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역사’ 경북여고, 일제강점기에 피운 꽃…격변과 함께하다

  • 김종윤
  • |
  • 입력 2026-04-13 14:05  |  발행일 2026-04-13
올해로 100주년 맞은 경북여고, 1926년 4월 개교
초기 신입생 138명, 일본 국어 시간이 더 많은 교육
지역 각종 사건에 학생들 참여, 경찰에 검거되기도
자율형 공립고 기반, 시설 개선으로 교육·시설 갖춰
문웅열 교장 “새로운 100년 역사 쓸 준비 하겠다”
1927년 경북여고 본관 신축 기념식 당시 모습. 약 100년 후인 2026년 학교 본관. <경북여고 제공>

1927년 경북여고 본관 신축 기념식 당시 모습. 약 100년 후인 2026년 학교 본관. <경북여고 제공>

경북여고 교표. 청색 바탕의 흰선, 백합꽃으로 구성돼 꺠끗함·희망·정직함·지혜·의지를 상징한다.

경북여고 교표. 청색 바탕의 흰선, 백합꽃으로 구성돼 꺠끗함·희망·정직함·지혜·의지를 상징한다.

경북여고가 올해로 100번째 봄을 맞이했다. 일제강점기 시절인 1926년 4월 15일 대구공립여자고등보통학교로 개교했다. 일제의 탄압과 광복, 6·25전쟁이라는 대혼란 속에서도 지역 소녀들의 교육에 대한 열정은 누구도 꺾지 못했다. 4만 명의 졸업생들은 정치·경제·문화 등 여러 분야에서 맹활약 중이다. 경북여고는 지난 10일 전 교생과 '개교 100주년 기념식'을 열고, 걸어온 역사와 함께 새로운 미래에 대한 포부를 알렸다.


김정숙 경북여고총동창회장은 "경북여고는 100년을 쉼 없이 달려왔다. 학생들이 어떤 생각을 갖고 함께 하느냐에 따라 학교 방향과 미래도 바뀐다. 총동창회는 언제든 학교를 뒷받침하고 같이 나아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격변 속에 피어난 학교


1920년대 대구에는 조선인 여성을 위한 교육기관이 많지 않았다. 상급학교로 진학이 가능한 곳은 극소수였다. 그 외에는 모두 일본인을 위한 학교였다. 지역 학부모들이 상급학교로 진학할 수 있는 여학교 설립의 필요성을 거론하면서 설립이 추진됐다. 당시 학교 설립 조건으로 5만 원의 민간 기부금이 필요했다. 대구·경산·영양 등 지역 유지들과 지역민들의 지원으로 재원을 마련했다.


경북여고는 옛 대구여자보통학교(중구 장관동)에서 시작했다. 이곳에서 개교식과 입학식을 치렀다. 1년 후인 1927년 현 학교 자리로 이전해 학교 건물을 신축했다. 개교 당시 입학생은 총 138명으로, 1학년 100명(2학급), 2학년 38명이었다. 열악한 교육 환경이었지만, 조선인이라는 긍지를 지켜내기 위해 교복은 흰색 저고리에 검은 치마로 정했다. '조선 여자다워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당시 수업은 일본어 교육 중심의 '국어' 과목이 수업 총시수의 40%를 차지해 주당 7시간이 배정됐다. 반면 조선어의 국어는 주당 2~3시간으로 명맥만 유지했다. 개교 첫 해에는 학교 전체 직원 10명 중 교직원이 8명이었는데 1명만이 한국인일 뿐, 교장 등 나머지는 모두 일본인이었다. 1935년에는 총 21명으로 두 배 늘었고, 한국인 교직원이 7명으로 증가했다. 초기 4년제로 운영되던 경북여고는 1929년 3월22일 제1회 졸업생 34명을 배출했다. 이후 해마다 70~100명의 졸업생이 나왔다.


①1934년 교복을 입은 경북여고 학생들과 초대 교장(오른쪽)이 함께 사진을 찍고 있다. ②1940년 학생들이 교문 앞에 모여 있는 모습. ③1958년 체육복을 입은 학생들과 교사가 체육수업에 참여하고 있다. ④1953년 수학여행을 떠난 학생들이 경주 불국사 앞에서 찍은 단체사진. <경북여고 제공>

①1934년 교복을 입은 경북여고 학생들과 초대 교장(오른쪽)이 함께 사진을 찍고 있다. ②1940년 학생들이 교문 앞에 모여 있는 모습. ③1958년 체육복을 입은 학생들과 교사가 체육수업에 참여하고 있다. ④1953년 수학여행을 떠난 학생들이 경주 불국사 앞에서 찍은 단체사진. <경북여고 제공>

◆선배들의 발자취


어린 10대 소녀들은 혼란한 국내 정세 속에서도 독립과 광복에 대한 열망을 포기하지 않았다. 1928년 일본인 역사 교사에 대항해 수업을 거부했다. 1930년엔 광주학생항일운동의 통탄함을 표현하려다 학교에 제재를 당했다. 1931년 12월 대구 주둔 80연대 정문과 대구역 격문 살포 당시에도 경북여고 학생들이 참여했다. 이순이, 김수봉, 백순조 등이 대표적인 출신 학생이었는데 시위 주도와 맹약서를 쓴 혐의로 대구 경찰에 검거되기도 했다.


