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문을 연 카페 '히어히어 홈앤스튜디오'(왼쪽) 외관. 근대 건물을 개조한 건물로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조현희기자 hyunhee@yeongnam.com
한때 쇠락했던 대구 원도심 '북성로'에 다시 활기가 돈다. 최근 몇 년 새 새 상가가 들어서고 도시재생 등의 사업이 이뤄지며 젊은 층도 찾는 '핫플레이스'로 자리 잡고 있다.
북성로는 대구의 역사·산업·문화를 간직한 자산이다. 옛 대구읍성 북쪽에 있는 성벽 길을 칭하는 거리로, 1907년 조성된 대구 최초의 신작로다. 경부선 철도 개통과 대구역 건립 이후 상업 중심지로 발달했다. 일제의 잔재 같은 거리처럼 보이지만, 항일 애국지사 150명을 배출한 우현서루(友弦書樓)가 있어서 저항의 역사가 공존하는 곳이기도 하다. 한국전쟁 때는 피난온 문인과 예술가가 활동하는 근거지로 기능했고, 전쟁 후에는 철물과 기계를 취급하는 공구 상점들이 하나둘 모여 공구거리를 형성했다.
그 어떤 원도심과 마찬가지로 도심 공동화 현상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IMF 금융위기 이후 상권이 분산하며 호황은 옛말이 됐다. 활기는 잃고 공구만 가득한 거리로 쇠퇴하게 된 것이다. 그랬던 북성로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걸까.
최근 북성로 일대에 오래된 건물을 개조한 음식점, 카페 등이 들어서고 있다. 조현희기자 hyunhee@yeongnam.com
◆도시재생·젊은 상인 유입으로 활성화…주말엔 '만석'
대구역 맞은편 북성로 공구골목을 알리는 표지. 최근 젊은 층이 많이 찾으며 상권이 활성화되고 있다. hyunhee@yeongnam.com
지난 11일 토요일, 대구역 앞 공구골목부터 대구문학관 인근 거리까지 도보로 이동했다. 공구골목은 아직 공구 상점이 상권의 주를 이뤘다. 하지만 문을 연 지 얼마 안 된 듯한 음식점, 카페, 옷가게도 눈에 띄었다. 옛 상점과 요즘 상점이 혼재돼 있고, 낡은 적산가옥과 근대식 건물이 많아 독특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독립서점, 갤러리 등 문화 공간도 이미 들어서 있었다.
공구골목에서 대구근대역사관 방면으로 이동하는 골목은 발 디딜틈 없이 붐볐다. 거리를 지키던 장년층은 물론이고, 20~30대 방문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곳곳에서 사진을 찍거나 가게를 둘러보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카페는 대부분이 만석이었다. 대기 예약을 해야만 이용할 수 있는 곳도 있었다. 이날 거리에서 만난 성예진(25)씨는 "최근 인스타그램에 북성로 카페를 추천하는 게시물이 자주 뜨길래 찾게 됐다"며 "동성로와 교동은 사람이 많을 것 같아 비교적 한산한 곳을 찾으려는 생각도 있었는데, 사람이 너무 많아서 놀랐다"고 말했다.
북성로에 위치한 복합문화공간 '오픈대구'. 대구시가 건물을 매입해 팝업 스토어, 전시 등을 열고 있다. 조현희기자 hyunhee@yeongnam.com
북성로가 붐비기 시작한 건 불과 1~2년 전. 먼저 대구시와 중구에서 골목을 활성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지난 13일 대구 중구에 따르면 2019년부터 이곳 일대에 도시재생사업이 이뤄졌다. 주택·상가·가로 및 시설물 등 노후 환경 정비, 역사·문화 자원을 활용한 관광 콘텐츠 개발, 청년 창업 지원 등이 단계적으로 추진됐다. 북성로의 정체성을 보존하면서도 새로운 기능을 덧입히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대구시에서도 무영당, 오픈 대구 등 문화적 가치가 높은 건물을 매입해 리노베이션하는 방식으로 복합문화공간으로 조성하는 사업을 진행했다. 무영당은 대구 최초 민족자본 백화점이다. 철거 위기에 놓인 건물을 2020년 시가 매입하고 한국부동산원이 후원해 복합문화백화점으로 조성했다. 4개 층으로 구성된 건물은 층마다 비건 카페, 잡화점, 전시 공간 등으로 활용되고 있다. 오픈 대구의 경우 대구 최초의 여성 고등기술교육기관과 경북문인협회의 사무실로 사용된 건물이 팝업 스토어, 공연, 커뮤니티 활동 등이 가능한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무영당 2층 편집숍과 팝업 스토어. 대구 브랜드들의 다양한 잡화 상품이 판매되고 있다. 조현희기자 hyunhee@yeongnam.com
여기에 새로운 상권을 찾던 젊은 자영업자들이 눈을 돌렸다. 대구역 앞에 있으면서도, 동성로·교동 등 기존 상권에 비해 임대료 부담이 적어 하나둘 자리잡기 시작했다. 오래된 건물에 젊은 상인들이 들어서면서 거리는 감각적인 공간으로 바뀌고 있다. 북성로에서 빈티지숍을 운영하고 있는 권상석 파지라지 대표는 "지난해 5월 개업했는데, 동성로에서 인근 지역으로 유동인구가 이동하는 흐름이 보였고, 북성로 역시 점차 뜰 것이라는 판단에 이곳을 선택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개업 당시에만 해도 카페만 한두 개 정도 있고 옷가게는 거의 없었다. 그런데 이후 7곳 정도가 추가로 들어왔다"고 전했다.
