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뜨는 새벽에 대게잡이들의 어선모습.<원형래 기자>
요즘 동해 바다는 유난히 바쁘다. 경북 울진의 항구에 들어서면 그 이유를 곧 알게 된다. 새벽을 가르며 돌아온 어선, 물칸에서 쏟아져 나오는 게들, 그리고 그 주변을 둘러싼 사람들의 분주한 움직임까지. 바다는 잠잠해 보이지만, 항구는 살아 움직이고 있다.
대게와 붉은대게가 쪄서 김이 모락모락 모습.<원형래기자>
울진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한 가지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곳은 단순히 '대게가 유명한 곳'이 아니다. 같은 게라도 어느 항구에 내리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펼쳐진다. 기자가 찾은 죽변항과 후포항은 불과 한 시간 남짓 거리지만, 같은 바다를 공유하면서도 전혀 다른 풍경과 맛, 그리고 산업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울진대게가 죽변항에서 입찰 준비하기 위해 대게 정리된 모슴.<원형래기자>
◆ 죽변항, '대게의 본질'을 맛보는 선별의 경제
울진 북쪽의 죽변항 위판장은 새벽 공기가 채 가시기도 전에 활기를 띤다. 바닥에는 갓 잡아 올린 대게들이 가지런히 놓이고, 중도매인들은 몸을 숙여 게의 다리와 배를 유심히 살핀다.
눈에 띄는 것은 색이다. 등은 은은한 황갈색, 배는 유백색. 길게 뻗은 다리는 마치 대나무 마디처럼 곧고 단단하다. 현장에서 만난 상인은 게를 들어 보이며 단언했다. "이건 건드릴 게 없어요. 그냥 쪄 먹으면 됩니다."
실제로 죽변의 대게는 요리법이 단순하다. 찜이 기본이고, 신선도가 뛰어나면 회로도 즐긴다. 불필요한 양념을 더하지 않는 이유는 분명하다. 살 자체의 단맛과 부드러움이 이미 완성된 맛이기 때문이다. 학술적으로도 대게는 비교적 얕은 수심200m~400m에서 서식하며 조직이 연하고 풍미가 섬세하다. 이러한 특성은 '프리미엄 식재료'로서의 가치를 만든다. 죽변항은 좋은 재료가 모이고 그 자체로 소비되는 맛의 종착지이자 선별의 경제가 작동하는 곳이다.
붉은대게가 어민들 손에 정리돼 입찰 준비에 분주하다.<원형래기자>
◆후포항, 붉은대게(홍게)가 산업이 되는 가공의 경제
남쪽으로 내려가 후포항에 들어서자 분위기는 전혀 달라졌다. 부두에는 붉은빛 게들이 산처럼 쌓여 있고, 옆에서는 가공 공장의 기계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이곳의 주인공은 붉은대게, 홍게다. 익히지 않았는데도 선명한 붉은색을 띠는 이 게들은 수심 450m~2천m에 이르는 심해에서 서식한다. 깊은 바다의 높은 수압을 견딘 만큼 살은 촘촘하고 맛은 강렬하다. 홍게는 "국물 내면 끝입니다."라는 어민의 말처럼 감칠맛이 강하고 풍미가 진하다.
죽변의 대게가 '그대로 먹는 음식'이라면, 후포의 홍게는 '요리로 확장되는 재료'다. 라면과 파스타, 게장, 각종 가공식품까지 활용 범위가 넓다. 후포항에서 게는 식탁에 오르기 전 한 번 더 산업의 과정을 거친다. 음식은 상품이 되고, 상품은 지역 산업으로 이어진다.
후포항 선주 박명수(62) 씨는 "심해에서 건져 올린 이 붉은 대게들은 가격은 착해도 맛은 일품이죠. 우리 어민들은 자원을 지키기 위해 어린 게는 반드시 방류하며 '울진의 맛'을 대대로 지켜가고 있다"고 말했다.
◆ 가격과 선택의 기준도 다르다
두 게의 차이는 가격에서도 극명하게 드러난다.죽변항의 대게는 크기와 상태에 따라 높은 가격을 형성한다. 선물용이나 접대용으로 소비되는 이유다. '좋은 것을 조금' 먹는 방식이다.반면 붉은대게는 상대적으로 부담이 적다. 어획량이 많고 공급이 안정적이기 때문이다. 대신 다양한 요리로 즐길 수 있어 '많이, 다양하게' 먹는 방식에 가깝다.결국 소비자는 선택하게 된다.본연의 맛을 즐길 것인지,폭널은 활용성과 가성비를 택할 것인지에 따라 취향은 갈린다.
