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봉투법 한달] 교섭보다는 아직도 ‘절차 공방’…대구경북은 ‘혼란스러워’

  • 구경모(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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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6-04-20 22:04  |  발행일 2026-04-20
개정안 이후 대구경북 74개 하청노조 교섭 요구
전문가, 노동계 “원청의 ‘전략적 지연’ 관측”
성사는 ‘1곳’, 사용자성 인정 범위·교섭단위 ‘충돌’
전문가들 “제도 안착보다 절차 다툼 먼저 관측되는 모양”
지난해 5월 1일 대구 국채보상로에서 민주노종 주최로 열린 세계노동절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노조법 개정안 국회본회의 통과를 요구하고 있다. 영남일보DB

지난해 5월 1일 대구 국채보상로에서 민주노종 주최로 열린 세계노동절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노조법 개정안 국회본회의 통과를 요구하고 있다. 영남일보DB

하도급사 노동자의 원도급사 교섭권 보장을 골자로 한 노란봉투법(노조법 2·3조 개정안·3월10일)을 두고 대구지역 산업현장 내 혼선이 가중되고 있다. 시행 한 달여 만에 교섭 요구는 늘고 있지만, 정작 노·사 간 교섭 테이블을 꾸리는 데 어려움을 겪으면서다. 원도급사의 사용자성 인정 범위(근로조건에 실질적·구체적 지배·결정 지위)와 교섭 참여 구조(교섭 창구 단일화 및 세분화)를 둘러싼 이해 충돌이 혼란을 부추기는 원인으로 지목된다.


노란봉투법 (노조법 2·3조 개정안) 시행현황과 쟁점 표.<인포그래픽=생성형 AI>

노란봉투법 (노조법 2·3조 개정안) 시행현황과 쟁점 표.<인포그래픽=생성형 AI>

◆교섭 요구 쏟아졌지만…'사용자 확정'부터가 싸움


20일 영남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달 10일 노란봉투법 시행 이후, 지난 19일까지 대구경북에선 74개 하도급 노조가 원청 22곳에 교섭을 요구했다. 그러나 실제 상견례까지 이어진 사례는 지역 전체를 통틀어 포항에 있는 한동대 한 곳뿐이다. 대구에선 현재까지 교섭 요구 사례가 한 건도 없었다. 같은 기간 전국에선 원도급사 372곳을 상대로 하도급 노조·지부·지회 1천11곳이 교섭을 요구했다.


최근 교섭 요구가 축적되면서 노동위원회 접수 사건도 덩달아 느는 추세다. 취재 결과, 지난달 10일부터 지난 17일까지 경북지방노동위원회에 접수된 대구경북지역 개정 노조법 관련 사건은 총 16건이다. 이 중 7건이 취하됐고, 9건이 아직 진행 또는 판정 단계에 있다. 전국에선 같은 기간 총 294건이 지역별 노동위에 접수된 것으로 파악됐다.


이는 노란봉투법에 대한 사용자성 인정 범위와 교섭 단위 분리 문제가 정리되지 않은 게 영향을 미쳤다. 하도급사가 하도급 노동자의 근로조건에 실질적 영향력을 가질 경우 교섭 책임을 지도록 했지만, 실제 현장에선 그 범위를 어디까지 볼 것인지를 두고 해석이 엇갈리기 때문이다. 특히 원도급사 교섭에 대한 사용자성이 인정되더라도 같은 원청 아래 복수 노조와 하도급사가 얽힌 사업장에선 교섭 창구를 하나로 묶을지, 직종·업체·노조별로 나눌지도 또 다른 장벽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 같은 쟁점은 현장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지난 16일 경북지노위는 한국수력원자력이 낸 자회사·협력사 노조 교섭 단위 분리 신청을 기각했다. 한수원 측은 노조별로 교섭 창구를 나눠 달라고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최근 포스코 사례도 절차와 교섭 사이의 간극을 보여줬다. 지난 8일 경북지노위는 포스코에 대해 하도급 노동자 관련 사용자성을 인정하고, 금속노련·금속노조·플랜트건설노조를 각각 별도 교섭 단위로 분리하라고 결정했다. 원도급사의 교섭 책임은 인정됐지만, 실제 교섭까지 다시 교섭 창구를 정리하는 절차를 거치게 됐다.


