봉화에 정착하며 지은 집이 출발점이었고, 18세기 말 손자 조시복이 '마암고택' 현판을 걸었다고 전한다. 이후 조시복의 아들 조언강이 살림의 중심 공간인 정침을 손보며 집의 틀이 정리됐고, 조진도의 6세손 조현기가 1901년 무렵 지금의 주실마을 자리로 옮겨 지으면서 오늘의 큰 윤곽이 갖춰졌다.


가옥 뒤편으로 돌아서면 조영걸 가옥의 규모가 비로소 드러난다. 기와지붕과 돌담이 산자락 풍경과 맞물려 큰집의 위용을 보여준다. 정운홍기자

가옥 뒤편으로 돌아서면 '조영걸 가옥'의 규모가 비로소 드러난다. 기와지붕과 돌담이 산자락 풍경과 맞물려 큰집의 위용을 보여준다. 정운홍기자

집의 사연은 근대사와 맞물리며 더 굵어진다. 일제강점기 초기인 1911년 3월, 조현기는 마을의 일가 사람들과 함께 독립운동 기지를 세우기 위해 만주로 망명했고, 가옥은 일가의 외손인 권희연에게 넘어갔다. 마을 어르신들의 기억 속 "주실에서 가장 부자였던 집"이란 말도 대체로 이 시기와 겹친다. 권희연은 살림이 늘면서 시대 변화에 맞춰 정침을 고치고 사랑채를 키웠으며, 고방채·대문채 등 부속채를 덧대 집을 확장했다. 한 채의 집에 '조선 후기 상류주택의 형식' 위로 '근대기의 증·개축'이 겹겹이 남게 된 배경이다.


현장에서 마주한 조영걸 가옥은 전형적인 'ㅁ'자형 뜰집의 골격이 선명하다. 정침은 정면 6칸, 측면 5.5칸 규모로, 기와를 얹은 맞배지붕 아래 바깥 시선을 안으로 들이지 않는 폐쇄성과 당당한 위엄이 함께 읽힌다. 정침은 '⊓'자형 안채와 '一'자형 사랑채가 서로 다른 주열(기둥줄)로 결합해 큰 'ㅁ'자를 이루는 구조다. 조선 후기에 세워진 경북 북부 지역 상류 주택의 전형을 보여주면서도, 소유 변화 과정에서 덧붙은 공간들이 '살아 있는 기록'처럼 남아 주거사의 흐름을 짚게 한다.


집을 한 바퀴 돌다 보면 배치에서 또 하나의 흥미로운 장면을 만나게 된다. 일반적으로 대문이 가장 크고 위세를 드러내기 마련인데, 이곳은 옆문(후문)이 대문보다 더 크고 넓게 마련돼 있다. 집안으로 드나들었을 사람과 물자의 규모, 그리고 한때 이 집이 품었을 생활의 결을 상상하게 하는 대목이다.


영양 주실마을 서북쪽 끝자락에 자리한 조영걸 가옥 안내문. 정운홍기자

영양 주실마을 서북쪽 끝자락에 자리한 '조영걸 가옥' 안내문. 정운홍기자

마을에서 만난 한 어르신은 이 집을 "번창했던 집"으로 기억했다.


"여기가 예전에는 이 동네에서 제일가는 부잣집이었어. 대대로 잘 살던 집이라 그런지 자녀들도 공부를 잘해서 서울로 나가 성공했지. 지금은 자식들이 다 외지에 살아서 집이 비어 있지만, 우리 같은 노인네들 기억 속엔 여전히 주실마을에서 가장 번창했던 집으로 남아 있어."


현재 가옥은 2006년 지금의 소유자가 매입해 관리하고 있으며, 2007~2008년 두 차례 보수를 거쳤다. 다만 개인 소유인 탓에 평소에는 문이 잠겨 있어, '문화유산자료'라는 이름에 비해 방문객들이 실물을 접할 기회가 많지 않은 편이다. 영양군은 이 지점을 보완해 주실마을을 찾는 이들에게 조영걸 가옥의 존재를 더 알리는 데 힘을 쏟겠다는 계획이다.


영양군 주실마을 서북쪽 끝자락에 자리한 조영걸 가옥, 청록파 시인 조지훈의 생가로 널리 알려져 있으나 동네 어르신들에게는 조영걸 가옥에 대한 기억이 더 크다. 정운홍기자

영양군 주실마을 서북쪽 끝자락에 자리한 '조영걸 가옥', 청록파 시인 조지훈의 생가로 널리 알려져 있으나 동네 어르신들에게는 조영걸 가옥에 대한 기억이 더 크다. 정운홍기자

영양군 관계자는 "조영걸 가옥은 주실마을의 역사와 주거사 변화를 보여주는 중요한 문화유산자료인데도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아쉽다"며 "마을을 찾는 분들이 더 쉽게 접할 수 있도록 안내와 홍보를 꾸준히 보완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는 개인 소유여서 평소에는 잠겨 있는 경우가 많지만, 관람객이 방문할 경우 오픈해 관람할 수 있도록 조치해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호은종택과 지훈문학관을 둘러본 뒤, 마을 서북쪽 끝까지 조금만 더 걸어가 보자. 조영걸 가옥은 비어 있으되 '시간'은 비어 있지 않은 집이다. 조선 후기 상류가의 형식, 근대기의 증축 흔적, 그리고 망명과 이주의 굴곡까지, 주실마을의 한 시대가 이 큰집의 벽과 마루에 차곡차곡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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