대게와 붉은대게가 찜 색깔의 모습도 눈으로 확인할수도 있다.<원형래기지>
◆보는 눈과 느끼는 맛, 요리법의 차이
죽변항 위판장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대게의 색이다. 등껍질은 황갈색, 배 쪽은 유백색. 다리는 길고 가늘며 곧게 뻗어 있다.반면 후포항의 붉은대게는 이름 그대로다.
"익히지도 않았는데 빨갛죠?"현장 어민의 말처럼, 붉은대게는 생물 상태에서도 선명한 홍색을 띤다.학술적으로 두 종은 같은 속이지만 형태적 차이가 분명하다. 붉은대게는 심해 적응종으로 껍질이 더 단단하고 색소가 강하며, 대게는 상대적으로 연하고 밝은 색을 보인다.
죽변항 인근 식당에서 만난 상인은 이렇게 설명했다."대게는 달고 부드러워요. 그냥 먹어야 제일 맛있죠.반면 후포항에서는 전혀 다른 평가가 나온다."붉은대게는 국물 내면 끝내줘요. 맛이 진하니까."대게는 섬세하고 단맛이 강한 풍미, 붉은대게는 아미노산 함량이 높아 감칠맛이 강한 특성을 보이는 것으로 분석된다
대게는 요리가 단순하다. 찜이 기본이고, 신선하면 회로도 먹는다."괜히 손대면 맛 죽어요." 현장 상인의 말이다.반면 붉은대게는 요리가 다양해진다. 라면, 파스타, 게장, 게살 가공품까지 끝이 없다.이 차이는 과학적으로도 설명된다. 붉은대게는 가공 적합성이 높은 원료로, 분말·추출물 등 다양한 식품 소재로 활용된다
죽변항을 찾은 관광객 이정윤(45) 씨는"대게 본연의 담백함을 맛보고, 경매하는 모습도 보고 바로 쪄서 먹으니 신선함이 다르네요"라고 강조했다.
취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두 항구의 장면이 겹쳐졌다. 죽변에서는 김이 오르는 찜통 위로 대게의 향이 퍼지고 있었고, 후포에서는 붉은대게가 기계 위에서 분해되어 새로운 형태로 태어나고 있었다.
울진 붉은대게의 세계화, '미식수산' 김상철 대표"
홍게의 상품성을 높이기 위해 노력중인 김상철 미식수산대표가 영남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원형래기자>
동해의 푸른 파도가 부서지는 울진 후포항. 이곳에서 한때 '싸구려 홍게'로 불리던 수산물이 세계 시장을 향한 프리미엄 식재료로 탈바꿈하고 있다. 그 중심에는 미식수산 김 대표가 있다. 그는 자신을 단순한 상인이 아닌, 심해의 가치를 깎아내는 '보석 세공사'라고 표현한다.
그는 특히 '이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홍게'라는 기존 명칭이 가진 저가 이미지를 벗기기 위해 '붉은 보석'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제시했다. "이름을 바꾸자 소비자 인식이 달라졌습니다. 가성비 식재료에서 프리미엄 식재료로 평가가 이동했죠. 브랜드가 곧 가치라는 걸 체감한 순간이었습니다."
가공 방식에서도 차별화를 꾀했다. 김 대표는 게살의 결을 유지하기 위해 고압 프레스 방식을 도입했다. 여기에 자동화 시스템을 결합해 위생과 생산 효율을 동시에 확보했다. 특히 게를 삶고 남은 자숙액을 농축해 소스로 재활용하는 순환 공정은 해외 시장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버릴 것이 없는 구조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 결과물이 지금 일본과 유럽에서 인정받고 있습니다."
현재 미식수산의 매출 상당 부분은 해외에서 발생한다. 일본의 고급 가마보코 시장을 비롯해 미국과 유럽의 가정간편식(HMR) 시장에서도 수요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울진의 작은 항구에서 시작된 제품이 뉴욕과 파리 식탁에 오르는 것도 이제는 낯설지 않은 풍경이 됐다.
다만 성장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다. 공격적인 투자와 연구개발 비용으로 인해 아직은 수익성보다 적자가 큰 상황이다. 그럼에도 김 대표는 흔들리지 않는다. "지역과 함께 성장한다는 믿음이 있습니다. 우리 제품이 곧 울진을 알리는 길이라는 생각으로 버티고 있습니다."
인터뷰 내내 김 대표의 시선은 확고했다. 한때 저평가되던 홍게를 세계 시장으로 끌어올리겠다는 그의 집념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적자의 파도 속에서도 항해를 멈추지 않는 그의 도전이, 머지않아 '울진'이라는 이름을 세계 미식 지도 위에 선명히 새길 날을 예고하고 있다.
원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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