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경북지역 야학 학습자 구성. Gemini 생성이미지
1970년대 대구·경북 소년공들의 배움터였던 야학(夜學). 반세기가 흐른 지금도 '배움의 터전'으로써 밤마다 불을 밝히고 있다. 배움이 소외되지 않는 시대에 이르렀지만, 여전히 글을 읽고 쓰지 못하는 이들이 존재해서다. 칠순의 만학도와 외국인 이주노동자로 교육 주체가 바뀌었지만, 밤마다 공책을 펴는 이유는 다르지 않다. 배움을 원하는 이들의 순수한 열정과 야학 교사들의 노력이 더해져 따스한 교육 공동체가 형성되고 있는 셈이다.
이에 영남일보가 지역 야학 '현장' 속으로 들어가 봤다. 산업화 시대 노동자 교육에서 출발한 야학이 오늘날 어떤 의미를 갖는지, 그리고 제도권 교육이 미처 닿지 못한 배움의 공간을 누가 어떻게 지켜내고 있는지를 총 3차례에 걸쳐 짚어본다.
◆대구·경북 노동자의 밤을 밝힌 '야학'
1977년 당시 대구 야학 현황. 82곳에 달하던 야학의 60%가 공단 밀집 지역에 몰려 있었으며, 재학생 91.2%가 소년공이었다. Gemini 생성이미지
야학은 오랜 시간 대구·경북지역 제도권 밖 교육의 한 축을 담당해 왔다. 특히, 산업화 시기 대구는 '야학의 도시'로 불릴 만큼 배움 활동이 활발했던 곳이다. 1970년대 대구 섬유 산업이 절정에 이르면서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청소년 노동자들이 공장에 취업했고, 이들을 위한 야학이 공단을 중심으로 빠르게 정착됐다.
예전부터 야학은 교회나 개인의 자생적 교육활동을 통한 민중 활동의 일환으로 진행됐다. 교육당국이 처음으로 야학에 대한 현황 파악에 나선 건 1977년부터다. 대구시 교육위원회 조사에 따르면 당시 집계된 대구지역 내 야학터는 약 82개소, 재학생은 4천582명에 달했다.
야학은 철저히 공장 밀집 지역에 집중됐다. 서구 비산동(22곳)과 북구 침산동(18곳), 제3공단 일대(9곳) 등 3개 지역에만 전체 야학의 60%(49곳)가 몰려 있었다. 전체 재학생의 91.2%에 달하는 4천180여명이 초등학교 졸업 직후 인근 공단에서 근무하던 소년공들이었다.
1980년대 들어 지역 야학은 전환기를 맞았다. 이 시기엔 단순히 글을 가르치는 곳을 넘어 노동 현실과 사회 문제를 함께 배우는 시민교육의 장으로 역할이 확대됐다. 이는 대구뿐 아니라 경북 전역으로 확산하는 계기가 됐다. 경북도에 확인 결과, 1983년 당시 포항과 구미, 안동 등 경북 주요 도시에서 약 120여개 야학이 운영된 것으로 조사됐다.
1990년대부턴 중학교 의무교육이 전국으로 확대돼 야학 규모도 빠르게 축소됐다. 다만, 이는 '야학의 끝'이 아닌 '대상자의 이동'으로 분석된다. 지역 내 야학 역사를 연구해온 경북대 조정봉 박사(교육학과 전공·현 울산과학기술원 연구원)는 "1970년대 산업화 과정에서 학교 대신 공장으로 향했던 세대가 뒤늦게 교육을 다시 찾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며 "야학은 산업화 시기 교육 기회를 놓친 세대의 학습 요구를 오랫동안 받아온 공간"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청소년 노동자가 줄면서 야학의 역할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교육 대상이 노년층 문해교육 중심으로 이동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마지막 학교'의 새 풍경…노인과 외국인 노동자가 나란히
2024년 대구경북 야학 학습자 구성원. 학습자 96.2%가 60대 이상(여성 95% 이상)이며, 외국인 수강생이 새로운 주축으로 등장했다. Gemini 생성이미지
야학의 교실 풍경은 시대에 따라 끊임없이 변해왔다. 70년대 소년공이 자리를 채우던 교실은 어느새 주름살이 든 노인들로 채워졌고, 이주노동자 또한 새로운 얼굴로 등장했다. 내국인 청소년 노동자 대신 노년층과 외국인 이주노동자가 야학을 품게 된 것이다.
