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오전 9시, 대구 북구 금호강 무태교 하단 하천부지. 이재명 대통령의 하천 불법 점용 전면 재조사 지시 이후 대구 도심 하천에서 단행된 강제 철거(행정대집행) 현장에는 으레 예상되는 고성과 멱살잡이가 없었다. 법을 집행해야 하는 행정의 의무와 휴식처를 빼앗긴 서민의 현실, 이 둘은 적대적 대립이 아니라, '어쩔 수 없다'는 묘한 공감대가 흘렀다.
하천구역 내 불법행위에 대한 행정대집행이 진행 중인 28일 오전 대구 북구 금호강 무태교 하단 하천부지 모습. 최시웅기자
️◆ 77세 노인에게 다리 밑이 필요한 이유
이날 대집행이 진행된 무태교 하단은 행정 장부상 '불법 점용 시설'이다. 하지만 현장에서 만난 어르신들에게는 영락없는 '도심 속 오아시스'였다.
자기의 쉼터가 철거되는 장면을 먼발치에서 바라보던 주민 조모(77) 씨는 덤덤하지만 뼈 있는 한숨을 내쉬었다. 매일 새벽 5시면 이곳을 찾는다는 조씨는 "나이 먹은 노인네들이 갈 데가 마땅찮아 여기 모여 의자에 앉아 쉰다. 음료수 하나 나눠 마시고, 가끔 낚시도 하며 하루를 보낸다. 많을 때는 열댓명 가까이 모이는 우리 휴식처이자 놀이터"라고 말했다.
그는 정부의 단속을 이해한다면서도 서운함을 감추지 못했다. 조씨는 "여기 하천을 산책하고 자전거 타는 시민이 하루에도 수백명인데, 가장 가까운 화장실은 1km나 떨어져 있다. 무작정 불법이라고 치우기만 할 게 아니라 최소한의 편의시설을 지어주거나 벤치 같은 양성화된 휴식 공간을 마련해 주는 게 맞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단속반원들은 조씨의 쉼터를 걷어내고 있었지만, 서로를 향한 적의는 없었다. 조씨는 자신들의 행위가 법에 어긋난다는 것을 알기에 "공무원들도 위에서 시키니까 모르는 수 없으니 크게 원망하진 않는다"고 했다. 단속 공무원 역시 "어르신들과 이야기해 보면 정말 할 일이 없어서 나오시는 걸 안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28일 오전 대구 금호강변 무태교 하단 둔치에서 주민 조모(77)씨가 철거가 진행 중인 장면을 지켜보고 있다. 최시웅기자
️◆ 행정이 결국 칼을 빼든 현실적 이유
단속을 집행하는 구청의 입장도 처지나 온정만으로 봐주기엔 하천 관리의 현실은 엄혹하다. 대구 북구청 건설과 이현길 주무관은 "단속을 예고하면 쓸만한 텐트나 장비는 다 챙겨 가면서도 소파나 무거운 가구 같은 쓰레기는 그대로 던져놓고 가버린다"며 무단 투기 문제를 지적했다. 일부 이용객은 전기 파워뱅크와 냉장고까지 동원해 국유지를 사유지처럼 장기 점유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안전'이다. 무태교 하단은 매년 인명 사고가 발생하는 구역이다. 여름철 집중호우 시 강물이 순식간에 차오르는 둔치 특성상, 무단 천막은 언제든 인명 피해로 직결될 수 있다. 이 주무관은 "침수 위험과 위생, 안전 문제를 생각하면 행정 입장에서도 방치할 수 없다"고 토로했다.
현장에서는 '때려 부수기'식 단속에 한계가 있음을 강조했다. 이 주무관은 "대구는 사실 대통령 지시의 시발점인 계곡 내 불법 상행위보다 이곳(무태교 둔치)처럼 일상과 밀접한 사례가 더 많다"며 "텐트는 걷어갔다가 재설치하는 일이 부지기수다. 불법 경작 같은 경우에도 뒤집어 엎어도 10곳 중 3곳은 다시 생긴다. 장소나 불법의 결과물에 대한 조치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불법 경작지는 최근 타 부서와 연계해 꽃을 심는 방안을 마련 중이다. 꽃이라도 심어져 있으면, 함부로 밭을 만들지 못하지 않겠나"라며 "다만, 현실적으로 그 주민들(불법 경작자)도 마찬가지로 소일거리를 하기 위해 나온다. 결국 '사람'을 대상으로 변화를 줘야만 (단속의)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북구청은 드론 등 첨단 기술을 활용한 디지털 행정 시스템 도입도 고민하고 있다. 수시로 드론을 띄워서 불법 적치물이 쌓이기 전에 경고하고 계도함으로써, 주민들과 얼굴을 붉히며 강제 철거를 해야 하는 행정력 낭비까지 방지하겠다는 취지다.
28일 오전 9시 대구 금호강변 무태교 하단 둔치에서 북구청 건설과 이현길 주무관이 행정대집행으로 철거된 불법 적치물들을 바라보고 있다. 최시웅기자
️◆ '법과 현실' 잇는 상생 로드맵은?
오전 내내 진행된 철거로 무태교 하단은 겉보기엔 깔끔한 상태로 돌아왔다. 하지만 현장을 떠나지 못하고 곁을 맴도는 노인들 발길까지 막아서지는 못했다. 한 단속 반원은 "여름엔 더워서 안 오겠지만, 장마 지나고 선선해지면 또 슬그머니 모일 것"이라며 씁쓸하게 웃었다. 단속과 재점용이 쳇바퀴 돌듯 반복되는 셈이다.
이러한 '악순환 행정'의 반복은 도심 내 고령층 여가 공간 부족이라는 구조적 문제와 맞물려 있다. 보건복지부 '노인실태조사'에 따르면 노인 여가 활동 중 '야외 휴식 및 산책'이 차지하는 비중은 70.4%에 달한다. 그러나 이들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야외 무더위 쉼터나 공공 여가 시설은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탁 트인 금호강변 다리 밑 일종의 도피처가 된 셈이다.
이러한 딜레마를 끊기 위해 일부 지자체는 '양성화 모델'을 시도한 바 있다. 서울 성동구는 다리 밑 불법 점용 구역을 철거한 뒤, 어르신 전용 체육시설과 공공 화장실을 조성했다. 공원 내 그늘막과 운동기구를 갖춘 '시니어 파크'를 확충한 인천시 등 사례도 있다.
전문가들은 대통령의 강력한 지시로 시작된 이번 '충격요법'이 고질적인 사각지대를 수면 위로 올린 성과는 있지만, '철거 이후의 대안'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무조건적인 철거를 넘어, '안전'과 '복지'의 교집합을 찾는 공간 재구조화가 필요한 시점임을 강조했다.
대구대 양난주 교수(사회복지학과)는 "다리 밑 야외 활동 등은 단순한 소일거리가 아니라 노인들 건강을 유지하고 사회적 고립을 막는 '예방적 건강 관리 사업' 성격을 띤다. 지자체가 노인의 자발적 참여를 유도할 수 있는 섬세한 복지 공간 디자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활동 능력이 있는 노인을 지역사회 동아리나 문제 해결 프로그램과 연계하는 방안도 유효하다. 오히려 어르신들 스스로가 하천 변을 순찰하고 불법 적치물을 깨끗하게 정비하는 일자리의 주체로 참여하게 만든다면, 지역 기여와 실비 지원이라는 두 토끼를 다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시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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