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포항시 남구 장기면 일원에 조성되고 있는 포항 연어 스마트양식 클러스터 공사 현장. <전준혁기자>
짙푸른 물결이 넘실대는 동해와 1㎞도 채 떨어지지 않은 경북 포항시 남구 장기면 금곡리 117-1번지 일원. 약 22만㎡의 광활한 부지 위로 거대한 중장비 굉음이 끊임없이 울려 퍼지고 있다. 겉보기엔 평범한 공사장 같지만 이곳에서는 대한민국 수산업의 지형도를 송두리째 바꿀 거대한 프로젝트가 가동되고 있다. 통제 불가능한 바다에 의존하던 전통 어업의 한계를 첨단과학기술로 뛰어넘으려는 시도다. 이 단지의 정식 명칭은 '포항 연어 스마트양식 클러스터'다. 해마다 막대한 물량을 전량 수입에 의존하던 대서양 연어를 우리 기술로 직접 길러내는 것을 넘어, 전 세계 60조원 규모의 글로벌 연어 시장을 정조준하는 'K-수산물의 미래'가 바로 이곳에서 태동하고 있다.
◆ 기후의 역습과 한계에 직면한 바다 위 양식
클러스터에 들어설 미래아쿠아팜의 성기백 총괄본부장. <전준혁 기자>
최근 몇 년간 동해 수산업은 말 그대로 기후 위기 최전선에서 사투를 벌여왔다. 특히 물고기를 기르는 양식 어민에게 적조, 고수온, 냉수대 현상은 사형 선고와도 같다. 한 해 바다농사를 한순간에 망쳐버리기 때문이다. 포항만 해도 적조나 고수온 현상이 한번 발생하면 육상 양식장의 강도다리 등이 집단 폐사하는 일이 반복돼 왔다.
여기에 해양쓰레기와 미세플라스틱으로 인한 연안 오염, 점점 거세지는 태풍 등 기상 악화 문제까지 겹치면서 통제 불가능한 바다 위에서의 양식은 산업적인 지속가능성을 잃어가고 있다. 기후변화라는 거대한 위협 앞에서 대한민국 수산업은 새로운 생존공식을 찾아야만 하는 절체절명의 벼랑 끝에 선 것이다.
포항이 기후위기 앞에서 내놓은 해답은 명쾌하면서도 혁신적이다. 바로 바다 공간을 육지로 끌어올리는 육상 순환여과식 시스템(RAS)의 도입이다. 바다 위에 그물을 치고 자연에 운명을 맡기는 대신, 육상에 거대한 수조를 만들고 양식에 사용한 물을 첨단 필터와 미생물로 정화해 끊임없이 재사용하는 첨단 친환경 기술이다. 현장에서 만난 성기백 미래아쿠아팜 총괄본부장(공학박사)은 육상 양식의 가장 큰 장점으로 인간의 인위적 통제력을 꼽았다. 고수온이든 냉수대든 과학적인 시스템을 바탕으로 수온을 최적의 상태로 맞출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 시스템의 핵심은 정교한 다단계 수처리 공정에 있다. 수조에서 발생한 연어의 배설물과 남은 사료 찌꺼기는 물리적 필터를 통해 걸러지고, 미생물 여과조에서 유독성 물질이 생물학적으로 분해된다. 마지막으로 자외선과 오존 살균 설비를 거치며 바이러스와 박테리아까지 완전히 박멸된다. 물의 재사용률은 무려 95% 이상에 달하며, 증발하거나 소실된 아주 적은 양의 물만 보충하면 된다. 이 완벽한 폐쇄 순환 고리 덕분에 밖의 바다가 적조로 붉게 물들거나 폭염이 닥쳐도 실내 수조의 연어들은 최적의 환경에서 자라난다. 바다의 불확실성을 과학의 통제력으로 완전히 정복하는 것이다.
◆ 왜 포항 장기면인가, 담수와 해수의 절묘한 조화
양식장 내부에 마련된 대규모 여과 시설. <전준혁 기자>
포항 스마트양식 클러스터가 들어선 장기면 금곡리는 연어 양식을 위한 최적지로 평가받는다. 연어는 생애주기에 따라 민물과 바닷물을 모두 필요로 한다. 부화 후 약 100g 사이즈의 치어로 성장할 때까지는 담수에서 키워야 하고, 그 이후 본격적인 성장을 위해선 해수로 전환해야 한다. 장기면 일대는 장기천이 흐르고 지하수가 풍부해 담수 확보가 용이한 동시에 불과 700m 거리의 바다로부터 깨끗한 해수를 끌어올 수 있는 지리적 장점을 갖췄다. 또한 대규모 단지 조성이 용이한 평지 지형이라는 점도 기업 유치와 공기 단축에 큰 이점으로 작용했다.