대구평생교육진흥원이 발표한 대구·경북 평생교육 통계를 보면, 2024년 기준 지역 야학 학습자의 96.2%가 60대 이상이다. 연령대별로는 70대가 51.4%(231명)로 가장 많고, 80대 이상 26.8%(120명), 60대 18.0%(81명) 순이다. 특히, 전체 학습자의 95% 이상이 여성이라는 점도 주목된다. 이들 대부분이 1970년대 당시 가부장적 분위기 속 스스로 진학을 포기했던 젊은 여성들이라는 게 야학 교사들의 전언이다.
야학은 새로운 이웃도 맞이하고 있다. 최근 지역 곳곳에서 늘어나고 있는 외국인 이주노동자와 결혼이민자들이다. 대구·경북 야학 협의회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야간 한국어·검정고시반 외국인 등록 수강생은 150명이다. 국적별로는 베트남 48명, 우즈베키스탄 33명, 네팔 27명, 캄보디아 15명, 중국 및 기타 27명이다.
경북대 김민남 명예교수(교육학과) "이 같은 변화는 초고령사회 진입과 외국인 이주노동자 증가라는 두 흐름이 야학으로 스며든 결과다. 야학의 사회적 기능이 확대되며, 교육적 역할이 더 커지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야학은 단순히 글을 가르치는 곳이 아니라 제도권 교육이 미처 포괄하지 못한 사람들을 받아들이는 사회적 교육 장치"라며 "고령층 문해교육과 이주민 기초교육 수요가 동시에 늘고 있는 지금, 야학의 역할은 과거보다 더 중요해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반세기 넘게 불 켜지는 교실… 대구 '삼일야학'을 가다
지난 6일 오후 7시쯤 찾은 대구 서남신시장 골목 안 삼일야학 정문. 구경모기자
지난 6일 오후 7시쯤 대구 삼일야학에서 만학도들이 영어수업을 듣고 있다. 구경모기자
지난 6일 오후 6시40분쯤 찾은 대구 달서구 서남신시장 골목 안 삼일야학. 시장 골목 깊숙이 자리한 데다 간판도 눈에 띄지 않을 만큼 작아 상인들에게 수차례 물어본 끝에야 겨우 찾을 수 있었다. 도착 당시 2층짜리 낡은 건물에 있던 야학은 어둡던 골목과 달리 교실마다 환한 불빛이 새어 나왔다.
삼일야학이 사람들 눈에 잘 비춰지지 않는 덴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늦은 나이에 글을 배우러 온다는 사실을 남들에게 들킬까 봐 걸음을 돌리는 어르신들을 위한 배려다. 삼일야학 교사 김민비(32)씨는 "늦은 나이에 글을 배운다는 사실을 부끄럽게 여기는 사회적 인식 탓에 못 오시는 분들이 많다"며 "조용히 오실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삼일야학에 들어서자 교사들이 교무실에 모여 학교 운영 방안에 대한 회의를 진행하고 있었다. 현재 삼일야학 교사는 모두 12명. 한 명도 예외 없이 무보수 자원봉사자다. 올해 처음 야학교사 생활을 시작한 대학생부터, 20년 이상 야학 교사로 임한 일반 직장인까지 다양했다.
오후 7시가 되자 수업이 시작됐다. 기초 한글부터 검정고시 준비까지 학생 수준에 따라 교육 내용이 달랐다. 한 교실에선 어르신들이 공책에 자음과 모음을 또박또박 써 내려가고 있었다. 바로 옆 교실에선 중학교 수준 영어 문제를 풀어가는 학습자들의 연필 소리가 들렸다.
15년째 삼일야학 교사로 활동 중인 라다형(34)씨는 "교실마다 연령도, 사연도 달랐지만 늦은 밤 이 골목을 찾아온 마음만큼은 모두 똑같다. 대학 시절 봉사활동으로 시작한 야학교사 생활이 어느새 삶의 일부가 됐다"며 "다양한 사람들이 기뻐하거나 학습하는 모습을 볼 때면, 내가 이 교실을 지켜야 할 이유를 다시 확인하게 된다"고 말했다.
1971년 문을 연 삼일야학은 올해로 54년째를 맞았다. 대구에서 가장 오래된 야학으로, 단 한 해도 쉰 적이 없다. 김대희 교장은 "IMF 외환위기 때처럼 경제적으로 어려워지거나 교사를 구하기 힘들 때는 그만둘까 고민한 적도 있었다"며 "결국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건 문해교육을 향한 교사들의 순수한 열정과 배움을 포기하지 않은 만학도들의 노력 덕분"이라고 말했다.
구경모(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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