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순정 쿤스트하우스 대표
도화지 한가운데 꽃 한 송이만 피어 있고, 나머지는 텅 비어 있었다.
흐린 오후, 예술치유 수업이었다. 저마다 도화지를 색으로 채워가는 동안 그녀만 달랐다. 작은 꽃 하나를 그려놓고 일찍 붓을 내려놓았다.
"지금의 삶과 닮은 점이 있을까요?"
그림을 들여다보던 그녀가 웃었다.
"간섭도 많고 할 일도 너무 많아서, 그림에서조차 많이 그리고 싶지 않았어요."
평범한 중년이었다. 부모님 병원 일정을 챙기고, 자녀 진로를 걱정하고, 회사 업무 사이사이 저녁 찬거리를 떠올리는 사람. 눈을 뜨면 해야 할 일이 줄을 섰고, 그 줄 어디에도 자신의 자리는 없었다.
혼자만의 이야기는 아니었다. 부모의 건강을 마음 졸이며 지켜보고, 자녀의 소식을 기다리며 밤을 보내는 얼굴들. 위로는 부모를, 아래로는 자녀를 떠받치느라 정작 자신이 설 자리는 좁아진다. "요즘 본인은 어떠세요"라는 물음 앞에서 다들 말을 멈추는 것도 그래서다.
비슷한 장면을 다른 수업에서도 보았다. 한 중년 남성은 의자 하나만 그려두고 붓을 놓았다.
"앉아 있고 싶어서요. 마지막으로 편히 쉰 게 언제인지 기억이 안 나더라고요."
회사에서는 책임자였고, 집에서는 가장이었다. 의자는 그가 가져보지 못한 시간의 모양이었다. 두 그림은 같은 자리를 가리키고 있었다.
사람들이 가장 적게 그린 부분에 가장 하고 싶은 말이 숨어 있다. 화려한 색보다, 정직하게 비워둔 자리가 마음을 더 잘 보여줄 때가 많다.
다시 그 꽃 그림을 들여다보았다. 들여다볼수록 꽃보다 빈자리가 마음에 들어왔다. 비어 있는 게 아니라, 가장 갖고 싶었던 시간이었는지 모른다. 아무도 찾지 않는 시간, 그저 가만히 있어도 괜찮은 시간. 누구나 이 시간을 자주 잃어버리고 산다. 잠시 멈추면 뒤처질 것 같은 불안에, 하루는 점점 촘촘해지고 자신의 자리는 늘 맨 뒤로 밀려난다.
아름다운 것들 곁에는 빈자리가 있다. 음악에 쉼표가 있어야 다음 음이 살고, 창에 빈 공간이 있어야 바람이 든다. 도화지 가득 색을 채웠다면 그 작은 꽃은 오히려 묻혀버렸을 것이다.
젊은 시절엔 채우는 일이 전부인 줄 알았다. 경험을, 목표를, 사람을 채웠다. 어느 순간 깨닫는다. 채우는 능력만큼 비워두는 지혜도 필요하다는 것을.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스스로에게 말해주는 일 ― 비워둔 자리는 약함이 아니라, 오래 버텨온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용기였다.
수업을 마치고 나서며 그녀는 도화지를 가만히 접어 가방에 넣었다.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을 것처럼 조심스러운 손길이었다. 작은 꽃과 넓은 빈자리가, 그녀만 아는 쉼표처럼 가방 속으로 함께 접혀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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