이 거대한 프로젝트의 성공을 위해 포항시는 140년 역사의 노르웨이 양식 전문기업 '닐스 윌릭슨'사와 손을 잡았다. 2021년 체결된 업무협약을 바탕으로 노르웨이의 검증된 원천 기술과 우리나라 정보통신기술·인공지능(AI) 제어기술을 융합하고 있다. 현재 장기면 일대에는 2만6천㎡ 규모의 최첨단 테스트베드 구축공사가 순조롭게 진행 중이다. 다가오는 8월쯤 아이슬란드에서 발안란(부화 직전 난막을 통해 눈이 보이게 되는 알)을 수입해 본격적인 생산라인이 가동되면, 연간 1천t 규모의 무항생제 포항산 연어가 식탁에 오르게 된다.
첨단기술과 대규모 자본의 유입 이면에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과제가 있다. 바로 평생을 바다에 기대어 살아온 지역 어민들과의 공존이다. 이에 대해 성기백 본부장은 "포항 연어 클러스터는 기존 어업과 충돌하는 경쟁관계가 아닌, 철저한 상생모델"이라고 강조했다. 연어는 기존 어민들이 주력으로 삼는 광어나 강도다리와는 아예 다른 특화된 품목이라는 것이다.
환경 오염에 대한 우려도 과학적으로 불식시켰다. 포항 연어 클러스터는 약 30억원의 대규모 자본을 투입해 국내 최고 수준의 완전 폐수처리 시스템을 구축했다. 즉, 완벽한 여과와 폐수 처리를 거쳐 방류되므로 인근 어장의 수질이나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이 거의 없다. 지역 어촌계와의 마찰을 줄이고 신뢰를 쌓기 위한 기술적 배려가 돋보이는 대목이다.
◆ 배후부지 개발과 고부가가치 바이오 혁명
연어들을 키워낼 대형 수조의 모습. 내부 직경이 20m에 달한다. <전준혁 기자>
테스트베드 완공 이후 배후부지 조성 계획은 더욱 웅장하다. 배후부지에 대규모 민간 자본이 투입되면 연간 1만t을 생산하는 아시아 최대 규모의 연어양식 전진기지가 완성된다. 이곳은 단순히 물고기를 기르는 1차 산업의 현장이 아니다. 가공시설과 유통물류센터가 함께 들어서며 거대한 산업 생태계를 이룰 예정이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일자리는 최우선적으로 지역민에게 돌아가며, 포항해양마이스터고 졸업생 등 지역의 젊은 인재들을 적극 채용해 고용 창출에도 크게 기여할 전망이다.
연어 가공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산물 활용도 기대를 모은다. 머리, 뼈, 껍질 등 전체 중량의 40%에 달하는 부산물은 단순 폐기물이 아닌 고부가가치 바이오자원이다. 해양생명공학 기술을 통해 껍질에서는 의료용 콜라겐을 추출하고, 내장에서는 고순도 오메가3 오일을 정제할 수 있다. 또 뼈와 살점으로는 프리미엄 사료 생산도 가능하다. 환경을 지키면서도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진정한 의미의 블루바이오산업이 포항에서 현실화되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연어 소비량은 연간 7만t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전량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포항에서 연어가 대량 생산되면 막대한 외화 절감 효과는 물론, 항공 운송비가 빠진 합리적인 가격에 최상의 신선도를 갖춘 연어를 공급할 수 있게 된다. 이는 노르웨이나 칠레산 수입 연어와 비교했을 때 강력한 경쟁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요소다. 나아가 일본과 대만 등 아시아 시장을 넘어 유럽과 캐나다로의 역수출도 기대해볼 수 있다.
수산업의 위기는 이미 우리 곁에 와 있지만, 경북 동해안은 혁신이라는 돛을 달고 위기를 기회로 바꾸고 있다. 뼈를 깎는 자정 노력으로 부활한 구룡포 과메기부터 고부가가치로 진화한 울릉도와 울진의 수산물, 자연의 한계를 데이터 과학으로 뛰어넘은 포항의 스마트 연어 양식까지. 바다를 육지로 끌어올린 이 '푸른 혁명'이 전 세계 식탁을 어떻게 점령해 나갈지 귀추가 주목된다.
전준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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