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경북 울릉군 북면 천부리 해안도로 아래 거센 물살이 암벽 틈으로 밀려들어오고 있다. <홍준기 기자>
파도가 절벽을 때릴 때마다 섬이 낮게 흔들렸다.
17일 경북 울릉군 북면 천부리 해안도로 아래 검은 현무암 절벽에서는 거센 물살이 암벽 틈으로 밀려들 때마다 둔탁한 파열음이 연달아 터져 나왔다. 물보라는 수십 미터 아래에서 솟구쳤다가 바람에 흩어졌고, 잘게 부서진 암석 조각들은 거친 파도에 휩쓸려 다시 바다 아래로 사라졌다.
파도가 한번 들이칠 때마다 짠 바닷물이 해안도로 위까지 날렸다. 절벽 아래에서는 젖은 돌 냄새와 함께 자갈 부딪히는 소리가 쉼 없이 이어졌다. 잠시 잦아드는 듯하던 바다는 이내 거대한 물기둥을 만들며 암벽 아래를 다시 후려쳤다. 그 순간마다 바위 아래 자갈들이 서로 부딪히며 쇳소리 같은 마찰음을 냈고, 절벽 위 도로까지 미세한 진동이 전해졌다.
절벽 아래에는 이미 떨어져 나온 바위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오래 버틴 암반 틈 사이로는 굵은 균열 자국도 선명했다. 실제 취재 당일에도 절벽 아래에는 최근 떨어져 나온 것으로 보이는 날카로운 암석 조각들이 곳곳에 쌓여 있었다.
관광객들은 대개 그 풍경을 두고 '절경'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 섬에서 오래 살아온 주민들은 안다. 저 풍경이 멈춰 있는 풍경이 아니라는 것을. 울릉도의 바위와 절벽은 지금 이 순간에도 아주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깎이고 있었다.
약 250만 년 전 동해 바다 밑에서 시작된 거대한 화산활동은 수차례 분출과 붕괴를 반복하며 지금의 울릉도를 밀어 올렸다. 나리분지 같은 칼데라 지형은 당시 흔적이 남아 있는 대표적인 공간으로 꼽힌다. 섬 곳곳의 검은 현무암 절벽 역시 뜨거운 용암과 화산재가 오랜 시간 굳어 형성된 결과물이다.
하지만 지금 울릉도의 시간을 움직이는 것은 오래전 화산활동만이 아니다. 파도와 바람, 그리고 예전과 달라진 바다가 섬의 지형 자체를 다시 흔들고 있다. 최근 울릉도 해안 곳곳에서는 낙석과 절벽 균열이 반복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겨울철 고파도가 지나간 뒤 해안 암반 일부가 갈라지거나 일주도로 주변 낙석 위험으로 차량 통행이 통제되는 일도 이어진다.
울릉일주도로 낙석위험 구간. <홍준기 기자>
주민들은 "예전보다 겨울 바다가 훨씬 거칠어졌다"고 입을 모은다. 북면 현포리에서 30년 넘게 어업에 종사해온 김성갑(63) 씨는 "예전에는 겨울 바다가 며칠 지나면 금방 잔잔해졌는데 요즘은 한번 뒤집히면 파도가 오래 간다"며 "멀쩡하던 바위가 갑자기 떨어져 나가는 걸 직접 본 적도 있고, 예전보다 파도가 절벽을 때리는 힘 자체가 세졌다는 걸 체감한다"고 말했다.
도동항 인근에서 선박 일을 해온 박상규(58)씨도 "예전에는 태풍 지나가면 며칠 안 돼 배가 다시 움직였는데 최근에는 기상이 한번 나빠지면 길게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며 "겨울철에는 배를 며칠씩 묶어두는 날도 늘었고, 어민들끼리는 바다가 예전과 달라졌다는 이야기를 자주 한다"고 했다.
기상이 악화되면 주민 생활도 곧바로 영향을 받는다. 여객선 운항이 끊기면 택배와 생필품 운송이 늦어지고, 해안도로에 낙석 위험이 발생하면 주민들은 먼 길로 우회해야 한다. 육지에서는 뉴스와 통계로 지나가는 기후변화가 울릉도에서는 생활 자체의 문제가 되는 셈이다.
실제 동해 바다는 조금씩 높아지고 있다.
동해 해수면 상승추이 그래프. <국립해양조사원 제공>
국립해양조사원 자료를 보면 지난 30여 년 사이 동해 해수면은 약 9㎝ 가까이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수치만 놓고 보면 크지 않아 보일 수 있지만, 전문가들은 이런 변화가 장기간 누적될 경우 해안 침식과 고파도 영향을 더욱 키울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한다. 특히 울릉도처럼 해안선 대부분이 급경사 암반으로 형성된 화산섬은 파도의 충격을 직접적으로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설명이다.
김기홍 울릉군청 해양수산과장은 "울릉도 같은 화산섬은 평지 해안보다 파도 충격을 직접 받는 구조"라며 "강한 파랑 에너지가 반복되면 절벽 붕괴나 낙석 위험도 더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도동과 저동 해안 절벽 곳곳에는 바다가 오랜 시간 암벽을 밀어내며 만들어낸 해식애와 동굴 흔적이 지금도 남아 있다. 수십만 년 동안 이어진 침식의 흔적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 변화가 과거형이 아니라는 점이다. 바다는 지금 이 순간에도 울릉도의 해안선을 조금씩 바꾸고 있었다.
바다 온도 역시 달라지고 있다.
동해 평균 표층수온 변화 그래프. <국립해양조사원 제공>
동해 표층수온은 꾸준한 상승 흐름을 보이고 있다. 전문가들은 수온 상승이 단순히 바다가 따뜻해지는 문제에 그치지 않고 해류 변화와 기상 변동성을 키우는 원인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설명한다. 결국 강한 폭풍과 고파도 발생 가능성 역시 커질 수 있다는 의미다.
전문가들은 지금 울릉도에서 나타나는 변화가 단순한 자연 풍경의 문제가 아니라 앞으로 주민 안전과 생활 기반 전반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해안 침식과 고파도 현상이 반복될 경우 도로 통제와 낙석 위험, 여객선 결항 같은 문제 역시 더 잦아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울릉도는 흔히 '신비의 섬'으로 불린다. 하지만 섬의 진짜 얼굴은 관광 엽서 속 풍경보다 훨씬 거칠고 역동적이다. 검은 절벽 아래서 파도가 암벽을 밀어내는 순간에도, 금이 간 바위 하나가 바다 아래로 무너져 내리는 순간에도 울릉도는 스스로의 지형을 다시 쓰고 있었다.
최근 일주도로 해안가 암벽이 붕괴돼 위험지구로 지정돼 있다. <홍준기 기자>
취재를 마치고 돌아오는 동안에도 파도는 계속 절벽 아래를 때리고 있었다. 검은 바위 틈으로 밀려든 바닷물은 다시 자갈과 암석 조각들을 흔들어댔고, 어디선가 돌 부서지는 소리가 낮게 울렸다.
수백만 년 전 바다 아래 화산활동으로 시작된 울릉도의 시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 섬은 지금도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모습을 바꾸고 있었다.
암반 틈 사이로는 굵은 균열 자국이 선명하게 나있다. <홍준기 기자>
홍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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