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된 '영양 조영걸 가옥'의 대문. 1901년 현 위치로 옮겨 지은 고택으로, 세월이 흘러도 옛 위용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정운홍 기자>
경북 영양군 일월면 주실마을은 청록파 시인 조지훈의 생가 '호은종택'으로 널리 알려진 문향(文鄕)이다. 종택과 고택이 마을 곳곳에 이어지지만, 길을 조금 더 올려 마을 서북쪽 끝자락에 닿으면 유독 눈에 밟히는 집이 있다. 2023년 경상북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된 '영양 조영걸 가옥'이다. 마을을 굽어보는 듯한 자리와 한눈에 느껴지는 규모가 '주실마을의 큰집'이라는 별칭을 자연스럽게 만든다.
이 가옥의 뿌리는 조선 후기 학자 마암(馬巖) 조진도(1724~1788)에게서 시작된다. 조진도가 1767년 무렵 봉화에 정착하며 지은 집이 출발점이었고, 18세기 말 손자 조시복이 '마암고택' 현판을 걸었다고 전한다. 이후 조시복의 아들 조언강이 살림의 중심 공간인 정침을 손보며 집의 틀이 정리됐고, 조진도의 6세손 조현기가 1901년 무렵 지금의 주실마을 자리로 옮겨 지으면서 오늘의 큰 윤곽이 갖춰졌다.
가옥 뒤편으로 돌아서면 '조영걸 가옥'의 규모가 비로소 드러난다. 기와지붕과 돌담이 산자락 풍경과 맞물려 큰집의 위용을 보여준다.<정운홍기자>
집의 사연은 근대사와 맞물리며 더 굵어진다. 일제강점기 초기인 1911년 3월, 조현기는 마을의 일가 사람들과 함께 독립운동 기지를 세우기 위해 만주로 망명했고, 가옥은 일가의 외손인 권희연에게 넘어갔다. 마을 어르신들의 기억 속 "주실에서 가장 부자였던 집"이란 말도 대체로 이 시기와 겹친다. 권희연은 살림이 늘면서 시대 변화에 맞춰 정침을 고치고 사랑채를 키웠으며, 고방채·대문채 등 부속채를 덧대 집을 확장했다. 한 채의 집에 '조선 후기 상류주택의 형식' 위로 '근대기의 증·개축'이 겹겹이 남게 된 배경이다.
현장에서 마주한 조영걸 가옥은 전형적인 'ㅁ'자형 뜰집의 골격이 선명하다. 정침은 정면 6칸, 측면 5.5칸 규모로, 기와를 얹은 맞배지붕 아래 바깥 시선을 안으로 들이지 않는 폐쇄성과 당당한 위엄이 함께 읽힌다. 정침은 '⊓'자형 안채와 '一'자형 사랑채가 서로 다른 주열(기둥줄)로 결합해 큰 'ㅁ'자를 이루는 구조다. 조선 후기에 세워진 경북 북부 지역 상류 주택의 전형을 보여주면서도, 소유 변화 과정에서 덧붙은 공간들이 '살아 있는 기록'처럼 남아 주거사의 흐름을 짚게 한다.
집을 한 바퀴 돌다 보면 배치에서 또 하나의 흥미로운 장면을 만나게 된다. 일반적으로 대문이 가장 크고 위세를 드러내기 마련인데, 이곳은 옆문(후문)이 대문보다 더 크고 넓게 마련돼 있다. 집안으로 드나들었을 사람과 물자의 규모, 그리고 한때 이 집이 품었을 생활의 결을 상상하게 하는 대목이다.
주실마을에 자리한 '조영걸 가옥'은 대문보다 더 크고 넓게 마련된 옆문(후문)이 눈길을 끈다.<정운홍기자>
영양 주실마을 서북쪽 끝자락에 자리한 '조영걸 가옥' 안내문<정운홍기자>
마을에서 만난 한 어르신은 이 집을 "번창했던 집"으로 기억했다.
"여기가 예전에는 이 동네에서 제일가는 부잣집이었어. 대대로 잘 살던 집이라 그런지 자녀들도 공부를 잘해서 서울로 나가 성공했지. 지금은 자식들이 다 외지에 살아서 집이 비어 있지만, 우리 같은 노인네들 기억 속엔 여전히 주실마을에서 가장 번창했던 집으로 남아 있어."
현재 가옥은 2006년 지금의 소유자가 매입해 관리하고 있으며, 2007~2008년 두 차례 보수를 거쳤다. 다만 개인 소유인 탓에 평소에는 문이 잠겨 있어, '문화유산자료'라는 이름에 비해 방문객들이 실물을 접할 기회가 많지 않은 편이다. 영양군은 이 지점을 보완해 주실마을을 찾는 이들에게 조영걸 가옥의 존재를 더 알리는 데 힘을 쏟겠다는 계획이다.
영양군 주실마을 서북쪽 끝자락에 자리한 '조영걸 가옥', 청록파 시인 조지훈의 생가로 널리 알려져 있으나 동네 어르신들에게는 조영걸 가옥에 대한 기억이 더 크다.<정운홍기자>
영양군 관계자는 "조영걸 가옥은 주실마을의 역사와 주거사 변화를 보여주는 중요한 문화유산자료인데도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아쉽다"며 "마을을 찾는 분들이 더 쉽게 접할 수 있도록 안내와 홍보를 꾸준히 보완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는 개인 소유여서 평소에는 잠겨 있는 경우가 많지만, 관람객이 방문할 경우 오픈해 관람할 수 있도록 조치해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호은종택과 지훈문학관을 둘러본 뒤, 마을 서북쪽 끝까지 조금만 더 걸어가 보자. 조영걸 가옥은 비어 있으되 '시간'은 비어 있지 않은 집이다. 조선 후기 상류가의 형식, 근대기의 증축 흔적, 그리고 망명과 이주의 굴곡까지, 주실마을의 한 시대가 이 큰집의 벽과 마루에 차곡차곡 남아 있다.
정운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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