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서 만나는 우리동네 문화유산] 돌에 새긴 신라의 미소를 가진 봉화 북지리 마애여래좌상

  • 황준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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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6-06-06 16:28  |  발행일 2026-06-06
폐사(廢寺)의 기억 위에 남은 국보… 사라진 대가람이 남긴 마지막 얼굴
암벽을 뚫고 나온 거대한 자비(慈悲), 신라 불교문화의 정수를 만나다
국보 봉화 북지리 마애여래좌상 전경. 자연 암벽을 파내 만든 감실(龕室) 안에 높이 4.3m의 거대한 불상을 새긴 작품으로, 통일신라 불교조각의 뛰어난 예술성을 보여준다. 황준오기자

국보 봉화 북지리 마애여래좌상 전경. 자연 암벽을 파내 만든 감실(龕室) 안에 높이 4.3m의 거대한 불상을 새긴 작품으로, 통일신라 불교조각의 뛰어난 예술성을 보여준다. 황준오기자

부처는 산을 떠나지 않았다.


경북 봉화군 물야면 북지리 지림사 경내. 소나무 사이로 난 오솔길을 따라 몇 걸음 옮기자 거대한 암벽이 시야를 가득 메운다. 그리고 그 바위 속에서 한 분의 부처가 조용히 모습을 드러낸다.


마치 산이 품고 있던 존재가 오랜 침묵 끝에 세상 밖으로 걸어 나온 듯한 모습이다.


국보 봉화 북지리 마애여래좌상.


처음 마주하는 순간 압도되는 것은 크기가 아니다. 높이 4.3m에 이르는 거대한 불상이지만, 방문객의 시선을 붙드는 것은 얼굴에 머금은 온화한 미소다. 세월의 풍화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은 표정에는 엄숙함보다 포근함이 먼저 깃들어 있다.


오늘날의 지림사는 한적한 산사에 불과하지만 이곳은 한때 경북 북부 불교문화의 중심지였다.


지역 향토사와 불교계 전승에 따르면 현재 지림사가 자리한 일대에는 과거 '한절'이라 불리던 대사찰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주변에는 수십 개의 암자와 사찰이 이어졌고 수백 명의 승려들이 수행에 정진했다고 한다.


지금은 숲과 논밭이 그 흔적을 덮고 있지만, 북지리 마애여래좌상은 이곳이 신라 불교문화의 중요한 중심지였음을 증언하는 살아있는 증거다.


이 불상이 특별한 이유는 조성 방식에 있다.


일반적인 마애불이 암벽 표면에 부조 형식으로 새겨진 것과 달리, 북지리 마애여래좌상은 자연 암벽을 깊숙이 파내 불상을 모시는 공간인 감실(龕室)을 만들고 그 안에 거대한 불신을 조각했다.


멀리서 바라보면 암벽 자체가 하나의 불전(佛殿)처럼 보인다.


가까이 다가설수록 입체감은 더욱 강해진다. 바위에서 막 걸어 나오는 듯한 불상의 모습은 신라인들의 뛰어난 공간감각과 조형능력을 보여준다.


넓고 풍만한 얼굴, 당당한 상체, 안정감 있는 자세는 통일 직후 신라 불교 조각의 특징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양 어깨를 감싼 법의는 굵은 주름을 이루며 무릎 아래까지 자연스럽게 흘러내린다. 화려한 장식보다는 균형과 품격에 집중한 표현 방식이다.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것은 불상 전체를 감싸고 있는 광배다.


봉화 북지리 마애여래좌상 하반신 부분. 굵고 힘 있는 법의(法衣) 주름과 안정감 있는 자세에서 통일신라 불상의 장중한 조형미를 확인할 수 있다. 황준오기자

봉화 북지리 마애여래좌상 하반신 부분. 굵고 힘 있는 법의(法衣) 주름과 안정감 있는 자세에서 통일신라 불상의 장중한 조형미를 확인할 수 있다. 황준오기자

머리광배와 몸광배를 구분해 표현했으며 곳곳에 작은 부처를 새겨넣었다. 중앙에는 연꽃 문양이 정교하게 새겨져 있다. 단단한 화강암 위에 새겨진 조각이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섬세하다.


세월은 완전한 모습을 허락하지 않았다.


원래의 손 부분은 오랜 풍화와 훼손으로 떨어져 나갔다. 그러나 남아있는 흔적만으로도 당시 모습을 짐작할 수 있다. 오른손은 가슴 앞으로 들고 왼손은 아래로 내리는 형식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학계는 이 마애불을 삼국통일 직후인 7세기 후반 작품으로 보고 있다.


이 시기는 신라가 한반도 통일 이후 새로운 국가질서를 정립하던 시기다. 불교는 국가 운영의 정신적 기반이었고, 대형 불상 조성은 통합된 국가의 이상과 신앙을 상징하는 사업이었다.


북지리 마애여래좌상은 영주 가흥동 마애여래삼존상과 함께 경북 북부지역 신라 불교 조각의 수준을 보여주는 대표작으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이 국보의 진짜 가치는 학술적 의미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마애불 앞에 서면 누구나 잠시 말을 멈추게 된다.


거대한 바위에서 뿜어져 나오는 장중함과 얼굴에 어린 미소가 묘한 대비를 이룬다. 위엄과 자비가 한 공간 안에 공존하는 것이다.


1천300년 전 이름 모를 석공들은 왜 이토록 거대한 부처를 바위에 새겼을까.


전쟁과 혼란을 극복하고 새로운 시대를 맞이한 사람들이 후세에 남기고 싶었던 것은 권력이 아니라 평안이었는지도 모른다. 차가운 화강암에 새겨진 미소는 그래서 더욱 따뜻하게 다가온다.


지림사 뒤편 숲에서는 오늘도 바람이 분다.


천년 넘게 같은 자리를 지켜온 부처는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오래 바라볼수록 그 침묵은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봉화 북지리 마애여래좌상은 단순한 국보가 아니다.


그것은 사라진 대가람의 기억이자, 신라가 남긴 가장 인간적인 얼굴이며, 천년의 세월을 건너 오늘 우리에게 도착한 오래된 위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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