1930년대 후반이 되면서 일본의 교육 탄압은 더 거세졌다. 1938년 조선교육령 개정으로 교명도 일본 학교처럼 경북공립고등여학교로 바뀌는 슬픔을 겪었다. 광복 이후 교명은 여러 번 바뀌었다. 1946년 9월 학제 변경으로 경북여자중학교로 바뀌었고, 2년 후인 1951년 다시 경북여자고등학교로 변경됐다. 1952년 대구여자고등학교에서 1953년 경북여고로 안착했다.


6·25전쟁의 상흔이 아물기도 전인 1960년 당시 정권의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시위가 곳곳에서 일어났다. 그해 2월28일 경북여고 학생 200여 명이 시위를 벌이다가 경찰에 해산됐다.


100년의 역사를 가진 명문고로서, 걸출한 졸업생도 즐비하다. 현재 이인선·조은희·추미애 국회의원과 박윤경 대구상공회의소 회장 등이 활동 중이다. 권영자·서정숙·송영선·윤종필·한무경 전 의원 등 정계 인물이 다수다. 고(故) 노태우 전 대통령 부인 김옥숙씨도 빼놓을 수 없는 동문이다. 주양자 전 보건복지부 장관, 미스코리아 출신 배우 손태영, 개그우먼 김영희 등도 모두 경북여고 출신이다.


석귀화 경북여고 역사관 관장은 "시대적인 상황은 다르지만, 선배들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면 각자의 삶이 있고, 배울 점이 있다"며 "학생들이 이를 토대로 본인 역량을 높이고, 진로 선택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한다"고 전했다.


경북여고 100주년에 입학한 경북여고 신입생들이 입학장을 들고 문웅열 교장과 기념촬영하고 있다. <경북여고 제공>

경북여고 100주년에 입학한 경북여고 신입생들이 입학장을 들고 문웅열 교장과 기념촬영하고 있다. <경북여고 제공>

◆교육·시설 모두 갖췄다


경북여고에는 지난 1일 기준 총 705명이 재학 중이다. 2026학년도 100회 신입생 265명(9학급)이 입학했다. 전체 졸업생은 지난 2월 제97회 248명을 포함해 총 3만9천335명이다.


현재의 경북여고는 한마디로 '공부할 환경이 갖춰진 학교'라고 할 수 있다. 2009년 11월 자율형 공립고로 지정되면서 학교 경쟁력은 강화됐다. 2024년에는 자율형 공립고 2.0 학교로도 선정됐다. 자율형 공립고는 공립고를 대상으로 학교나 교육과정을 자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 심각한 학령인구 감소 문제는 경북여고를 비껴갔다. 학교 주변 재개발로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조성되면서 학급 수는 꾸준히 증가할 것으로 학교 측은 전망했다.


최신 교육 시설도 구비하고 있다. 2024년 2월 그린스마트스쿨사업을 통해 학교 본관 건물이 전면 리모델링됐다. 지난해 9월 그간 기숙사로 사용하던 백합학사 3~4층은 대구시교육청 지원 아래 100주년 기념관으로 재탄생했다. 수업·연수·동아리 활동·발표 공간 등 교육활동뿐 아니라 교육청 연수 장소로도 활용하고 있다. 교내에는 자연 친화적 정원형 '학교숲'이 있다. 2024년 대구 중구청과 업무협약으로 기존 녹지를 재정비했다. 작년 산림청 선정 학교숲 조성 분야 최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오는 15일 개교기념일에 맞춰 '경북여고 역사관'도 재개관한다. 2012년 개관한 이 역사관은 최근 리모델링을 마쳤다. 학교의 주요 역사가 잘 보존돼 있다.


최신 시설 속에서도 경북여고의 100년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운동장 옆 나지막한 1층 매점 건물은 6·25 전쟁 당시 참전한 에티오피아 군인들의 막사로 사용했던 곳이다. 현재 그대로 보존돼 있다.


후배를 위한 경북여고동문장학회와 경북여고재경장학회의 지원도 매년 이어지고 있다. 동창회는 매년 3천200만원 규모의 동문장학금을 기탁하고 있다. 재경장학회는 학년별 성적 및 담임 추천으로 30여명에게 장학금을 준다. 올해는 개교 100주년을 기념해 학생 100명에게 장학금 1억 원(1인당 100만 원)을 지원한다. 재직 교사들에겐 교사 연구비 1천만 원을 지원한다.


문웅열 경북여고 교장은 "학교에서 도전은 두려움을 마주하는 용기이고, 실패는 배움을 더하는 과정, 경험은 내일을 향한 디딤돌이 된다"며 "경북여고가 세상을 향해 꿈꾸었던 사람들의 자랑이 될 수 있도록, 새로운 100년의 역사를 써내려갈 준비를 하겠다"고 강조했다.


운동장 옆 매점 건물은 6·25 전쟁 당시 참전한 에티오피아 군인들의 막사로 사용됐다. 김종윤기자

운동장 옆 매점 건물은 6·25 전쟁 당시 참전한 에티오피아 군인들의 막사로 사용됐다. 김종윤기자


기자 이미지

김종윤

기사 전체보기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사회인기뉴스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

영남일보TV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