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두류공원에 위치한 2·28민주운동 기념탑. 김현목 기자
대한민국 민주화운동의 효시인 '대구 2·28민주운동'을 헌법 전문에 명시해야 한다는 당위론이 다시 제기되고 있다. 최근 개헌 논의가 본격화하면서 '5·18민주화운동' '부마민주항쟁'의 명시가 논의되고 있지만, 대구 2·28은 거론조차 되지 않고 있어서다. 이는 국가가 어떤 역사를 기억할 것인가라는 관점에서 곱씹어봐야 할 대목으로 보인다. 대구2·28은 1960년 2월28일 고교생들이 중심이 돼 자유당 독재정권의 부당한 선거 개입에 항의하며 일어났다. 10여년 전 국가기념일 지정과 헌법 전문 수록을 동시에 추진했지만, 2018년 국가기념일로만 지정된 상태다.
14일 영남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헌법 전문이 국가 정체성과 가치의 근원을 규정하는 만큼 대구2·28의 의미도 명확하게 해야 한다는 의견이 적잖다. 곽대훈 2·28민주운동기념사업회 회장은 "2·28도 당연히 헌법 전문에 포함돼야 한다"며 "대한민국 최초 민주화운동인데, 민주화를 이야기하면서 이를 빼고 가는 것은 설득력이 많이 떨어진다"고 강조했다.
다만 현재로선 적극적인 행동보다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단계다. 헌법 개정이 공론화 단계까지 이르는 시점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기념사업회 측은 지금은 논의가 일방적으로 진행되는 측면이 있어 참여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앞서 2020년 5월 대한민국시도지사협의회는 대구2·28민주운동의 정신을 헌법 전문에 포함시키기로 의결한 바 있다.
아울러 사회적 합의의 필요성도 강조했다. 곽 회장은 "특정 민주화운동을 헌법 전문에 포함하는 것은 국민적 동의가 필요한 사안"이라며 "논의가 시작되면 다양한 의견이 나올 수밖에 없다. 그 과정에서 2·28의 역사적 위상도 함께 평가받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헌법 전문 개정 논의가 구체화하면 대구시민의 입장을 분명히 전달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헌법 개정안이 다음 달 초까지 국회에서 의결되면 오는 6·3지방선거 때 국민투표가 가능하다.
헌법 전문 수록 논쟁 다시 불붙나
대구 2·28민주운동은 1960년 2월 28일, 자유당 정권의 선거 개입에 반발한 고등학생들이 자발적으로 거리로 나서며 시작됐다. 이후 마산 3·15 의거와 4·19 혁명으로 이어지는 민주화 운동의 도화선이 됐다. 전문가들은 그 역사적 가치는 충분하다고 확신하고 있다.
◆대구 2·28은 지역에만 국한된 게 아냐
학계에선 대구 2·28을 단순한 지역 사건이나 4·19 혁명의 전 단계로만 보지 않는다.
대구가톨릭대 변영학 교수(정치외교학과)는 "4·19는 한국 시민사회가 독재에 저항한 사건이며 그 시발점은 2·28"이라며 "국가 형성 이후 처음으로 시민사회가 부당한 권력에 맞서 분출한 사례"라고 정의했다. 우리나라의 첫 민주화운동으로 의미를 부여한 것.
변 교수는 특히 한국 현대사 정치 변화를 하나의 흐름으로 설명했다. 그는 "권위주의 정부든, 민주정부든 정당성을 잃을 때 시민사회는 이를 참지 못하고 도덕적 정당성을 요구하는 방식으로 분출해 왔다"며 "이런 흐름이 반복되며 정치 변화를 견인하는 패턴을 형성해 왔다"고 밝혔다. 또 "이러한 사이클의 출발점이 2·28이라는 점에서 헌법에 포함되는 것을 반대할 명분은 없다"고 거듭 강조했다.
2·28 위상과 관련, 다른 지역 민주화운동보다 드러난 피해나 사건 규모 측면에서 정치적 가시성이 상대적으로 크지 않을 수는 있다는 점은 인정했다. 하지만 그는 "국가 형성 이후 최초 민주화운동이라는 선도성은 분명한 의미를 갖는다"고 주장했다.
2022년 3월 7일 당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가 2·28민주운동 기념탑을 참배하고 있는 모습.<영남일보DB>
◆뿌리 없는 나무는 없어
오랜 기간 대구 2·28을 연구, 기념해 온 인사들도 비슷한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박영석 정치학박사(전 2·28민주운동기념사업회 회장)는 "민주공화국을 지향하는 대한민국 헌법 전문엔 국민들이 지키고 이어가야 할 민주적 가치가 담겨야 한다"며 "민주화운동 효시이자, 4·19 도화선이 된 2·28을 제외한 채 민주주의를 말하는 것은 뿌리 없는 나무와 같다"고 했다.
2·28 정신을 헌법 전문에 수록해야 한다는 요구는 10여 년 전부터 꾸준히 이어져 왔다. 대구시의회가 건의문을 채택했고, 관련 단체들도 국회와 정치권에 지속적으로 요구해왔다.