지역 내 노사 분쟁을 조정·판단하는 경북지노위 측은 노사 모두 제도를 다소 과하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해석했다. 주태식 경북지노위 위원장은 "노동계는 너무 과도한 기대를 하는 것 같고, 사측은 너무 걱정하는 것 같다. 사실 그렇게 복잡한 법이 아니다"라며 "이 법은 우선 대화의 테이블에 앉으라는 절차적 의무를 부과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용자성이 인정되면 개입의 범위와 방식을 대화로 정하면 된다. 개입 안 하기로 합의하는 것도 협의이고, 일정 부분만 책임지겠다고 정하는 것도 협의다"며 "사용자성은 전반적으로 인정되는 게 일반적 입장이지만, 교섭 단위 분리는 동일성과 효율성 문제가 있어 엄격하게 판단하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 개정안이 안정적으로 현장에 정착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난해 민주노총 노조법 2·3조 개정안 통과 촉구 전국동시다발 기자회견에서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노조법 2·3조 개정안 통과를 촉구하고 있는 모습. 영남일보DB

지난해 '민주노총 노조법 2·3조 개정안 통과 촉구 전국동시다발 기자회견'에서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노조법 2·3조 개정안 통과를 촉구하고 있는 모습. 영남일보DB

◆전략적 절차 지연 VS 안전관리 표방한 개인 권리 요구


대구지역 노동계와 경영계는 노란봉투법 시행에 따른 교섭 테이블 마련이 더딘 이유에 대해 서로 엇갈린 입장을 내놨다. 노동계는 사측의 '전략적 절차 지연'을, 경영계는 노조 측의 '안전관리를 표방한 개인 권리 요구'를 문제점으로 제기했다.


임선영 민주노총 대구본부 조직국장은 "전국적으로 원도급사 수백 곳을 상대로 교섭을 요구했지만, 교섭 테이블이 마련된 곳은 30곳 안팎에 그친다. 이마저도 자연스럽게 교섭이 이뤄진 게 아니라 지노위 판정에 따라 어쩔 수 없이 한 것"이라며 "대부분 사용자 측이 교섭 1호가 되길 꺼리며 절차를 미루고 있다. 첫 시행인 만큼 다른 사업장 판단을 지켜보며 섣불리 선례를 만들지 않으려는 기류가 강하다"고 주장했다.


반면 정덕화 대구경영자총협회 상무는 "노조가 산업안전보건법상 원도급의 안전관리 의무를 근거로 사용자성을 주장하면서, 실제론 임금이나 성과금 요구를 뒤에 감춰두고 들어오는 경우가 허다하다"며 "협상이 타결되지 않으면 합법적 파업이 되는데 원도급사 입장에서는 답이 없는 구조다. 노란봉투법을 악용한 일부 노조가 현장 내 불확실성을 더 키우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고려대 김성희 교수(노동문제연구소)는 노란봉투법 시행에 따른 노사 갈등이 끊이지 않는 이유로 불확실한 법적 '가이드라인'을 꼽았다. 그는 "노사 간 교섭의 문이 열렸다고 해서 곧바로 모든 사안이 교섭 대상으로 인정되거나, 교섭 테이블에 빠르게 앉게 되는 구조는 아니다"며 "법 취지가 현장에서 곧바로 일률적으로 작동한다기보다, 개별 판단이 쌓이면서 적용 범위가 정리되는 과정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노위 판단과 재심, 소송 등 절차를 거치면 자연스레 갈등이 증폭될 수밖에 없어, 노사 모두 단계별 문제를 함께 정리하는 행동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현재 사용자성과 교섭 단위 문제가 정리되더라도 이후 갈등 전선이 더 넓어질 수 있다고 전망도 흘러나온다. 지금은 산업안전이나 복리후생처럼 비교적 명확한 사안을 중심으로 교섭 가능성이 논의되고 있지만, 향후 임금·수당·외주화·경영권 등 교섭 의제 범위를 둘러싼 갈등이 본격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고려대 박지순 교수(법학전문대학원)는 "사용자성과 교섭 단위 분리 문제가 정리되면 앞으로 임금과 경영권 관련 사항으로 교섭 내용이 확대될 것"이라며 "지금까지는 지노위에서 임금 요구에 대한 판단을 유보한 경우가 많았지만, 사안이 커질수록 이를 뒤집는 사례가 발생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어 "교섭 내용이 방대해질수록 오히려 하도급 노조들 사이 갈등을 키우는 꼴이 될 수 있어 조심스러운 접근이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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