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보관현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전국후원회 부회장이 지난 15일 포항시 남구 구룡포읍의 한 카페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김기태기자>
"구룡포가 내 삶이고, 내 유산입니다"
1959년 포항 구룡포에서 태어나 평생을 이 땅에서 나눔과 봉사를 실천해 온 사람이 있다. 구룡포수협 중매인으로 48년째 위판장을 지키며, 포항시 읍면동 지역사회보장협의체 사무국장과 구룡포읍 지역사회보장협의체 위원장을 맡고 있는 황보관현(동우물산 대표) 씨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이웃을 챙기고 지역을 가꿔온 사람이다. 최근에는 구룡포의 사계절 일상을 담은 사진집 '구룡포 이야기'를 조아라 작가와 함께 펴내며, 자신이 사랑하는 마을의 기록자가 됐다.
황보 위원장이 나눔을 실천하게 된 데는 집안 내력이 크게 작용했다. 그의 부모님이 동네 가게를 운영했는데, 두 분 모두 어렵고 힘든 이웃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었다. 큰아버지 역시 명절마다 "이웃을 돌봐야 한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했다.
"어머니가 늘 말씀하셨어요. '자(관현)는 두 개를 못 가진다'고요. 그 말이 제 안에 남아 있어요."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에는 구룡포 애향 단체 '한얼'에 들어가 청소년 장학기금 마련 행사를 열고, 항만 정화와 방역 사업에 나섰다. 이후 포항시 지체장애인 단체와 인연을 맺으며 공식적인 봉사 활동을 시작했고, 2006년 초록우산 어린이재단과 손을 잡으면서 구룡포 복지의 판을 본격적으로 넓혀 나갔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과 연계하면서 황보 위원장은 구룡포 아이들을 위한 변화를 만들어 나갔다. 본부에서는 기초수급·차상위 가정 아이들만을 대상으로 드림 오케스트라를 운영하라고 했지만, 그는 그 방식이 아이들에게 오히려 상처가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구룡포처럼 작은 마을에서 '없는 집 아이'라는 낙인은 오래 남기 때문이다.
"우리 지역은 너무 좁습니다. 지원받아 오케스트라 한다고 하면 아이들이 더 상처받아요."
그의 설득 끝에 본부는 구룡포를 예외로 인정했다. 일반 가정 아이들과 수급자 가정 아이들이 함께 악기를 들었고, 오케스트라는 세종문화회관 무대까지 올랐다. 그 수익금은 포항 최초의 지역 돌봄센터 '꾸러기 마을'을 만드는 씨앗이 됐다. 전국 평균의 5배에 달하던 지역 청소년의 흡연율도 낮아졌다.
황보 위원장이 수십 년간 강조해 온 원칙이 하나 있다. "투명하지 않으면 신뢰는 없다."
그는 아동복지위원장으로 활동하던 시절, 후원금을 지원한 이들에게 월별 지출 내역을 담은 결산 보고서를 직접 보냈다. 귀찮다며 보내지 말라는 이도 있었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회장이나 위원장이 먼저 자기 주머니를 열어야 합니다. 공금에만 기대면서 조직을 이끌겠다는 건 통하지 않아요."
그는 리더가 먼저 본을 보여야 조직 전체가 움직인다고 말한다. 공공 기금을 쓰는 단체라면 더욱 엄격한 기준을 스스로에게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신념이다. 지금도 그는 협의체 활동을 통해 매달 취약계층 60여 가구에 도시락을 배달하고, 50여 가구의 안부를 직접 확인하고 있다.
황보관현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전국후원회 부회장이 지난 15일 포항시 남구 구룡포읍의 한 카페에서 자신이 펴낸 책의 수록 작품을 가리키며 집필 과정과 작품에 담긴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김기태기자>
'구룡포 이야기'는 처음부터 책으로 기획된 것이 아니었다. 황보 위원장이 틈날 때마다 휴대폰 카메라로 찍어온 사진들이 어느새 한 마을의 시간을 담은 기록이 됐다.
"향수가 있는 사람들에게 사진을 보내면 반응이 너무 좋은 거예요. '내가 뭐라도 줄 수 있구나' 싶어 계속 찍게 됐습니다."
위판장에서 입찰 전 수산물을 카메라에 담고, 골목 고양이와 텃밭 채소, 항구의 노을을 기록했다. 조아라 작가가 그 사진들에 글을 더했다. 황보 위원장은 구룡포 사투리와 일상의 언어까지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고 강조해 왔다. 그에게 사진 찍기는 취미가 아니라, 마을이 살아 있다는 증거를 남기는 일이다.
구룡포는 최근 일본인 가옥거리를 찾는 외지 방문객이 부쩍 늘었다. 황보 위원장은 그 변화를 반기면서도, 정작 이 땅에서 살아온 주민들이 관광의 혜택에서 소외되는 현실을 걱정한다.
"관광지 주민들은 소음과 불편함을 감수합니다. 그분들에게도 복지와 혜택이 돌아가야 해요."
황보 위원장이 오랫동안 지켜봐 온 구룡포에는 풀리지 않은 숙제들이 쌓여 있다.
어업은 황폐해졌다. 한창 전성기이던 1980년대에는 냉동선이 100척 가까이 오갔지만, 지금은 한두 척에 불과하다. 제도의 테두리 안에 들어오지 못하는 50·60대 차상위 계층은 복지의 사각지대에서 여전히 힘겹게 버티고 있다.
교육 문제도 마음을 무겁게 한다. 초등학교 때까지는 붙잡아 두어도, 5학년만 되면 아이들이 다른 동네로 빠져나간다. 지역 공동체가 살아나려면 개인주의를 넘어서 함께 목소리를 내는 문화가 필요하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작은 것부터 하나씩 바뀌어야 읍이, 시가, 나라 전체가 살기 좋아집니다. 여력이 될 때까지 계속 노력할 겁니다."
그는 언젠가 구룡포 후배들에게 남길 자서전을 쓰고 싶다고 했다. 자신의 이야기가 아니라, 이 마을이 어떤 곳인지, 어떻게 지켜왔는지를 담은 기록이 될 것이라고 했다.
반세기 가까이 위판장을 지키고, 이웃의 끼니를 챙기고, 아이들의 꿈을 키워온 사람. 황보관현 위원장에게 구룡포는 고향 그 이상이다. 그것은 평생을 바쳐 일군 삶의 터전이자,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고 싶은 유산이다.
김기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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