일제강점기 최대 번화가였던 북성로 일대에는 근대식 건물과 오래된 적산가옥이 지금도 남아 있다. 사진은 근대식 건물을 재활용한 '히어히어 홈앤스튜디오'. 조현희기자 hyunhee@yeongnam.com
◆외지서도 찾지만 지속성은 '글쎄'…젠트리피케이션 과제
특히 북성로는 스토리텔링 자원이 풍부해 요즘 소비·관광 트렌드와도 잘 맞아떨어진다는 분석이 나온다. 조선시대 영남권을 관할하던 경상감영과 옛 대구읍성 인근에 위치해 있어 역사성을 갖추고 있다. 일제강점기에는 최고 번화가였고, 전후에는 전국의 예술가들이 모여들어 자연스레 '피란 문단' '전선문학'이 형성됐다. 아직도 구상·이중섭·유치환 등 전후 예술가들이 자주 찾던 다방, 음악 감상실 등의 공간이 남아 있다.
공구골목에서 칵테일바 '노르웨이의 숲'과 카페 '미도리문방구'를 운영하는 전우태 대표는 "요즘 소비자들을 보면 특별한 경험을 소비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북성로에서도 명확한 색깔을 지닌 가게들은 외지에서 찾아올 정도로 인기가 높다"고 했다. 또 "대구역에서 서문시장으로 가는 방면에 위치하다 보니 관광객들에게 접근성이 좋고, 인근에 아파트가 들어서 주민들도 산책 겸 자주 찾는다"고 말했다.
북성로에 위치한 카페 '미도리문방구' 내부. 2층 칵테일바 '노르웨이의 숲'에서 함께 운영하고 있다. hyunhee@yeongnam.com
이곳에서 만난 복수의 상인들은 북성로 상권이 앞으로 더욱 활성화될 것으로 내다봤다. 평일에는 한산하지만 유동인구가 꾸준히 늘고 있고, SNS를 중심으로 입소문을 타면서 외지인 유입도 계속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또 인근 동성로와 교동 상권이 익숙해진 젊은 층이 새로운 콘텐츠를 찾아 북성로로 발길을 옮길 거란 기대가 나온다. 대구역 앞에 위치한 데다 지난해 대경선이 개통되면서 접근성이 한층 개선된 점도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다만 다른 상권의 사례처럼 '젠트리피케이션'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도심 인근의 낙후지역이 활성화되면서 외부인·자본 유입, 임대료 상승 등으로 원주민이 밀려나는 현상이다. 대구 도심의 상권을 보면, 방천시장·삼덕동·교동 등 동성로 인근 원도심이 반짝 떴다가 얼마 안 가 쇠퇴하는 흐름을 보인다. 젊은 상인들이 들어와 가게를 열고 거리가 활성화되면, 임대료 상승 등으로 이윤을 남기고 다른 상권으로 이동하는 추세다. 북성로는 이미 한 차례 쇠퇴를 겪은 이력이 있기 때문에 더욱 우려가 모인다.
대구역 맞은 편 북성로 공구골목. 기존 공구 상가와 음식점, 카페 등 새 상점이 혼재돼 있다. 조현희기자 hyunhee@yeongnam.com
체류형 관광을 유도할 수 있는 인프라도 부족한 상황이다. 경상감영이 있는 지역이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지만, 외지인들이 며칠간 머물며 즐길 수 있는 콘텐츠는 충분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권응상 대구대 교수(문화예술학부)는 "대구는 아주 괜찮은 고급 호텔이나 지역의 특색을 살린 로컬 숙소도 적고 관광도 일제강점기 유산으로 버티고 있는 셈인데, 이 같은 상황이 계속될 경우 젠트리피케이션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며 "지방정부 차원에서 문화적 다양성을 엿볼 수 있는 인프라를 마련하는 게 급선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일본의 사례를 언급했다. 권 교수는 "임대료 규제라는 방식도 있지만 실질적으로 강제성이 없기 때문에 효과가 크지 않다. 일본을 보면 상인들이 모여 공동체를 형성하고, 주변 환경 개선, 임대료 등의 문제를 함께 논의하는 지역이 있다. 이 같은 방식도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조현희
문화부 조현희 기자입니다.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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