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순의 문명산책] 길가메시가 호르무즈에서 묻다

  • 김중순 계명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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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6-06-25 17:43  |  발행일 2026-06-26
김중순 계명대 명예교수

김중순 계명대 명예교수

죽음을 이기고자 했던 최초의 영웅 길가메시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하고 견고한 성벽을 쌓았다. 그것은 인간이 자연의 위협에 맞서 세운 최초의 문명적 선언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높은 성벽도 죽음을 막아주지는 못했다. 친구 엔키두의 죽음을 목격한 그는 길을 떠난다. 강을 따라 내려가고, 강은 다시 바다로 이어진다. 그 너머에서 불사의 비밀을 찾기 위함이었다. 길가메시가 건너려 했던 것은 인간 세계와 미지의 세계를 가르는 경계 자체였다.


그러나 신화가 상상했던 그 바다 너머의 세계는 역사 속에서 현실의 항로가 된다. 기원전 24세기, 사르곤 시대의 아카드는 걸프만 해상 네트워크와 연결되었다. 사르곤의 비문에는 '멜루하, 마간, 딜문의 배들이 나의 도시에 정박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딜문'은 오늘날 바레인의 일대이고, '마간'은 오만 일대이며, '멜루하'는 인더스 문명을 가리키는 곳이었다. 사람들은 딜문을 병도 없고 늙음도 없는 땅으로 노래했다. 인간이 아직 가보지 못했지만 언제나 그리워했던 이상향이었다. 실제로 현실의 딜문은 배들이 드나드는 항구였다. 구리와 목재, 보석과 향료가 이곳을 거쳐 오갔고, 메소포타미아에서 시작된 물자와 욕망은 더 먼 세계를 향해 흘러갔다.


신화가 꿈꾸었던 바다 너머의 세계는 역사 속에서 교역의 바다로 변모했고, 걸프만은 인류 최초의 해상 네트워크를 잉태한 문명의 관문이 되었다. 수천 년 뒤, 사람들은 그 바다를 페르시아만이라 부르게 되었고, 그 끝에서 인도양으로 이어지는 좁은 관문을 호르무즈 해협이라 부르게 된다. 인류가 처음으로 바다를 건너 타자와 만났던 기억, 그리고 지평선 너머에도 또 다른 세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기억. 그 모든 기억은 걸프만과 호르무즈를 중심으로 축적되어 왔다. 인류 문명의 역사는 어쩌면 새로운 경계를 발견하고 그것을 넘어서는 과정이었다. 문명은 성벽 안에서 성장했지만, 성벽 밖의 타자와 만나면서 비로소 풍요로워졌다.


걸프만은 단순한 바다가 아니라 문명이 스스로를 확장하고 재구성하는 공간이었다. 호르무즈는 그 순환을 가능하게 한 통로였다. 강의 문명이 바다의 문명과 만났다. 농경과 도시의 메소포타미아가 유목과 사막의 아라비아를 거쳐 인도양 세계와 연결되던 자리였다. 수천 년 동안 사람과 물자, 언어와 종교, 기술과 상상이 그 좁은 통로를 지나며 서로를 변화시켰다. 신화 속에서 영생과 미지의 세계를 향해 열려 있던 통로가 역사 속에서는 문명과 문명을 연결하는 길이 되었다. 오늘날에도 세계 원유 수송의 상당 부분이 이 해협을 통과한다. 한때 구리와 향료, 목재가 오가던 길은 이제 세계 경제의 혈류가 되었다.


그 통로가 이제 세계의 운명이 걸린 긴장의 경계선이 되었다. 충돌의 공간이 되었고, 서로를 향한 의심과 적대의 파도로 채워지고 있다. 오늘 밤 한 문명을 지워버리겠다는 위협은 단지 특정 국가를 향한 말이 아니다. 그것은 수천 년 동안 인류가 구축해 온 연결과 교류의 질서를 부정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더 이상 나아갈 출구도, 돌아올 입구도 남겨두지 않을 태세다. 호르무즈가 우리에게 묻고 있다. 인간은 끝없는 욕망 속에서 다시 자신의 유한함을 망각할 것인가. 아니면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서로를 연결하는 길을 지켜낼 것인가. 길가메시가 돌아와 성벽을 바라보며 깨달았던 그 오래된 질문이, 지금 다시 우리에게 되돌아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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