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시대, 메모리 반도체가 기술 패권의 '핵심' 자리를 꿰찬 양상이다. 수십 년간 단순히 데이터를 저장하던 조연에서, 이제는 AI 연산의 병목을 해결하는 당당한 주연으로 도약한 것이다. 덩달아 메모리 강국인 한국의 위상도 높아지고 있다. 메모리는 1966년 IBM의 로버트 데나드 박사가 디램 구조를 발명한 이래, 줄곧 CPU(중앙처리장치)의 연산을 보조하는 수동적인 역할에 머물러 왔다. 국내에선 삼성전자가 1992년 세계 최초로 64Mb 디램 개발에 성공, 일본의 기술력을 추월한 이변을 일으켰다. 이는 한국 반도체 신화의 서막이며, 메모리가 단순 부품을 넘어 국가 경쟁력이 된 기점이다.
메모리를 주연으로 격상시킨 건 AI 에이전트다. 지휘관(CPU)과 작업반장(GPU)이 아무리 빨리 움직여도, 데이터를 나르는 비서(메모리)의 속도가 받쳐주지 못하면, 시스템이 멈춰버리는 구조 때문이다. AI가 고도화할수록 메모리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AI시대 핵심 자원이라는 인식이 확산하면서 세계가 메모리 수급에 사활을 걸고 있다.
기술계에서도 '궁하면 통한다'라는 이치는 통용된다. 수급난에 직면한 IT 업계는 '메모리 다이어트'를 생존 전략으로 삼고 있다. 구글의 '터보 퀀트(Turbo Quant)'가 대표적인 사례다. 국내 스타트업들 또한 메모리 사용량만 효율적으로 줄이는 기술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특히 온디바이스 AI(스마트폰 등)는 배터리와 저장 공간이 제한적인 탓에 메모리 다이어트가 필수적이다. 앞으로 메모리 최적화 역량이 AI시장의 패권을 결정짓는 핵심 변수가 될 전망이다. 윤철희 수석논설위원
윤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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