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출근하지 않는 사람의 출근

  • 김보미 작곡가·예술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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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6-04-20 14:47  |  발행일 2026-04-21
김보미 작곡가·예술기획자

김보미 작곡가·예술기획자

5살 어린 동생은 최근 첫 출근을 했다. 전날부터 옷을 몇 번인가 갈아입고, 30분 전에 도착하면 너무 과하진 않을지, 20분이면 적당할지 열심히 고민하는 모습이 귀여웠다. 정해진 시간, 정해진 자리로 향하게 된 동생이 조금 낯설면서도, 사회 속으로 들어가는 첫 걸음을 열심히 응원했다. 정해진 시간, 정해진 자리로 향하는 일이 때로는 부럽기도, 때로는 갑갑해 보이기도 한다.


나는 대학원을 졸업하고 처음에는 음악 외주를 받으며 혼자 일을 했고, 최근에는 기획과 전시, 연주를 통해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 많아졌다. 나는 출근을 하지 않는 사람이다.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그렇다. 정해진 시간도, 매일 같은 자리도 없다. 그렇다고 마냥 자유롭기만 한 건 아니다. 스스로를 잘 붙잡지 않으면 생체리듬이 금방 흐트러지고, 해야 할 일도 자꾸 밀린다. 그래서 하루의 경계가 조금 흐릿한 상태로, 나름의 리듬을 만들려고 계속 애쓰고 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예술하는 사람들은 어쩌면 다른 방식으로 출근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카페에 앉아 멍하니 있는 시간, 산책을 하다 문득 떠오른 장면을 붙잡는 순간, 밤늦게 녹음해둔 소리를 반복해서 듣는 시간들. 겉으로 보면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그 안에서는 분명 무언가가 진행되고 있다. 아이디어가 자라고, 감정이 조금씩 형태를 갖추는 시간들이다. 굳이 말하자면, 우리는 장소가 아니라 상태로 출근하는 쪽에 가까운 것 같다.


물론 그 방식은 사람마다 다 다르다. 아침에 딱 앉아서 시작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밤이 깊어야 비로소 집중이 되는 사람도 있다. 특정 공간이 있어야 움직이는 사람도 있고, 어디서든 작업을 이어가는 사람도 있다. 어느 쪽이 맞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같은 일을 하고 있지만, 각자의 리듬으로 하루를 만들어간다.


그렇다고 완전히 자유롭기만 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기준이 없으면 쉽게 흐트러진다. 그래서 나 역시 나만의 작은 신호들을 만들어두고 있다.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 꼭 듣는 음악이라든지, 노트를 펼치는 순간 같은 것들. 별거 아닌데, 그런 반복이 있어야 조금 덜 헤맨다. 결국은 각자 자기 방식으로 스스로를 출근시키고 있는 셈이다.


다시 동생의 첫 출근을 떠올린다. 낯선 자리로 향하는 그 긴장과 마음가짐은, 방식만 다를 뿐 나에게도 익숙한 감정이다. 정해진 사무실은 없지만, 나 역시 매일 어딘가로 들어가고는 있다. 중요한 건 어디로 가느냐보다, 오늘 나는 어떤 상태로 그 자리에 들어서느냐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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