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계 하위지 선생 유허비. 비석의 전체 높이는 1.1m, 너비는 45㎝, 두께는 17㎝다. 몸체는 화강석이며, 비의 전면에는 '有明朝鮮丹溪河先生遺墟碑(유명 조선 단계 하선생 유허비)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박용기 기자>
구미시 선산읍을 걷다 보면 조용히 흐르는 물길 하나를 만날 수 있다. 비봉산 자락에서 시작해 선산 도심을 지나 감천으로 흘러드는 단계천이다. 오늘날 선산 도심 구간의 단계천은 상당 부분 복개돼 있어 예전처럼 흐르는 냇물을 눈으로 보기는 어렵지만, 이 물길의 이름을 따라가면 조선시대 한 선비의 죽음과 충절이 모습을 드러낸다.
단계천에는 오래된 이야기가 전해진다. 조선 초 선산에서 한 아이가 태어났는데, 그 아이가 태어나자 집 앞 냇물이 사흘 동안 붉게 물들었다고 한다. 사람들은 그 물길을 '붉은 시내'라는 뜻의 단계천(丹溪川)이라 불렀고, 그 아이는 훗날 자신의 호를 '단계(丹溪)'라 했다. 바로 조선 세조 때 단종 복위를 꾀하다 순절한 사육신의 한 사람, 하위지다.
처음의 붉음은 탄생의 신비로 전해졌다. 그러나 하위지의 삶을 알고 나면 그 붉음은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단종을 향한 절의를 지키다 죽음에 이른 사육신의 피, 권력 앞에서도 꺾이지 않았던 선비의 붉은 마음이 그 물 위에 겹쳐진다. 그렇게 단계천의 붉은 전설은 하위지의 탄생을 알렸고, 시간이 흐른 뒤에는 사육신의 피와 충절을 떠올리게 하는 상징이 됐다.
하위지는 1412년 선산에서 태어났다. 세종 20년인 1438년 문과에 장원급제하며 벼슬길에 올랐고, 집현전 학자로 활동했다. '오례의주' 상정, '고려사' 개찬, '세종실록' 편찬 등에 참여한 학자이자 문신이었다. 학문과 문장으로 이름을 얻었고, 관직도 예조참판에 이를 만큼 높았다.
단계 하위지 선생 유허비 입구. 주택가와 산자락 사이로 난 길을 따라 들어서면 굽은 소나무 가지 아래로 곧게 놓인 보행로가 이어지고, 그 끝 낮은 담장과 작은 문 안쪽에 비각이 자리한다. 비문이 따로 없어 정확한 건립 연대는 알 수 없으나, 조선 후기인 18세기 무렵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박용기 기자>
세조가 왕위에 오른 뒤, 하위지는 성삼문, 박팽년 등과 함께 단종 복위를 꾀했다. 어린 임금을 다시 세우려 한 이들의 뜻은 발각됐다. 1456년, 하위지는 처형됐다. 권력의 칼날 앞에서도 뜻을 굽히지 않았던 그는 그렇게 사육신의 한 사람으로 역사에 남았다.
그 기억은 선산읍 완전리에 남은 단계 하위지선생 유허비에서 더욱 또렷해진다. 유허비로 향하는 길은 거창한 유적지 입구라기보다 마을 속 작은 숲길에 가깝다. 주택가와 산자락 사이로 난 길을 따라 들어서면 굽은 소나무가 입구를 지키고 있다. 소나무 가지 아래로 곧게 놓인 보행로가 이어지고, 그 끝 낮은 담장과 작은 문 안쪽에 비각이 자리한다. 비문이 따로 없어 정확한 건립 연대는 알 수 없으나, 조선 후기인 18세기 무렵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선산읍 죽장리에 있는 단계 하위지 선생 의관묘. 묘역에는 하위지를 기리는 묘비와 옛 석비가 함께 서 있다. 비 앞면에는 '有明 朝鮮 司諫 丹溪 河先生 緯地 墓'(유명 조선 사간 단계 하선생 위지 묘)라는 글자가 적혀 있다. 또 문인석은 두 손을 모은 채 묘역을 지키고 있고, 그 뒤 망주석이 있다. <박용기 기자>
경북도 유형문화유산인 이 비는 하위지의 자취와 충절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 비석의 전체 높이는 1.1m, 너비는 45㎝, 두께는 17㎝다. 몸체는 화강암이며, 비의 전면에는 '有明朝鮮丹溪河先生遺墟碑(유명 조선 단계 하선생 유허비)'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선산읍 죽장리에는 하위지 묘소도 남아 있다. 비지정 문화유산인 이 묘소는 하위지의 의관이 묻힌 의관묘로 전해진다. 묘역에는 하위지를 기리는 묘비와 옛 석비가 함께 서 있다. 비 앞면에는 '有明 朝鮮 司諫 丹溪 河先生 緯地 墓(유명 조선 사간 단계 하선생 위지 묘)'라는 글자가 적혀 있다. 문인석은 두 손을 모은 채 묘역을 지키고 있고, 묘역 한쪽에는 망주석이 세월을 견디듯 서 있다.
한때 역적으로 몰렸던 하위지는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야 제자리를 찾았다. 숙종 때 복관됐고, 영조 때에는 이조판서로 증직됐으며 '충렬'이라는 시호가 내려졌다.
선산읍 비봉산 자락에서 시작해 선산 도심을 지나 감천으로 흘러드는 단계천. 오늘날 선산 도심 구간의 단계천은 상당 부분 복개돼 있다.<박용기 기자>
선산읍 완전리 유허비, 도심의 단계천, 죽장리 묘소를 '단계 하위지'라는 이름으로 묶으면 하나의 길이 된다. 단계 하위지의 길은 선산의 작은 산책길이면서도 깊은 역사길로 우리에게 가까이 남아있다.
박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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