헌법 전문에 특정 사건을 명시하는 건 단순한 기록 차원이 아니라 국가가 그 역사적 의미를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기억하는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는 "대한민국 최초 민주화운동이라는 점에서 2·28은 충분한 근거와 정당성을 갖고 있다"고 당위성을 재차 역설했다.
2·28 자유광장 표지석.<대구시 제공>
◆형평성, 헌법 전문 상징성에 대한 신중론
물론 헌법 전문 수록을 둘러싼 신중론도 제기된다.
경북대 채장수 교수(정치외교학과)는 대구 2·28이 정부 수립 이후 최초 민주화운동이라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라고 단언했다. 다만 헌법 전문에 명시하는 문제는 별개 사안일 수 있다며 신중한 입장을 취했다.
채 교수는 "이미 헌법 전문에 4·19 혁명이라는 큰 흐름이 반영돼 있다"며 "개별 사건을 추가하기 시작할 경우 헌법 전문이 지나치게 길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다른 민주화운동과 형평성 문제가 함께 제기될 수 있는 점도 걱정했다.
헌법 전문에 특정 사건을 담기 위해서는 상당한 수준의 국민적 합의가 전제돼야 한다는 점도 걸림돌이다. 이에 따라 대구 2·28 의미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공감대가 더 축적되는 과정이 필요할 것으로 보고 있다.
채 교수는 "무리하게 추진하면 다른 민주화운동과 비교나 평가 문제로 불필요한 갈등이 발생할 수 있다"며 "이 과정에서 2·28 의미가 왜곡되거나 훼손될 수 있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고 전했다.
"헌법에 2·28 반드시 포함돼야… 산업화·민주화 함께 살려야 대구가 산다"
권영진 국회의원(국민의힘·전 대구시장)
권영진 국회의원(국민의힘 달서병·전 대구시장)은 "5·18과 3·15만 넣는 건 지역 편중"이라며 "2·28은 민주화 출발점"이라고 강조했다.
권 의원은 지난 13일 영남일보와의 통화에서 헌법 전문에 민주화운동을 반영하는 논의와 관련해 자신의 생각을 가감 없이 표출했다. 대구 2·28의 헌법 전문 포함의 필요성을 강하게 어필한 것이다. 5·18과 3·15만 거론하는 현재 논의 움직임에 대해 "민주화의 흐름을 온전히 반영하지 못한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권 의원은 "이미 국회의장을 직접 만나 헌법 개정이 이뤄진다면 2·28도 반드시 함께 포함돼야 한다고 요청했다"고 밝혔다. 그는 "2·28은 3·15로 이어지는 민주화운동의 출발점"이라며 "대한민국 민주주의 형성 과정에서 빠질 수 없는 역사적 사건"이라고 못박았다.
대구시장 재임 시절도 언급했다. 권 의원은 "당시 시민 100만 명 서명운동과 타 지역 협력을 통해 2017년 국가기념일 지정을 이끌어냈다"며 "그 역사적 의미에 대한 인식은 누구보다 잘 안다"고 자부했다. 하지만 현재 관련 사업과 메시지가 충분히 이어지지 않고 있다는 아쉬움도 표했다. 그는 "2·28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됐음에도 국민적 관심은 여전히 부족하다"며 "대구시가 나서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기념사업도 확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구 정체성과 관련해서도 2·28이 중요한 상징성을 갖고 있다고 했다. 대구가 '산업화'의 중심이면서 동시에 '민주화'의 중심이기도 해서다. 두 축이 함께 평가받아야 대한민국 발전 중심 도시로서 의미를 가질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보수와 민주주의를 분리해서 생각하는 것도 잘못된 인식이라는 견해다. 자유민주주의 역시 보수가 지켜온 핵심 가치로 민주화운동도 함께 계승해야 한다는 의미다.
산업화만 강조하는 것은 반쪽짜리 정체성에 불과하다는 의견도 피력했다. 새마을운동으로 상징되는 산업화, 2·28로 대표되는 민주화가 같이 인정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경제적으로 산업화, 정치적으로 민주화라는 대한민국 발전 두 축 모두 대구경북이 그 중심지 역할을 해왔다"며 "이 두 기둥을 함께 살려낼 때 비로소 대구가 전국적 모델 도시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고 했다.
다만 헌법 개정 논의 자체에 대해선 말을 아꼈다. 현재 소속정당인 국민의힘이 개헌 논의에 신중한 입장이고, 6·3지방선거와 동시에 개헌을 추진하는 데 반대하고 있어서다. 그럼에도 권 의원은 "향후 개헌 논의가 본격화될 경우 2·28 정신을 반드시 반영하도록 지속적으로 요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대구 2·38민주운동은
1960년 2월 28일 경북고·대구고·경북대사대부고 등 대구 지역 8개 고교 학생 1천200명이 등교 지시를 거부하고, 정부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면서 시작된 민주화운동이다. 당시 야당 부통령 후보였던 장면 박사가 대구에서 선거 유세를 하기로 돼 있었지만 정부는 대구 지역 학생들이 유세장에 몰릴 것을 우려해 일요일에도 등교하라는 지침을 내렸었다.
김현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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