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세계를 이어 붙이는 일

  • 김보미 작곡가·예술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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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6-04-13 10:59  |  발행일 2026-04-14
김보미 작곡가·예술기획자

김보미 작곡가·예술기획자

최근, 예술인의 보릿고개라 불리는 1, 2, 3월이 지나고 4월이 되자 다시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눈다.


클래식 작곡을 전공했지만, 늘 클래식에만 머물러 있지는 않았다. 국악과 재즈, 전자음악 등 다양한 음악을 재료 삼아 표현의 범위를 넓혀왔다. 그 흐름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며 협업이 생겼고, 기획에도 발을 들이게 되었다.


요즘은 "작곡이 아깝지 않냐"는 질문을 종종 듣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아깝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작곡을 놓은 것이 아니라, 내 창작이 더 넓어졌다는 느낌에 가깝다. 내가 만들고 싶은 세계를 위해 음악이 필요하면 직접 만들고, 다른 방식이 더 적절하면 누군가의 손을 빌린다. 예전에는 음악이 전부였다면, 지금은 여러 재료가 함께 움직인다.


요즘 특히 공을 들이고 있는 일은 함께하는 예술가들의 세계를 이해하는 것이다. 전시를 준비하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한 사람마다 하나의 세계가 또렷하게 존재한다는 걸 느낀다. 그 세계를 조금 더 오래 들여다보게 된다.


얼마 전, 전시장 앞 카페에서 시각 작가 세 명과 크레파스로 캐릭터를 그려보았다. 같은 곰돌이를 그렸는데도 모두 다른 모습이 나왔다. 누군가는 담배를 물렸고, 누군가는 울게 했고, 또 다른 이는 노란 캐릭터를 파란색으로 채웠다. 사람들은 이상하게도 '똑같이 그리지 않으려는 선택'을 자연스럽게 하고 있었다.


결국 가장 비슷하게 그린 사람은 나였지만, 더 흥미로웠던 건 그 이유였다. 왜 그렇게 그렸는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그 선택 안에 각자의 작업 방식이 담겨 있었다. 잠깐의 그림에도 이미 작품관이 드러나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나는 늘 정답에 가까운 선택을 하려는 사람이었다. 주어진 것에 집중해 잘 해내고, 그에 대한 칭찬을 받는 데 익숙했다. 그래서일까, 모두가 떠올리는 색과 다른 색을 집어 드는 그 순간이 낯설면서도 인상 깊었다. 어쩌면 그 작은 어긋남이야말로 예술가를 예술가답게 만드는 용기일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서로 다른 세계를 가진 사람들이 한 공간에 모일 때, 그 차이를 지우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두고 이어보는 일. 나는 그것이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기획의 일이라고 생각한다. 각자의 세계가 서로를 침범하지 않으면서도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질 때, 그때 비로소 더 큰 작품이 만들어진다.


그래서 요즘의 나는, 작곡을 덜 하는 사람이 아니라 더 많은 세계를 다루는 사람이 된 것 같다. 그리고 그 세계들을 하나의 장면으로 엮어내는 일이 점점 더 재미있어진다. 지금의 방향이 꽤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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